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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련한 시니어, 바둑 고수가 공통적으로 잘 하는 ‘이것’

중앙일보 2019.03.03 12:00
[더,오래] 정수현의 세상사 바둑 한판(21)
지난달 19일 중국 상하이 그랜드센트럴호텔에서 열린 제20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 본선 3차전 제11국에서 박정환 9단(왼쪽)과 당이페이 9단이 대국하고 있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지난달 19일 중국 상하이 그랜드센트럴호텔에서 열린 제20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 본선 3차전 제11국에서 박정환 9단(왼쪽)과 당이페이 9단이 대국하고 있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사람의 행동은 경기의 영향을 받는다. 경기가 나쁘면 심리적으로 위축돼 지갑을 닫는다. 반대로 경기가 좋으면 마음도 여유로워지고 소비도 늘어난다. 경기의 흐름에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사정이 어떤가를 살피는 ‘형세판단’을 할 필요가 있다.
 
바둑 고수도 바둑판의 경제적 사정이 어떤가를 알아보기 위하여 수시로 형세판단을 한다. 형세판단이란 흑과 백이 확보한 집의 크기를 비교해 누가 얼마만큼 유리한가를 평가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서로의 자산을 파악하는 것이다.
 
형세 유리하면 ‘부자몸조심’, 불리하면 승부수
형세판단은 보통 집의 경계선이 분명해진 종반에 가서 한다. 집의 가치를 계산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수는 집의 윤곽이 분명하지 않은 초반이나 중반에도 형세판단을 한다. 형세가 유리한지, 불리한지에 따라 전략이 달라진다. 형세가 유리하면 ‘부자 몸조심’ 전략을 쓰고, 불리하면 승부수를 고려한다.
 
형세판단으로 확실한 집은 흔히 ‘현찰’에 비유된다. 그러나 미래에 가능성이 있는 튼튼한 세력 같은 것은 ‘어음’이나 ‘주식’에 비유된다. 현금은 가치를 정확히 계산할 수 있으나 어음이나 주식은 그렇지 않다. 부도가 날 수도 있고 장차 큰 가치를 가져올 수도 있다.
 
프로기사 중에서도 형세판단을 아주 잘하는 이로 이창호 9단과 박영훈 9단이 꼽힌다. 이들은 판을 계산하는 데 매우 능해 각각 '신산', '뉴신산'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사진은 박영훈 9단(왼쪽)과 이창호 9단(오른쪽). [중앙포토]

프로기사 중에서도 형세판단을 아주 잘하는 이로 이창호 9단과 박영훈 9단이 꼽힌다. 이들은 판을 계산하는 데 매우 능해 각각 '신산', '뉴신산'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사진은 박영훈 9단(왼쪽)과 이창호 9단(오른쪽). [중앙포토]

 
프로기사 중에서도 형세판단을 특히 잘하는 이가 있다. 이창호 9단과 박영훈 9단이 형세판단에 특히 뛰어나다. 이창호 9단의 별명은 ‘신산(神算)’이다. 신과 같은 계산력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박영훈 9단은 ‘뉴신산’으로 불린다. 형세판단에 뛰어난 기사가 승리할 가능성이 높음은 말할 필요가 없다. 인간을 격파한 인공지능 알파고의 가장 뛰어난 기술도 형세판단이다. 그래서 요즘 TV 바둑 중계에서는 인공지능이 평가하는 형세판단이 단골 메뉴가 되고 있다.
 
인생에서도 형세판단이 필요할 것이다. 후반부에 들어선 시니어도 형세판단이 필요하다. 시니어는 그동안 벌어놓은 재산이나 자원이 어느 정도 되는지 평가해 보아야 한다. 그 판단에 근거해 미래의 삶을 설계할 수 있다. 자산을 평가해 형편이 좋은 사람은 노년을 여유 있게 보낼 것이다. 그러나 형편이 나쁜 사람은 추가로 자산을 늘리는 전략을 짜야 한다.
 
사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시니어는 자신의 재산을 평가해 그에 따른 전략을 찾는다. 자산을 늘리기 어려운 사람은 소비를 줄이는 미니멀 라이프 전략을 쓸 수밖에 없다. 어떻든 형세판단을 정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일 5억원 정도인 부동산을 8억원이나 10억원으로 평가한다면 거품이 낀 형세판단이다. 일본의 일인자였던 조치훈 9단은 집을 평가할 때 최소의 가치로 형세판단을 하라고 권한다. 거품을 빼고 계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산 평가는 최소 가치로 해야
회사의 가치를 평가할 때 유형의 가치만 보아서는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할 수 있다. 브랜드 가치나 잠재력 같은 자산도 있기 때문이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능력이나 명성 등과 같은 것도 중요한 자산이다. [제작 현예슬]

회사의 가치를 평가할 때 유형의 가치만 보아서는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할 수 있다. 브랜드 가치나 잠재력 같은 자산도 있기 때문이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능력이나 명성 등과 같은 것도 중요한 자산이다. [제작 현예슬]

 
형세판단을 할 때 눈에 잘 띄지 않는 무형의 가치를 계산하는 것도 중요하다. 회사의 가치를 평가할 때 대차대조표나 손익계산서에 나오는 유형의 가치만 보아서는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할 수 있다. 그 회사의 브랜드 가치나 잠재력 같은 자산도 있기 때문이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능력이나 명성, 인간관계 같은 것도 중요한 자산일 것이다. 젊은 시절 이런 것을 쌓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가. 이것들이 살아가는 데 중요하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시니어가 되면 이런 무형의 자산을 가치 없는 것으로 보기 쉽다. 현금이나 부동산 같은 자산에 비해 경제적 가치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생이 돈만으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면 이런 요소가 무가치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인간관계가 소원해 만나줄 사람이 없다면 로빈슨 크루소처럼 고독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프로기사가 형세의 유불리에 따른 전략을 결정하기 위해 끊임없이 형세판단을 한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형세판단은 살아가는 데도 필요한 활동이다. 정확한 형세판단을 통해 향후 전략을 결정해 보도록 하자.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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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현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필진

[정수현의 세상사 바둑 한판] 바둑에 올바른 길이 있듯이 인생에도 길이 있다. 중년과 노년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정수가 아닌 꼼수와 속임수에 유혹을 느끼기 쉽다. 인생의 축소판으로 통하는 바둑에서 삶의 길을 물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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