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분수대] 비핵화 하는 척 믿는 척

중앙일보 2019.02.28 00:34 종합 31면 지면보기
고정애 탐사보도에디터

고정애 탐사보도에디터

“북한은 비핵화를 하는 척하고 트럼프는 믿는 척한다.” 이 문장을 보곤 “꼴보수의 말인가” 여길 수도 있겠다. 아니다. 실제론 미국 워싱턴에 있는 일군(一群)의 전문가, 엄밀하게 말하면 북한의 핵 보유를 용인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그룹에서 나오는 주장이다. 미들베리국제학연구소에서 동아시아 비확산프로그램 소장으로 일하는 제프리 루이스 박사도 그중 한 명이다. 북·미 간 핵전쟁 가능성을 점검한 그의 소설이 지난해 발간돼 한국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이번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도 “북한이 무장 해제를 하는 척(mimic disarmament)할 것”이라고 봤다. 26일 외교안보전문지 포린폴리시에 실린 그의 글에서 몇 대목을 소개할까 한다.
 
①북한은 무장해제를 제안하고 있지 않다. 김정은에게 비핵화란 할아버지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일종의 열망 같은 것이다. 버락 오마바의 2009년 ‘핵무기 없는 세계’ 구상과 비슷하다. 누구도 그게 미국의 비핵화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 것이다. ②북한이 제안한 건 무장해제를 하는 척하는 일련의 제스처들이다. 영변 핵시설과 미사일 시험장 폐쇄 및 해체 등등. 이게 북 핵 위협 자체를 줄이거나 핵·미사일 생산을 막지는 못한다. ③바꿔 말해 북한은 이스라엘(혹자는 인도)과 같은 지위를 요구하는 것이다. 핵을 보유했으되, 떠벌리진 않는 상태 말이다. ④종전선언과 북·미 관계 개선, 외교관계 수립, 제재 해제 등을 해주면 기꺼이 ‘착하게 처신’(play nice)하겠다는 것이기도 하다.
 
루이스 박사는, 결과적으로 잔혹한 독재 정권을 감내해야 하고 때론 더한 재래식 도발로 이어질 수 있으나 그럼에도 해볼 만한 시도라고 본다. 북한이 핵폭탄을 가졌고 미국이 군사적으로 북한의 핵무장을 해제할 수 없다는 현실론에서다. 이해 가는 논리다. 미국의 전문가라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의문이 계속 맴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문재인 대통령은 “경제와 번영으로 가는 ‘신(新)한반도 체제’를 주도적으로 준비하겠다”고 했다. 현 정부는 제재를 풀, 아니면 적어도 우회할 방법을 찾아내느라 골몰한 듯하다. 비싼 값에 팔 수 있을 듯한 경제협력 카드를 싼값에 내보이고 있다. 틀림없이 핵 동결을 넘어 비핵화까진 (설령 실현할 수 있다 해도) 먼 길이 될 터인데 장차 무엇을, 어디까지 내놓으려는지 또 내놓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혹여 북한이 하는 척하고 트럼프가 믿는 척하니 우리도 주는 척하는 건가.
 
고정애 탐사보도에디터

공유하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