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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나한테 해준 게 뭐 있냐"며 대들던 아들의 사부곡

중앙일보 2019.02.27 07:00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77)
딸이 전화해 아들이 통화하며 울었다고 전했다. 아들네 가족은 엄마가 아침에 유치원 등교시키고 출근하면 아빠가 퇴근하고 들러 하교시킨다. 돌아오는 길에 아빠랑 공원에서 신나게 뛰어놀다 집에 온단다. [사진 송미옥]

딸이 전화해 아들이 통화하며 울었다고 전했다. 아들네 가족은 엄마가 아침에 유치원 등교시키고 출근하면 아빠가 퇴근하고 들러 하교시킨다. 돌아오는 길에 아빠랑 공원에서 신나게 뛰어놀다 집에 온단다. [사진 송미옥]

 
“엄마, 아드님에게서 전화 왔었나요?” 딸이 전화해서 대뜸 묻는다. 
“응~날씨는 덥지만 잘 지내고 돈도 잘 번다더라.”
“아, 그래? 오늘 통화하면서 ‘봄꽃을 보니 아빠가 꽃구경 가자며 우리 손 잡고 대공원까지 걸어가던 생각이 나네’ 했는데…. 그 자식이 갑자기 아빠~아빠~ 하면서 막 울잖아.”
“왜, 뭔 일 있대? 무슨 일이야?” 가슴이 쿵쿵거렸다.
 
“아니, 그게 아니고 요즘은 꽃을 봐도 아빠 생각, 비가 와도 아빠 생각나 눈물 난대. 저번엔 또 힘든 일을 잘 마무리하고 뿌듯했는데, 그럴 땐 아빠가 생각난다며 엉엉 울면서 전화하더니. 사내자식이 엄청 잘 울어.” 그러면서 딸은 “누나~ 아빠가 너무~~너어~~무 보~~고 싶어 흐엉엉. 정말 너어무 보고 싶어, 보고 싶어.엉엉~” 하며 아들 목소리를 흉내 낸다.
 
아빠가 보고 싶다는 덩치 큰 아들의 전화
30대 중반을 넘어선 덩치가 100kg 넘는 놈이 전화통에 대고 소리소리 지르며 우는 모습을 흉내 내다가 전화 받는 나도 딸아이도 같이 울고 웃었다.
 
“술을 마시다가도 울컥울컥 아빠 생각이 나. 아빠가 술을 그리 좋아하셨는데 아빠 건강 생각하라며 못 드시게 한 것이 너무 미안해. 내 집엔 좋은 술이 이래 많이 진열되어 있는데 아빠는 싼 소주만 드셨는데도 못 드시게 해서 너무 미안해. 왜 우리는 어른들이 술을 마시면 심심해서, 무기력해서 생각 없이 드시는 거로 알았을까? 왜 아빠는 삶의 의미도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했을까?
 
 
아빠보다 더 커진 학창시절엔 아빠는 큰소리만 치는 종이호랑이라고 대들었던 거.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냐고 아빠같이 살지 않을 거라고 큰소리 친 거. 나보다 작아진 아빠가 그때 한 대 치려고 손을 들었는데 내가 아빠 팔을 잡고 힘을 주는 바람에 힘 달려 못 때리게 한 거 그것도 기억나. 그때 맞아야 했는데. 그런 모든 것이 다 미안해. 잘못한 게 너무 많아 마음이 아파.
 
그래도 가끔은 행복해서 눈물 날 때가 더 많아. 내가 가장 생각나는 건 어릴 적 추억이야. 아마 내 아들 나이인 6살 즈음인 것 같아. 아빠랑 여름날에도 겨울날에도 배낭 메고 고기 잡으러 많이 다녔잖아. 휴일 새벽에 아빠가 내 방에 들어와 내 이름을 조용히 부르면 나는 잠에서 깨는 게 아니라 그냥 아빠의 목소리에 벌떡 일어나서 눈도 못 뜨고 양발 꺼내 신으면 아빠가 잠바를 입혀주며 엄마가 깰까 봐 살금살금 발을 들고 그렇게 따라 나갔지.
 
