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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공군 효시 '임정 비행학교'…노백린의 꿈, 99년만에 날다

중앙일보 2019.02.28 11:54
“대한민국 공군의 태동은 1910~1920년대 일제로부터 잃어버린 주권을 찾기 위해 국내·외에서 진행된 ‘독립운동’에서 그 맥을 찾을 수 있다. (중략)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한인 비행학교(윌로우스)를 설립한 것 등이 ‘항공독립운동’을 위한 실제적인 활동이었으며…”

이완용에게 “워리 워리”한
노백린 임정 첫 군무총장과
美 이주노동자 출신 거부 김종림
의기투합해 1920년 비행학교 설립

김종림 선생, 지금 돈 112억원 투입
박희성·이용근 첫 임정 비행장교 배출
재미 한인 류기원씨, 학교 흔적 발견해
내년 개관 목표, 현지 기념공원·기념관 추진

 
노백린 장군이 1920년 3월 미국 캘리포니아 윌로우스에 설립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한인 비행학교(윌로우스 비행학교). [사진 윌로우스항공기념재단]

노백린 장군이 1920년 3월 미국 캘리포니아 윌로우스에 설립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한인 비행학교(윌로우스 비행학교). [사진 윌로우스항공기념재단]

노백린 장군이 1920년 3월 미국 캘리포니아 윌로우스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한인 비행학교(윌로우스 비행학교)를 설립하기 전에도 이 지역에는 미국 항공학교에서 비행교육을 받은 한인들이 있었다. 이 중 일부는 윌로우스 비행학교에서 교관으로 활약했다. [사진 윌로우스항공기념재단]

노백린 장군이 1920년 3월 미국 캘리포니아 윌로우스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한인 비행학교(윌로우스 비행학교)를 설립하기 전에도 이 지역에는 미국 항공학교에서 비행교육을 받은 한인들이 있었다. 이 중 일부는 윌로우스 비행학교에서 교관으로 활약했다. [사진 윌로우스항공기념재단]

대한민국 공군은 공식 홈페이지에 공군의 연혁을 이렇게 설명한다. 미국 캘리포니아 윌로우스시(市)에 창설됐던 한인 비행학교 ‘윌로우스 비행학교’가 공군의 효시(嚆矢)라고 본다. 윌로우스 비행학교는 2003년 한 재미 한인이 학교 건물을 발견하면서 이듬해인 2004년 그 존재가 대중에 알려졌다.
 
당시 탐사 활동으로 학교의 존재를 알린 이가 류기원(80·단국대 초빙교수) 윌로우스항공기념재단 회장이다. 그는 지난 25일 중앙일보와 만나 “대한민국 임시정부(임정) 수립 100주년을 맞아 임정의 한인 비행학교 설립 100주년(2020년) 기념사업을 공군역사기록관리단의 도움을 받아 미국 현지에서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재단은 2016년 9월 공식 출범한 이후 지난해 7월 미 현지 당국으로부터 기념공원·기념관 부지 20에이커(약 8만1000㎡)를 장기임대 형식으로 확보했다.
 
류기원 윌로우스항공기념재단 회장이 지난 25일 중앙일보 본사에서 '윌로우스 비행학교'를 설립한 독립운동가 노백린 장군의 자료를 설명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류기원 윌로우스항공기념재단 회장이 지난 25일 중앙일보 본사에서 '윌로우스 비행학교'를 설립한 독립운동가 노백린 장군의 자료를 설명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류기원 회장 등 윌로우스항공기념재단 관계자들이 지난해 7월 미국 캘리포니아 글렌카운티 정부의 기념사업 부지 임대 계약을 위한 결의안 통과 뒤 오상훈 주샌프란시스코 영사 등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윌로우스항공기념재단]

류기원 회장 등 윌로우스항공기념재단 관계자들이 지난해 7월 미국 캘리포니아 글렌카운티 정부의 기념사업 부지 임대 계약을 위한 결의안 통과 뒤 오상훈 주샌프란시스코 영사 등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윌로우스항공기념재단]

윌로우스 비행학교의 학교 건물로 쓰였던 '퀸트스쿨'은 1924년 학교 인근 다른 지역으로 이전돼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사진 윌로우스항공기념재단]

윌로우스 비행학교의 학교 건물로 쓰였던 '퀸트스쿨'은 1924년 학교 인근 다른 지역으로 이전돼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사진 윌로우스항공기념재단]

윌로우스 비행학교는 임정 수립 이듬해인 1920년 3월 임정 초대 군무총장 노백린(1875~1926) 장군 주도로 설립됐다. 일찍이 일본에서 유학한 그는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대한제국 군대에 몸담았다. 1906년 초대 조선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연회를 열었을 때는 참석자 중 한 명인 이완용에게 마치 개를 대하듯 “워리, 워리”하고 불렀고, 이를 보고 칼을 빼 든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 조선주차군(일본주둔군) 사령관(제2대 조선 총독)에게 똑같이 칼로 맞섰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1907년 군대가 해산된 이후에는 독립운동에 투신했고 1910년 한·일합병 뒤 중국 상하이(上海)와 미국 캘리포니아·하와이 등지에서 활동했다. 그는 독립전쟁을 통한 국권 회복을 주장하는 ‘무장투쟁론자’였다. 윌로우스 비행학교를 설립한 것도 1차 세계대전 이후 각국에서 필요성이 대두한 공군력을 스스로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노 장군의 자녀들(노선경·노태준·노순경)도 독립운동에 투신했는데, 특히 차남 노태준(1911~1970) 선생은 임정 광복군에서 미 전략정보국(OSS·CIA의 전신)과 함께 ‘국내 진공작전’ 수립에 참여하기도 했다.
 
