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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호의 시선] 몸은 하노이, 마음은 워싱턴에 가있을 트럼프

중앙일보 2019.02.28 00:41 종합 28면 지면보기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지난해 5월. 6월 13일로 전국지방선거 날짜가 잡힌 가운데 돌연 워싱턴이 그 전날인 6월 12일 사상 초유의 북·미정상회담을 싱가포르에서 개최한다고 발표했다. 자유한국당에선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안 그래도 패색이 짙은데 여당에 유리한 메가톤급 쓰나미가 ‘끝판왕’으로 추가됐기 때문이었다. 당황한 한국당 내부에선 괴담이 떠돌았다. “정부·여당이 북한과 미국에 ‘로비’해 그런 택일을 하게 한 것”이란 주장이었다. “주사파 운동권 출신 여당 인사가 평양, 미국과 가까운 정부 인사가 워싱턴과 각각 접촉해 12일로 날을 잡게 했다”는 ‘디테일’(?) 까지 나왔지만, 물증이 나올 리 만무했다.
 

악재인 ‘코언 청문회’, 북·미정상회담 일정과 겹쳐
‘스몰딜’ 과포장해 정치위기 덮으려 할 우려 커져

당시 한국당 대표 홍준표는 “트럼프는 외교도 장사로 여기나”는 메시지로 미국의 마음을 되돌리려 했다. 그러나 북·미 간에 확정된 정상회담을 한국의 야당이 뒤집을 능력은 없었다. 회담은 예정대로 치러졌고 트럼프와 김정은의 포옹, 한·미연합훈련 중단 선언 등 회담에서 나온 결과들은 한국당에 불리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었다. 한국당이 6·13 지방선거에서 17곳 광역단체장 중 15곳을 내주며 역대 최악의 참패를 한데는 전날 열린 북·미정상회담이 큰 역할을 한 게 분명했다.
 
한데 이번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당 처지가 되어버렸다. 본인이 하노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재회하는 27~28일에 미국에선 트럼프의 개인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언 청문회가 열리게 됐기 때문이다. 하노이와 12시간 시차를 두고 워싱턴에서 잇따라 열리는 이 청문회는 트럼프를 심각한 정치적 궁지로 몰아넣을 수 있는 ‘핵폭탄급 이벤트’다. CNN 등 미국 언론은 하노이 정상회담은 제쳐두고 코언 청문회 관련 뉴스로 도배를 하고 있다.
 
트럼프 밑에서 12년간 핵심 참모로 활동한 코언은 트럼프 캠프가 대선 과정에서 모스크바와 내통해 도움을 받았다는 이른바 ‘러시아 스캔들’의 핵심 증인 중 한 명이다. 그는 지난해 12월 1심 재판에서 트럼프 캠프의 선거자금을 유용해 트럼프와 성 추문에 휩싸였던 여성 2명에게 입막음용으로 돈을 지불하고 의회에서 위증한 혐의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원래는 5~6년 징역형이 예상됐다. 하지만 코언이 감형을 받아내기 위해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팀의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나서면서 ‘플리바겐’(정보 제공 피의자를 감형하는 법적 거래)이 성립돼 3년형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시선

시선

코언은 트럼프 참모 시절 트럼프에게 제기된 온갖 의혹을 덮는 ‘설거지’ 전문가였다. 이런 그가 청문회에서 입을 열면 트럼프의 러시아 내통 의혹은 물론 기업인 시절 탈세와 정치자금법 위반 의혹, 트럼프 재단의 불투명한 사업 관행 등 민감한 이슈들이 대거 튀어나올 수 있다.
 
트럼프는 몸은 하노이에서 김정은과 핵 담판을 벌이면서도 마음은 온통 워싱턴을 향해 있을 것이다. 실시간으로 진행 중인 청문회에서 코언이 뭔 얘기를 하고 있는지에 온 신경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이미 코언은 20일 “미국민은 청문회에서 내 얘기를 기대하라”고 밝혀 대대적 폭로를 예고했다.
 
아마도 28일 이틀간의 북·미정상회담을 마친 트럼프가 이튿날 워싱턴 앤드류스 공군기지에 내리면 미국 기자들은 회담 결과 대신 청문회에서 폭로된 의혹들만 갖고 질문 공세를 퍼부을 것이다. CNN 헤드라인과 NYT 1면 톱도 북·미정상회담 대신 코언 청문회 소식이 차지할 공산이 높다. 트럼프로선 상상만 해도 고통스러운 시나리오다. 이런 ‘주군’의 마음을 헤아린 트럼프 참모들은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이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을 망쳐놓기 위해 청문회를 의도적으로 회담 날에 맞췄다”며 ‘한국당식’ 비난에 나섰다. 하지만 여야가 합의한 의회 일정을 백악관이 바꿀 순 없는 법이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가 택할 카드는 예측하기 어렵지 않다. 하노이 회담에서 모두가 깜짝 놀랄 합의를 끌어내 ‘코언 청문회 파문’을 덮는 게 그것이다. “마침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약속을 받아냈다. 역대 어느 대통령도 못 이룬 성과” 같은 ‘한 방’을 노릴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도 바보는 아니다. 미국의 국내정치 상황을 북한만큼 자세히 꿰고 있는 나라도 드물다. 정권의 안위가 미국 동향에 달렸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런 시나리오가 최악이 된다. ▶김정은은 ‘선전하기 그럴듯한 성과’를 갈망하는 트럼프의 심정을 십분 이용해 ‘내용은 스몰 딜인데 포장은 빅딜’인 제안을 하고 ▶ 트럼프는 이를 덥석 받아 미국인들에게 ‘엄청난 성과’라고 내세우는 결과 말이다.  
 
그럴 경우 북한은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를 굳히게 된다. 그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볼 나라는 말할 것도 없이 우리다. 정부가 명심해야 할 대목이다. 남북관계 진전도 좋지만 나라 안보가 허약해지면 모든 것이 허사다. 트럼프에게 “사심 없이 ‘빅딜’을 밀어붙이는 것만이 북한을 제대로 비핵화하고 당신도 정치 위기에서 벗어나는 첩경”이라고 설득하는 용단을 촉구한다. 
 
강찬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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