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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에 걸려 화제된 김구 초상화···왜 하필 쌀로 만들었나

중앙일보 2019.03.01 10:23
 
 

[눕터뷰] 3·1절에 다시 불러낸 독립운동가

 
 
 
 
 
경기도 양주 가나아뜰리에 작업실 바닥에 누운 이동재 작가, 3.1절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흑과 백으로 된 옷을 입었다고 했다.

경기도 양주 가나아뜰리에 작업실 바닥에 누운 이동재 작가, 3.1절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흑과 백으로 된 옷을 입었다고 했다.

이동재 작가가 누웠다.
안중근, 김좌진, 한용운, 전봉준 존영과 함께다.
그가 만든 존영들이다.
3·1운동 100주년에 이 작가가 눕터뷰 주인공인 이유다. 
 
icon_Kim gu / 쌀을 한 톨씩 붙여서 만든 초상이다, 실제 크기는 100 x 100 cm /이동재 작가 제공

icon_Kim gu / 쌀을 한 톨씩 붙여서 만든 초상이다, 실제 크기는 100 x 100 cm /이동재 작가 제공

지난해 10월, 이 작가가 화제의 중심에 선 적 있다.
청와대에 그의 작품이 걸렸기 때문이었다.
바로 김구 선생의 존영이었다.
 
그런데 그 존영이 여느 작품과 사뭇 달랐다.
쌀을 한 톨 한 톨씩 붙여서 만든 작품이었다.
 
이 작가에게 당시 일을 질문했다.
“어떤 이유로 김구 선생 초상이 청와대에 걸린 겁니까?”
 
“백범 친필인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를 유족이 청와대에 기증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선생의 친필과 나란히 존영을 감상할 수 있게끔, 청와대에서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된 제 작품을 임대했다고 들었습니다.”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는 백범 서거 한 해 전 작품이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 눈 내리는 벌판 한가운데를 걸을 때라도
不須胡亂行(불수호난행) / 어지럽게 걷지 말라.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 오늘 걸어간 이 발자국들이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 뒤따라오는 사람들에게 이정표가 되리니.
大韓民國三十年十月二十六日七十三歲白凡金九/ 대한민국 30년 10월 26일 73세 백범 김구
 
 
“그런데 왜 쌀로 존영을 만든 겁니까?”
 
 
“우리 선조들이 한반도에 정착한 후 가장 중요한 작물이 쌀이었습니다. 이런 역사와 문화적 의미를 가진 쌀과 김구 선생이 품은 민족 정체성이 맥을 같이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녹두를 한 알씩 붙여서 만든 녹두장군 전봉준 초상.

녹두를 한 알씩 붙여서 만든 녹두장군 전봉준 초상.

그는 일찍이 쌀 뿐만 아니라 우리 곡물로 만든 작품으로 주목받는 작가였다.
콩, 팥, 녹두, 좁쌀 등의 소재인데 오늘날까지 이 작가를 이끌어 온 주춧돌이었다.
 
녹두로 만든 녹두 장군 전봉준,
콩으로 만든 미스터 빈,
현미로 만든 가수 현미,
쌀로 만든 라이스 전 미국 국무부 장관 등으로 이미 스타 작가 반열에 올라있었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안중근 의사, 김좌진 장군, 한용운 선생,녹두장군 전봉준이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안중근 의사, 김좌진 장군, 한용운 선생,녹두장군 전봉준이다.

눕터뷰 사진을 찍으려 그가 어렵사리 준비한 게 모두 네 작품이었다.
 
레진 소재 알파벳으로 만든 안중근 의사,
레진 소재 별로 김좌진 장군,
크리스털로 만든 한용운 선생,
녹두로 만든 녹두장군 전봉준이었다.
그는 이미 곡물을 넘어 다른 소재로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사진 촬영 준비를 하는 데 그가 말했다.
“사실 3.1운동 컨셉에 맞게끔 옷을 흑과 백으로 입고 왔습니다.”
 
그의 말에 적잖이 놀랐다.
미처 생각조차 못 했는데 그가 알아서 준비한 게다.
 
이동재 작가가 알파벳 KOREA를 찾고 있다.

이동재 작가가 알파벳 KOREA를 찾고 있다.

 
조명을 조정하는 동안 갑자기 그가 벌떡 일어나 뭔가를 했다.
엎드린 채 알파벳을 바닥에 뿌리고 있었다.
 
“뭔가요?”
 
“이왕이면 KOREA를 바닥에 놓아보려고요.”
 
과연 섬세했다.
두 대형 작품과 사람 크기를 감안 할 때,
손톱보다 작은 알파벳이 눈에 띄지도 않을 터다.
그런데도 그는 미세한 부분을 간과하지 않았다.
 
쌀 한 톨씩,
좁쌀 하나씩,  
팥 한 알씩 붙여서 초상을 만드는 섬세함이
그의 말과 행동에서도 읽혔다.
 
 
 
서울 성북동 '60 화랑'에서 한용운, 김환기, 조지훈, 이태준, 전형필 초상과 함께 텍스트 시리즈도 전시되고 있다. 6월까지 전시 될 예정이며 무료다. 사진 이동재 작가 제공

서울 성북동 '60 화랑'에서 한용운, 김환기, 조지훈, 이태준, 전형필 초상과 함께 텍스트 시리즈도 전시되고 있다. 6월까지 전시 될 예정이며 무료다. 사진 이동재 작가 제공

 
“요즘은 쌀과 곡물이 아니라 다양한 소재로 작업하시죠?”
 
“그렇습니다. 그런 소재들만으로 작업하면 쌀 작가, 곡물 작가로 규정됩니다. 예술이란 게 규정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다양한 소재를 작품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지금 성북동 60 화랑에서 전시하고 있는 작품들이 그런 것인가요?”
 
“맞습니다. 제가 성북동에 산 지 2년쯤 되었습니다.
살면서 여기 흔적이 있는 예술가들의 삶을 한 걸음씩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독립운동가 한용운, 화가 김환기, 시인 조지훈, 소설가 이태준, 문화재 수집가 전형필의 초상을 크리스털로 만들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왜 다시 그들을 불러냈을까?
60화랑 김정민 디렉터가 쓴 글에서 다섯 초상을 다시금 불러낸 이유가 읽혔다.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불운 탓에 자기 뜻을 펴지 못한 성북동의 대가들이 크리스털 씨앗을 통해 다시 피어나는 듯 화사하여, 다가올 성북동의 봄 향기가 물씬 풍긴다.’  
 
사라졌으나, 다시 초상으로 존재케 함으로써 잊힌 뜻을 다시 불러 낸 이동재 작가, 나누고 소통하자는 의미라 했다.

사라졌으나, 다시 초상으로 존재케 함으로써 잊힌 뜻을 다시 불러 낸 이동재 작가, 나누고 소통하자는 의미라 했다.

 
이 글을 통해 그동안 그가 만들어 온 초상의 의미가 전해져 왔다.
누구 하나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아주 작은 알갱이들로 하여금,
사라졌으나,  
그 얼굴 다시 존재케 함으로써,
품고 펼쳤으나 이제는 잊힌 뜻을 다시 나누고자 함인 게다.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작가 이동재가 바닥에 누운 이유다,
안중근, 김좌진, 한용운, 전봉준 존영과 함께….  
 
사진·글·동영상 권혁재 사진전문기자(shotgun@joongang.co.kr) 
 
 
 
 
눕터뷰
'누워서 하는 인터뷰'의 줄임말로, 인물과 그가 소유한 장비 등을 함께 보여주는 새로운 형식의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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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권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