아들 가족과 함께한 태국여행에서 아들, 손주가 남편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벌써 5~6년이 지났다. [사진 송미옥]

아들 가족과 함께한 태국여행에서 아들, 손주가 남편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벌써 5~6년이 지났다. [사진 송미옥]

 
그땐 아빠가 내 눈에 거인이었어. 엄마가 뒤에서 어린애 잠도 못 자게 데리고 나간다고 잔소리를 해도 아빠는 못 들은 척 내 손을 잡고 나가셨지. 차 몰고 달리다가 새벽에 문 여는 가게에 들러 달콤한 팥빵이랑 따뜻한 베지밀을 한 병 사주셨어. 그래서 지금도 팥빵이 제일 맛있어. 그러곤 또 별말 없이 앞만 보고 운전을 해서 가시는 거야.
 
나는 그때 아빠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면 한 단어 아니면 한 문장으로 짧게 답하셨는데 커서 생각하니 그것이 박력이 있고 멋있게 보였어. 멋진 사나이가 되려면 그렇게 짧게 대답해야 할 것 같았어. 그래서 나도 긴 대화가 안 되는 거야. 얼음 위에서 아빠가 구워주던 삼겹살 맛, 아빠가 끓여주던 매운탕 맛. 아직도 그 맛을 기억해. 고기를 잡아 던지면 내가 통속에 집어넣고 도망 못 가게 지키던 시간…. 그게 요즘 너무너무 생각나.”
 
“어느 날 물고기를 잡아 오니 내 아들이 말했어. ‘아빠, 담엔 나도 같이 가고 싶어요.’ 그래서 내가 새벽에 고기 잡으러 나갈 때 아빠가 그랬듯이 자는 아들에게 다가가 아들 이름을 조용히 부르면 이 녀석이 눈도 안 뜨고 벌떡 일어나 따라나서.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편의점에 들러 나는 커피를, 아들은 코코아를 한잔씩 들고 머핀을 사서 차에 오르지. 장어를 잡아서 잔디밭에 던지면 아들이 양동이 통에 넣어 뚜껑을 닫는 분업 조야. 아빠와 함께 하는 시간이 좋은지 표정이 정말 좋아.
 
주말마다 가서 잡아 오는 장어잡이에 손주들도 즐거워한다. 한국에선 엄청 비싸다고 하니 더 신이 났다. [사진 송미옥]

주말마다 가서 잡아 오는 장어잡이에 손주들도 즐거워한다. 한국에선 엄청 비싸다고 하니 더 신이 났다. [사진 송미옥]

 
요즘 아들이랑 이런 소소한 행복을 함께하며 아빠 생각이 나서 또 눈물이 났어. 이 기분이었구나. 아빠가 어린 나를 든든한 친구로 생각해주셨구나. 아빠는 내게 튼튼한 몸과 강인한 정신력을 주셨는데 그걸 이제야 알았어. 아빠는 함께 있을 땐 안 보이지만 떠나고 나면 크게 보이는 존재인가 봐. 생각해 보니 요즘 내가 아빠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는 거 같아.
 
나도 훗날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아이가 나보다 더 커지고 청년이 되면 ‘아빠는 왜 이렇게 사세요’ 하며 시비를 걸어오겠지. 그렇게 한판 붙기도 하고 욕도 먹을 거고…. 내가 많이 잘못한 만큼 아빠 생각하며 요즘 내공을 키우고 있어. 오늘은 날이 너무 좋아서 또 아빠가 많이 보고 싶어. 흐어엉.”
 
저녁에 기도 속에서 남편을 불러 아들의 마음을 전해 주며 나도 한마디 해주었다. “당신~ 인생 잘살다 가셨나 봅디다. 축하드려요.”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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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옥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필진

[송미옥의 살다보면] 요양보호사 일을 하다 평범한 할머니로 지낸다. 지식은 책이나 그것을 갖춘 이에게서 배우는 것이지만, 인생살이 지혜를 배우는 건 누구든 상관없다는 지론을 편다. 경험에서 터득한 인생을 함께 나누고자 가슴 가득한 사랑·한·기쁨·즐거움·슬픔의 감정을 풀어내는 이야기를 쓴다. 과거는 억만금을 줘도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는 말처럼 이웃과 함께 남은 인생을 멋지게 꾸며 살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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