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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100년 전 우리가 함께 외친 평화·자유·인도주의

중앙일보 2019.02.28 00:04 경제 4면 지면보기
박경서 대한적십자사 회장

박경서 대한적십자사 회장

“기미년 삼월 일 일 정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 독립 만세 !”해마다 이맘때면 생각나는 노래가 있다. 창밖의 풍경은 여전히 메마른 겨울이지만 위의 가사를 읊조리고 있노라면 어느새 가슴은 뜨거운 기운으로 가득해진다. 1919년 3월 1일, 한반도에 “대한독립 만세!”가 울려 퍼졌다. 이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규모의 독립운동이었다는 점에서 놀랍지만, 필자는 민주주의, 평화, 비폭력을 원칙으로 한 민중의 시대정신과 평화의식에 주목하고 싶다.
 
“2000만 한국인을 위력으로 구속한다면 ‘동양의 영구한 평화’는 보장할 수 없다.” “오늘 우리들의 이 거사는 정의·인도·생존·번영을 위하는 겨레의 요구이니, 오직 자유의 정신을 발휘할 것이요,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치닫지 말라.” <1919년 기미 독립선언서 중>
 
당시 독립선언서를 보면 내 나라는 사라진 1919년에도 민중은 여전히 평화와 자유·인도주의를 꿈꾸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안타깝게도 그날의 함성은 곧바로 대한의 독립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1919년 중국의 5·4운동을 주도한 푸쓰녠(傅斯年)의 말처럼 “3·1운동은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한 혁명”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평화와 정의·인도주의를 요체로 한 3·1운동 정신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대한적십자회가 탄생할 수 있었다. 한반도에 인도주의 정신이 부활한 것이다.
 
대한적십자사의 탄생은 19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외세의 침략으로 부침이 심했던 당시, 국제사회에 중립국으로 바로 서고자 고종이 대한제국적십자사를 설립했다. 하지만 대한제국적십자사는 1909년, 일제에 의해 폐사된 아픈 역사가 있었다.
 
1905년, 대한제국적십자사가 중립외교 정책의 하나로 설립되었다면 1919년 임시정부가 설립한 대한적십자회는 안창호, 이희경, 여운형, 안정근 등 애국지사들의 뜻에 따라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적십자 간호원 양성소를 통해 독립군 부상자를 치료했고, 십시일반 독립운동자금을 모았다.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국제적십자회의에 참석하는 등 대한적십자회를 통한 독립운동은 멈추지 않았다. 적십자 인도주의 운동은 우리나라의 굴곡진 역사 속에서도 빛을 발했다. 6·25 전쟁 전상자 구호를 위해, 4·19혁명 당시 부상자 치료를 위해, 5·18민주화운동으로 피 흘리는 시민을 위해 발 벗고 나선 것 역시 대한적십자사였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먼저 손을 내밀고, 매혈이 횡횡하던 시절, 올바른 헌혈 문화를 정착시킨 것도 적십자였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이를 기념하기 위한 각계각층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대한적십자사 역시 3·1운동의 정신을 떠올리며 변화라는 큰 물결 속에서도 변치 않는 인도주의 가치를 전파하고, 인도주의 공동체 건설에 앞장설 것이다. 평화와 공존의 시대로 향하는 대한적십자사의 걸음에 더 많은 이들이 함께해주길 바란다.
 
박경서 대한적십자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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