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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민 고물상 아들에서 보수진영 리더로 부상한 황교안

중앙일보 2019.02.27 19:58
황교안 신임 자유한국당 대표는 피난민 고물상의 아들이다. 검사-법무장관-국무총리-대통령 권한대행을 거치면서 탄탄대로만 걸어왔을 것이란 이미지가 강하지만, 실제로 그의 삶엔 많은 굴곡이 있었다. 때문에 황 대표는 자신의 삶을 ‘새옹지마’로 표현하곤 한다.

 
◇고물상의 아들
황 대표는 1957년 서울 서계동에서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부친과 모친은 황해도 연백에서 살다 한국전쟁 당시 월남한 피난민이었다. 그의 자서전 『황교안의 답』(2018)에는 “유년시절 도시락을 제대로 챙겨가지 못해 담임 선생님과 나눠먹어야 했고, 산에서 나물을 직접 따와 식구들의 반찬으로 삼았다”는 회상이 담겨있다.

 
경기고 재학 시절의 황교안 대표(왼쪽). [사진=황교안 캠프 제공]

경기고 재학 시절의 황교안 대표(왼쪽). [사진=황교안 캠프 제공]

 
그는 봉래초-광성중-경기고 시절 반장과 학생 대표를 도맡아 했다. 중학교 땐 문예반에서 활동했고, 고등학교 1학년 땐 KBS ‘우리들의 새 노래’란 경연 프로그램에 직접 작사ㆍ작곡한 곡 ‘오솔길’을 출품해 뽑히기도 했다.
 
하지만 대학 진학을 앞두고 부친이 작고하면서 가세가 더욱 기울자 한때 대학을 포기하려 했다고 한다. 하지만 모친이 “내가 머리칼을 팔아서라도 네 대학 졸업 모습을 꼭 보겠다”고 만류했다. 황 대표는 재수 끝에 성균관대 법학과에 입학했고 법조인의 길을 걷는 계기를 맞게 됐다. 모친이 1995년 뇌출혈로 별세하자 황 대표는 이듬해부터 모친의 이름을 딴 ‘전칠례 장학금’을 매년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주고 있다.
 
◇미스터 국보법
황 대표가 청주지검 초임 검사 때만 해도 그는 상사와 견해 차이가 심해 검사 생활에 회의를 느꼈다고 한다. 결국 사의를 표했다. 하지만 당시 차장검사가 “내가 야단을 치는 것은 자네에게 기대가 크기 때문”이라며 만류해 사의를 접었다.
 
이후 서울중앙지검 재임 시절 공안부에 결원이 생겨 그를 급히 충원됐던 게 본격적인 ‘미스터 국보법’의 시작이었다. 그는 대검 공안과장과 서울지검 공안부장 등을 거치면서 2002년 한총련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점거 농성 사건, 2005년 국정원ㆍ안기부 도청사건 등을 수사ㆍ지휘했다. 공안 수사의 교과서로 불리는 『국가보안법 해설』(1998)을 펴내기도 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에서 그는 검사장을 목전에 두고 두 차례 승진에 실패했다. 당시 법조계에선 그가 2005년 ‘강정구 동국대 교수 사건’ 수사로 정부와 각을 세웠기 때문 아니냐는 말이 돌았다. 하지만 그는 이 사건으로 ‘우파 투사’라는 이미지가 생겼고, 박근혜 정부에서 초대 법무장관이 되는 발판이 됐다. 황 대표는 박근혜 정부 초대 내각에서 최장수(2년 3개월) 장관으로 재임했다.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사건’ ‘성완종 리스트 사건’ 등 굵직한 현안을 처리하면서 박 전 대통령의 신임을 받았다. 2015년 6월엔 국무총리로 발탁됐고, 탄핵 정국에선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맡으며 보수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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