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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후 행복감 샘솟게 하는 한마디 ‘고맙습니다’

중앙일보 2019.02.27 09:00
[더,오래]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17)
가수 션과 함께 한 연탄 배달. 작은 정성이 큰 보답으로 돌아오는 행복감에 젖어본다. [사진 한익종]

가수 션과 함께 한 연탄 배달. 작은 정성이 큰 보답으로 돌아오는 행복감에 젖어본다. [사진 한익종]

 
어려운 이웃을 위한 연탄 봉사에 참석해 연탄을 지고 골목길을 오르려니 문득 가정형편이 어려워 겨우 마련한 연탄 두 장을 새끼줄에 꿰어 나르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우리나라가 참 잘 사는 나라로 발전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동시에 아직도 우리 주위엔 연탄에 의존해 어렵게 한겨울을 나는 이웃이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짠해 왔다.
 
연탄배달을 마치고 돌아서는 등 뒤로 연신 허리를 굽히며 고맙다는 할머니의 인사가 따뜻하게 배웅을 한다. 그분들의 한겨울을 따뜻하게 할 연탄이 내 마음도 따뜻하게 데워주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안도현 시인의 시구를 읊조려 본다.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냐”


내 존재감 드높이는 ‘고맙습니다’
너는 단 한 번이라도 진정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들어 보았느냐라고 또 자문해 본다. 살아오면서 다른 이로부터 얼마나 많은 고맙다는 말을 들었을까. 사람이 인사치레로 하는 ‘안녕하세요’,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가운데 어떤 말을 들었을 때 가장 행복할까.
 
나는 상대로부터 진심 어린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 가장 행복하더라. 그냥 지나치는 말이 아닌 상대가 마음을 담아 고맙다는 말을 전할 때 그 기분을 느껴 본 사람이라면 그 울림을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진정 어린 고맙다는 말을 듣기 위해선 내가 진실 어린 정을 베풀어야 가능하다. 고맙다는 말은 나의 존재감을 드높이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살아가는 방식과 습관까지도 긍정적으로 변환시키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지난 13일 오전 서울 관악구의 한 고등학교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한 졸업생이 담임선생님에게 큰절하고 있다. <저작권자 ⓒ 1980-2019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선생님 고맙습니다'. 지난 13일 오전 서울 관악구의 한 고등학교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한 졸업생이 담임선생님에게 큰절하고 있다. <저작권자 ⓒ 1980-2019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새벽 도착한 인천공항에서 부산 가는 버스를 잘못 타 낭패에 빠졌던 외국인이 도움을 준 내게 한 ‘땡큐’, 수해를 입은 농원의 부부가 떠나는 내게 글썽이는 눈물과 함께 한 감사의 말, 청량리역의 어묵 가게에서 만 원짜리 백화점 상품권으로 주린 배를 채우려고 종업원과 실랑이를 벌이던 할머니가 상품권을 사준 내게 말없이 건네던 고맙다는 표정…. 내게 오던 그 인사들은 단순한 인사를 넘어 삶의 행복을 느끼게 하는 마력에 빠지게 했다.
 
행복한 삶이란 무엇일까? 수많은 사람이 행복에 대해 정의하고 있다. 도대체 뭐가 행복이고 어떻게 해야 행복한 삶이 되느냐에 대해 아직 명쾌히 정의된 바가 없다. 행복이란 정의하는 사람, 시기마다 다르다. 아마 인류가 지속하는 한 행복에 대한 정의는 영원히 풀지 못할 미스터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돈을 많이 벌어 풍족하게 사는 사람도, 명예나 지위를 갈구하다 그 바람을 이뤘다 하더라도 완전히 행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행복하다는 상태는 어떤 것일까? 나는 내 존재감을 오롯이 느끼는 순간이 행복하다고 여기고 있다. 그건 남과의 비교나 평가를 통해 경쟁이나 상대적 우월감에서 벗어난 상태다. 욕심을 버리고 나를 내려놓음으로써 내 자존감을, 내 만족을 온전히 느끼는 순간 행복을 느낀다면, 그건 봉사라는 행위를 통해 가능하다.
 
상대로부터 진심 어린 고맙다는 의사를 확인하는 순간이 행복하더라. 고맙다는 말은 돈의 많고 적음과 명예·지위의 높고 낮음과 상관이 없다. 못 가진 자, 비천한 자도 얼마든지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오피스텔 현관문에 걸려 있는 액자 하나. 외출하는 내게 많은 교훈을 선사한다. [사진 한익종]

오피스텔 현관문에 걸려 있는 액자 하나. 외출하는 내게 많은 교훈을 선사한다. [사진 한익종]

 
내 오피스텔의 현관문 안쪽에는 내가 봉사모임을 이끌고 있던 재단에서 준 작은 액자가 걸려 있다. ‘당신이 참 고맙습니다’라는 글귀가 적힌 액자다. 오피스텔 문을 나설 때마다 이 액자는 늘 내게 인사를 건넨다. ‘오늘도 고맙고 감사한 일을 하시게’라고. 참 고마운 선물이다. 늘 내게 힘과 용기, 내 존재를 확인시켜 주니 말이다. 작은 봉사가 준 위대한 선물이다.


전쟁포로로 혹독한 고문 견딘 존 메케인의 유언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미국의 상원의원 죤 메케인(그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은 임종 전 메시지를 통해 “내게 고통스러웠던 날이나 행복했던 날이나 그 어느 날도 다른 이의 위대한 날과 결코 바꾸지 않겠다”고 말했다.
 
무엇이 메케인으로 하여금 그런 마지막 말을 하도록 했을까? 그는 아버지가 태평양 사령관으로 있을 당시 해군 조종사로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포로로 잡혀 5년간 혹독한 고문과 핍박을 받았다. 석방을 위한 협상이 벌어졌을 때 먼저 잡힌 동료 미군들을 모두 석방하고 난 뒤에야 자신을 풀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의 일생을 한마디로 대변하는 에피소드이다.
 
그는 희생과 봉사를 통해 위대한 삶을 살다 간 정치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타인을 배려하고 자신보다 남을 앞세웠던 삶의 태도가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했노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하지 않았을까?
 
봉사를 통해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사람은 메케인의 유언처럼 다른 이의 위대해 보이는 삶과 결코 바꾸지 않을 삶을 살 수 있다. 행복한 나날들이다. 나에게 자문한다.
“너는 타인에게서 고맙다는 말을 얼마나 들으면서 살아갈래?”
 
한익종 푸르메재단 기획의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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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익종 한익종 푸르메재단기획위원 필진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 봉사는 자기애의 발현이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만이 남에게 봉사할 수 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사회적 연대가 줄면서 자존감이 떨어지는데 봉사는 나를 필요로 하는 대상을 찾아, 내 존재를 확인하게 해준다. 내 존재를 확인하고 나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 봉사다. “봉사하라, 봉사하라! 오래 가려면 함께 하자”고 외치는 필자의 봉사 경험을 통해 봉사가 어렵고 거창한 것이라는 편견을 버리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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