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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도덕·윤리적 선진국 아니다…서로 견제 ‘체크 앤 밸런스 문화’ 필요

중앙선데이 2019.03.02 00:21 625호 18면 지면보기
‘열린 연단’ 5주년 맞은 김우창 교수
김우창 교수

김우창 교수

김우창(83) 고려대 명예교수는 최고의 인문학자로 꼽힌다. 영문학자로서 문학과 예술, 철학은 물론 경제사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통찰을 바탕으로 세상과 인간의 실상과 바탕, 그 가능성과 한계를 따지는 묵직한 작업을 해왔기 때문이다.

사람들 전부 다 벼슬 너무 좋아해
부패 줄었지만 윤리적 삶과 거리

일반인 과학 이해 ‘엉터리’라도
발전하려면 대강이라도 알아야

정치로 모든 문제 풀려 해선 안 돼
정부 소득주도 성장 효과 미지수

 
그에게 2014년은 각별한 해였다. 네이버문화재단이 후원하는 대중 강연 ‘열린 연단: 문화의 안과 밖’ 자문위원장을 맡아 고급 학술 담론의 대중화 작업에 나섰고, 중앙SUNDAY의 대형 칼럼 ‘빠른 삶, 느린 생각’을 쓰기 시작했다. 열린 연단 5주년을 맞아 지난달 16일 서울대 오세정 총장과 기념대담을 한 김우창 교수를 20일 만났다. 요즘 사회와 우리 심성에 관한 섬세하고 사려 깊은 생각들을 엿볼 수 있었다.
 
열린 연단을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1990년대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시작한 ‘퍼블릭 언더스탠딩 오브 사이언스(Public Understanding of Science)’ 비슷한 것을 우리도 해보자는 취지로 만들었다. ‘대중의 과학 이해’ 쯤으로 생각하면 될 텐데 일반인도 어려워 하지 않게 과학을 해석해 가르치는 강연 프로그램이다. 여기서 과학은 자연과학뿐 아니라 인문과학·사회과학을 아우른다. 우리의 학문 연구도 과거에 비해 굉장히 다양해지고 심화됐다. 진짜 깊이 있게 됐느냐는 생각해봐야겠지만,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려면 여러 사람이 종합적으로 과학을 이해하면 좋다. 그런데 일반인의 과학 이해는 과학자가 들으면 ‘저거 엉터리야’ 할 수 있다. 그래도 대강대강이라도 알아야 한다. 사는 게 그렇게 돼 있다. 우리가 중국에 대해 잘 모르면서도 ‘중국 사람은 이래’ 그러면 상대방이 ‘당신이 중국 연구도 안 했는데 그걸 어떻게 알아’ 이렇게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일반론을 갖고 인생을 이해한다. 그러니까 대강대강이라도 과학을 이해하는 게 좋다.”
 
 
독일·일본은 무슨 일 하든 상호 존중
 
성과를 자평한다면.
“보통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과학 얘기가 잘 전달됐는지는 모르겠다. 학계에서 이뤄지는, 진리 탐구에 대해 얘기하는 게 그렇게 멀리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됐다면 좋다고 생각한다.”
 
오세정 총장과의 대담에서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되던 한국이 요즘 들어 선진국으로 분류되는데 정작 한국 사람들은 선진국이 무얼 뜻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한국은 선진국인가. 아니라면 어떤 점에서 그런가.
“도덕·윤리적 기준에서 아직 선진국 수준은 아니다. 정부의 낙하산 인사를 보면 아직도 ‘너 고생했으니 한자리 해라’ 하는 식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코드 인사에 대한 비판이 나왔을 때 ‘대통령과 근본 철학이 같아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중요한 자리에 앉히는 건 당연하다. 누구를 앉히느냐보다 그 사람을 통해 어떤 일을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내용의 신문 기고를 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그런 단계에 이르지 못한 것 같다. 사람들이 벼슬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다. 부패는 많이 줄었다. 교통규칙 위반하고 경찰에게 돈 주는 거 없어지지 않았나. 많이 나아졌는데 근본적으로 윤리적으로 살아야 한다. 대통령이 뭘 하든지 간에 자기는 자기 일을 해야 한다. 자기 삶을 올바르게 사는 게 중요하다.”
 
