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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만약 김군이 살아 있다면

중앙일보 2019.02.28 00:39 종합 30면 지면보기
강혜란 국제외교안보팀 차장

강혜란 국제외교안보팀 차장

“한국인이라는데, 아이쿠, 큰일이다 싶었죠.” 지난주 사석에서 만난 전직 재외공관장이 몇 년 전 에피소드를 말하다 내비친 속내다.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활개 치는 험지에 부임한 그에게 어느날 국제기구에서 통보가 왔다. 체포된 IS 가족들을 면담했는데 그중 “한국인 아내가 있다”고 했다. 의아해 하며 달려갔지만 해당 여성은 한국인 핏줄의 인종적 특징도 보이지 않았고 한국 국적자라는 법적 근거도 대지 못했다. 전직 공관장은 “행여나 한국인이라면 일단 데려와야 했을 텐데, 여론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게 감이 안 오면 ‘김군’의 경우를 가정해보자. 2015년 당시 17세였던 김군은 터키를 거쳐 시리아에 밀입국했다. 국정원은 그가 IS에서 훈련을 받은 것까진 추적했지만 이후 경로는 확인된 바 없다. 연합군 폭격에 따른 사망설이 돌기도 했다. 그랬던 김군이 만약 난민 캠프에서 발견된다면? “후회한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한다면? 요즘 온라인상의 분위기로는 김군의 입국을 거부하자거나 국적을 박탈하라는 청와대 청원이 빗발칠지 모른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 각국이 IS 가담 자국민의 송환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시리아 내전 및 IS 소탕전이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면서다. IS 선전전에 넘어가 전투원과 결혼한 여성들과 그들의 자녀도 ‘뜨거운 감자’다. 이들의 귀환을 반대하는 측에선 테러리스트 송환이 사회 안전에 위협이 될 것이라며 이들에겐 ‘국적 말소’라는 대가가 치러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세계인권선언 9조는 국적자를 국가가 추방(국적 말소)할 수 없다고 공표한다. 한국이 1962년 가입한 ‘무국적자의 감소에 관한 협약’ 역시 국적 말소로 인해 무국적자가 되는 일이 없게 규정한다. 이는 국적 보유자에게 자국 정부의 보호를 보장하는 인도적 목적과 함께 주권국가가 범법자에 대해 사법권을 발동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한국의 국적법도 복수국적자가 아닌 선천적 단일국적자에 대해선 국적 상실을 배제한다.
 
만약 김군이 살아있어 그가 귀국을 희망한다면 입국을 불허할 근거는 없다. 대신 입국장에서 그를 체포하여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 한다. 지난해 말 국내에서 IS 추종 활동과 단체 가입 선동 혐의로 30대 시리아인에게 징역 3년이 선고됐다. 2016년 논란 끝에 통과된 이른바 ‘테러방지법’이 적용된 첫 사례다. 같은 법 17조는 타국의 외국인테러전투원으로 가입한 사람을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범법자에겐 입국 거부나 국적 말소가 능사가 아니라 국법에 따라 죗값을 치르게 해야 한다. 그래야 제2, 제3의 김군을 막을 수 있다.
 
강혜란 국제외교안보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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