노백린 장군이 1907년 일제가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 해산한 뒤 낙향하는 모습. [사진 윌로우스항공기념재단]

노백린 장군이 1907년 일제가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 해산한 뒤 낙향하는 모습. [사진 윌로우스항공기념재단]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대원들이 미국 전략정보국(OSS·미 CIA의 전신) 대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 첫 줄 맨 왼쪽 인물이 노백린 장군의 차남 노태준 선생이다. [사진 윌로우스항공기념재단]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대원들이 미국 전략정보국(OSS·미 CIA의 전신) 대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 첫 줄 맨 왼쪽 인물이 노백린 장군의 차남 노태준 선생이다. [사진 윌로우스항공기념재단]

당시 캘리포니아에서 쌀농사로 부를 축적한 이주노동자 출신 김종림(1886~1973) 선생은 학교 설립을 위한 재정 지원을 맡았다. 현지에서 ‘최초의 한인 백만장자’ ‘쌀의 왕(Rice King)’ 등의 별명을 가졌던 그는 학교 부지 40에이커(약 16만2000㎡)와 훈련기 구매를 위한 자금 약 5만 달러(2만 달러에 운영비 월 3000달러)를 제공했다. 당시 5만 달러는 현재 가치로 환산했을 때 약 112억원에 이르는 거액이다. 노 장군은 100여 명의 민간인 조종사를 훈련시킨 경험이 있는 미국인 프랭크 브라이언트를 설득해 교관으로 초빙했다. 당시 브라이언트는 새로 창설된 미 육군 항공학교에 합류하기 전이라 흔쾌히 응했다고 한다.

 
대한닌국 임시정부의 최초 비행장교인 박희성, 이용근 참위. [사진 윌로우스항공기념재단]

대한닌국 임시정부의 최초 비행장교인 박희성, 이용근 참위. [사진 윌로우스항공기념재단]

윌로우스 항공학교에서는 약 70여명의 한인이 비행 교육을 받았는데, 이 중에는 1921년 7월 임정으로부터 최초의 비행장교로 임명된 박희성·이용근 참위(지금의 소위)도 있었다. 나머지 훈련생 중 일부는 중국 국민당 정부의 항공대 창설에 기여하며 항일전쟁에 뛰어들기도 했다. 그러나 학교는 개교 첫해 대홍수로 김종림 선생의 농장이 훼손되면서 재정적으로 타격을 입어 1921년 4월 폐교됐다.

 
윌로우스 비행학교의 학교 건물로 쓰였던 '퀸트스쿨'은 1924년 학교 인근 다른 지역으로 이전돼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사진 윌로우스항공기념재단]

윌로우스 비행학교의 학교 건물로 쓰였던 '퀸트스쿨'은 1924년 학교 인근 다른 지역으로 이전돼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사진 윌로우스항공기념재단]

미국 캘리포니아 윌로우스 공항의 2003년 당시 모습. 재단은 이곳에 윌로우스 한인 항공학교 기념관과 기념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사진 윌로우스항공기념재단]

미국 캘리포니아 윌로우스 공항의 2003년 당시 모습. 재단은 이곳에 윌로우스 한인 항공학교 기념관과 기념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사진 윌로우스항공기념재단]

윌로우스시는 태평양전쟁(1941~1945) 당시 ‘도쿄(東京)공습’으로 유명한 미 육군 항공대(지금의 공군) ‘두리틀(Doolittle)’ 부대의 훈련 장소이기도 했다. 재단 측이 확보한 기념사업 부지도 두리틀 부대가 사용하던 ‘윌로우스-글렌 공항’ 내부에 있다. 류 회장은 “윌로우스는 미 공군 역사에서도 중요한 장소로, 한·미 양국 항공사(史)의 기념비적인 곳이다. 기념관·기념공원을 건립할 때 한쪽은 한국관, 다른 한쪽은 미국관으로 조성해 한·미 항공·군사 교류의 상징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류 회장에 따르면 공항을 소유한 글렌 카운티 당국은 해당 부지를 유적지로 인정하고, 재단 측이 구체적인 사업계획서를 제출하면 정식으로 계약(월 2달러에 30년 임대)을 체결하기로 했다. 그는 “연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실상 반영구 임대”라고 설명했다.
 
재단 추산 총 73억7000만원의 사업비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기념사업은 이르면 올 10월 첫 삽을 뜰 예정이다. 국가보훈처가 4월 최종 심의를 거쳐 기념사업을 지원키로 결정하면 총 사업비 30% 범위의 국가 예산이 투입된다. 류 회장이 발견해 현재까지 보존돼 온 학교 건물은 기념사업 부지로 이전하고, 당시 사용한 훈련기 등은 같은 모양으로 복원해 전시할 계획이다. 류 회장은 “지금은 농장이 된 학교 터는 미 연방정부에 사적지 신청을 할 것”이라며 “기념사업을 통해 국내에는 익숙지 않은 미주 애국지사들의 항공 독립운동과 한·미 항공 교류의 역사가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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