그렇게 사는 게 쉽지 않다. 자꾸 남과 비교하게 된다.
“그런 삶을 살려면 우선 먹고 살 수 있어야 한다. 또 밥만 먹는 게 아니라 자기 일에 열심인 사람을 사회가 인정해줘야 한다. 우리나라는 이름난 사람만 알아준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자기 일에서 보람과 재미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독일이나 일본에는 도제 전통이 남아 있어서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존중받는 문화가 있다. 우리처럼 전부 다 감투만 좋아하는 세상에서는 그런 게 성립 안 된다.”
 
정치 얘기를 해보자. 중앙SUNDAY 칼럼에서도 정치 관련 주제에 대해 가장 많이 썼던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다. 신문이니까 시사적인 것에 대해 쓰게 된다. 우리 마음에 정치가 가장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사람들이 우선 감투 써야겠다는 생각도 있고, 감투 쓴 사람에게 잘 보여야겠다는 생각도 있어서다. 또 과거에 비해 정치가 우리 삶에 지나치게 개입하고 있고, 그래서 그에 대해 알지 않으면 안 되게 됐다. 어떻게 양심적인 정치가 되게 하느냐가 핵심적인 상황이 됐다.”
 
정치인들의 이미지가 그리 좋지는 않다.
“정부든 정치인이든 정치가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문제다. 정치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은 공산주의 독재체제인데 거기서 사는 게 행복한 사람은 많지 않다.”
 
정치인들 스스로 정치 만능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결국 정치인들의 문화 수준이 올라가야 한다. 정치인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화 수준이 올라가 양심적이고 윤리적인 사회가 되면 누구에게 정치를 맡겨도 잘할 것이다. 양심적이고 윤리적이어야 한다고 해서 인간의 본성이나 욕망을 억제하자는 게 아니다. 사람의 필요와 욕망을 지나치게 한쪽으로 몰아붙이면 사회가 무너진다. 그것들이 사회 전체와 조화를 이뤄야 하는데 그게 가능한 정치 체제를 만들려면 그 사회에 일정한 문화가 있어야 하고, 그 문화 안에 윤리와 도덕이 삽입되어 있어야 한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문제다.”
 
윤리와 욕망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나.
“윤리라는 건 반드시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게 아니다. 물론 강직하게 똑바로 산다는 의미도 있다. 하지만 윤리·도덕은 결국 어떻게 사는 게 나에게 좋은 것이냐를 알려준다. 먹는 거 자제하지 않으면 건강 해치고, 사는 게 괴로워 마약 하고 술 마시다 보면 신세 망치게 된다. 무작정 따르는 게 아니라 자기 규율과 절제를 따르는 게 인생의 선택들에 있어서 중요한 방법이어야 한다. 그런 의식이 사회 속에 퍼져 있어야 한다. 그걸 누가 나서서 가르치면 괴롭다. 최근에 여성가족부가 너무 똑같은 외모의 연예인들을 TV에 출연시키면 안 된다고 했던데, 그래 가지고는 문제 해결이 안 된다. 저절로, 나는 그쪽을 선택하겠다, 그런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런 생각을 사회적으로 촉진할 방법은 있을까.
“입법·사법·행정부가 서로 견제하며 나라를 이끌어 나가는 것처럼 다양한 영역의 사람들이 서로 존중하고 견제하는 체크 앤 밸런스 문화가 발달해야 한다. 금욕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나 학문하는 사람, 봉사하는 사람들이 똑같이 존중받고 사회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전반적인 문화 수준이 올라가고 정치도 좋아진다.”
 
 
고은 판결, 윤리의 발생 근본 따져봐야
 
화제를 바꿔보자. 극단적인 자본주의의 폐해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잇따른다. 성장 일변도가 환경 오염을 가속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있는데.
“환경문제를 생각하면 경제성장을 고집하기는 어렵다. 지금처럼 모든 나라가 경제성장을 추구하면 환경은 결국 무너진다. 하지만 환경을 생각하면서 조심스럽게 성장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을 한 나라가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우리는 성장을 안 하고 가난하게 사는데 옆 나라가 부자로 살면 끌리는 건 어쩔 수 없다. 공산주의까지 그러지 않나. 김정은 위원장도 지난해 전용차 바꿨다. 그러니 우리도 성장 안 할 수 없다. 사실 우리나라는 지금 있는 거 나눠서 지금 정도로 살아도 된다. 하지만 사람들이 더 화려한 걸 원하고, 국제 비교의 문제도 있으니까 성장은 해야 한다.”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은 어떻게 보나.
“경제 성장과 소득 재분배는 연결이 잘 안 된다. 그러니까 따로따로 생각해 봐야 한다. 정부 주변에 좋은 경제학자들이 있을 텐데 저소득층 소득이 올라간다고 소비가 늘어나는 건 아니다. 소득이 많아져 봐야 먹고 살기 바쁜데 뭘 사고 말고 하겠는가. 과거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 시절 ‘서플라이 사이드 이코노믹스(Supply-side economics·공급경제학)’라고 소득세를 깎아줘 경제성장 한다고 했다. 그건 있을 수 있는 얘기다. 부자들이 상대적으로 혜택을 본다는 비난이 있었는데, 아무리 부자라도 하루 열 끼 먹지 않는다. 결국 사회사업이나 장학금·연구지원 같은 곳에 돈을 쓰게 된다. 미국의 카네기·록펠러가 그랬다. 너무 한 쪽으로 돈이 몰려도 안 되겠지만 너무 많다고 탓할 것도 아니다. 어떤 형태의 소비가 옳은 것인지가 그 사회에서 문화적으로 정의돼야 한다.”
 
최근 고은 시인이 최영미 시인 등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 1심에서 패소했는데.
“인간 세상에서 윤리 규범이 왜 중요하게 됐느냐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하려다 보니 방탕한 삶이 끼어드는 측면이 있다는 얘기가 나왔으면 했는데 문학은 원래 그런 거다는 식의 얘기만 나오는 것 같아 아쉽다.”
 
『지상의 척도』등 저서는 ‘사고를 위한 최고 텍스트’
지상의 척도

지상의 척도

‘한국 최고의 생존 인문학자’. 김우창 교수에게는 이런 최상급의 찬사가 심심치 않게 따라붙는다. 이런 표현도 있다. ‘김우창의 텍스트야말로 사고실험을 위한 최고의 텍스트’.
 
그만큼 그의 세계가 높아서 쉽지 않다는 얘기다. ‘전모’를 파악하기 어렵다면 돌아가자. 시기별 주요 저작 속 흥미로운 글들은, 적어도 기자에게는, 다음과 같다.
 
먼저 2014년 『깊은 마음의 생태학』의 머리글. 사람이 자기 의지에 따라 생각을 하고 어떤 판단을 내리는 것 같지만 실은 그런 신념이나 생각이 “얼마나 세계적인 테두리, 또는 세계적인 판도를 이루는 영역에 생기는 흐름에 영향을 받는가를” 명쾌하게 보여준다.
 
깊은 마음의 생태학

깊은 마음의 생태학

1992년 작 『심미적 이성의 탐구』안에 실린 글 ‘심미적 이성’은 세상 전체를 해석해 보여주겠다는 시도들이 어째서 오류로 흐를 가능성이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전한다. 1981년 작 『지상의 척도』에 실린 ‘문학의 현실참여’는 엄혹했던 1978년 전남대 강연 원고인데, 문학의 참여에 관한 풍부한 논의가 뚫고 들어가기 어려운 무성한 숲을 이루는 느낌이다. 참고로 이 글 앞머리의 첫 번째 최상급은 문필가 고종석, 두 번째 최상급은 문광훈 충북대 교수의 표현이다. 
 
신준봉 기자 중앙 컬처&라이프스타일랩
inform@joongang.co.kr, 사진= 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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