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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근덕대다 발길질, 동석자 방관···'시흥동 폭행' 처벌은

중앙일보 2019.02.27 05:00
페이스북에 올라온 시흥동 폭행 사건 당시 CCTV 영상. [페이스북 화면 캡처]

페이스북에 올라온 시흥동 폭행 사건 당시 CCTV 영상. [페이스북 화면 캡처]

최근 ‘동전 택시기사 사망사건’에 이어 여론의 공분을 불러일으킨 사건이 있다. 서울 금천구 시흥동의 한 식당에서 벌어진 ‘여주인 묻지마 폭행’ 사건이다. 이 사건이 여론의 도마에 오른 건 죄질이 나빠서다. 피의자 이모(65)씨는 청소 중인 무방비 상태의 중년 여성에게 발길질을 했다. 무릎으로 안면부를 가격하기도 했다. 이 장면은 폐쇄회로(CC)TV에 고스란히 포착됐다.
피해자의 아들은 “어머니가 묻지마 폭행을 당했다. 병원에서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려 강력 처벌을 호소했다.
 
“치근덕거리다가 발길질” 
사건은 지난 8일 오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업이 끝날 무렵이라 식탁 위에는 빈 술병 한 병만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일용직 노동자인 이씨는 다른 곳에서 술을 마신 뒤 이 식당에 2차로 왔다고 한다. 그는 청소 중인 피해자를 계속 쳐다보다가 동석자와 짧은 대화를 나누고는 갑자기 일어나 발길질을 했다. 폭행은 2분 넘게 지속됐다. 피해자가 잠시 틈을 타 밖으로 도망쳐 신고하면서 상황이 종료됐다.
 
왜 이씨가 폭행을 자행했는지에 대해선 정확하게 확인된 것은 없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처음엔 “취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다가 CCTV를 보여주자 그제야 범행을 인정했다. 이후 검찰 조사 단계에서도 범행 동기에 대해선 횡설수설하는 등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고 한다. 다만 폭행의 이유를 추측할 단서는 있다. 피해자는 경찰 조사에서 “치근덕거리는 것을 거절했더니 감정을 드러내다가 갑자기 폭행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시흥동 폭행 사건을 알린 페이스북 게시글. 글쓴이는 본인을 피해자의 아들이라고 밝혔다. [페이스북 화면 캡처]

시흥동 폭행 사건을 알린 페이스북 게시글. 글쓴이는 본인을 피해자의 아들이라고 밝혔다. [페이스북 화면 캡처]

이씨에게는 상해 혐의가 적용됐다. 단순 폭행이라기엔 쓰러진 피해자의 얼굴을 발로 걷어차는 등 범행 수위가 높다고 수사기관에서 판단해서다. 서울남부지법에 구속기소된 이씨는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는다.
 
상해죄는 7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형으로 폭행(2년 이하 징역, 500만원 이하 벌금)에 비해 처벌 수위가 높다. 김성순(법무법인 정향) 변호사는 “폭행은 합의 시 형사절차가 진행되지 않지만 상해는 합의를 해도 처벌된다”며 “다만 합의 시 감경 사유로 참작될 순 있다”고 말했다. 수사를 진행한 서울 금천서 관계자는 “둔기와 다를 바 없는 무릎으로 얼굴을 가격하는 등 상당한 부상을 입혔기 때문에 상해 혐의를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동석했던 ‘방관자’ 처벌 가능할까
이 사건에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 한 명 더 있다. 피의자 이씨와 동석했던 A씨다. CCTV에 따르면 그는 폭행 직전에 이씨와 대화를 나눴고, 폭행이 시작되자 태연하게 앉아서 폭행 장면을 지켜봤다. 놀란 기색이 없었고, 폭행을 말리려는 행동도 전혀 하지 않았다. 분노의 화살은 A씨에게도 쏟아졌다.
 
금천서 관계자는 “CCTV상으로나 피해자 진술상으로 혐의가 없어 입건하지 않았다”며 “방조죄가 성립하려면 범행 도구를 건넨다거나 망을 보는 등 범죄를 돕는 행위가 있어야 하는데, A씨를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도 도덕적 비난과 별개로 A씨에게 죄를 묻긴 쉽지 않다는 의견을 냈다. 신병재(법무법인 이헌) 변호사는 “주범(이씨)의 범행을 용이하게 하는 행동을 해야 방조죄를 적용할 수 있는데 이씨는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아 방조범으로 보긴 어렵다”고 했다. 다만 김의지(서담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동석자가 직전 대화에서 폭행을 부추기는 등 말 등을 했다면 상황이 달라질 순 있다”고 했다.  
 
“가해자 같은 동네 살아…가게 문 닫아 피해도 심각”
지난 8일 시흥동 폭행 사건이 벌어진 가게. 25일 밤 찾은 가게는 불이 꺼져있고 문이 닫혀 있었다. 임성빈 기자

지난 8일 시흥동 폭행 사건이 벌어진 가게. 25일 밤 찾은 가게는 불이 꺼져있고 문이 닫혀 있었다. 임성빈 기자

피해자 측은 여전히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경찰과 피해자 측에 따르면 가해자 이씨는 시흥동에서 어릴 때부터 살아온 토박이라고 한다. 사건 전에도 종종 식당에 들러 피해자와 안면 정도는 있는 사이라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씨가 석방되면 피해자 측이 큰 공포감을 느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천서 관계자는 “피해자 측에서 피의자의 석방 일정을 통보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할 수 있다”며 “석방 뒤 경찰 등에 신변보호 신청을 하면 절차를 거쳐 일정 기간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씨에 대한 형사처벌 외에 각종 피해에 대한 보상이 가능한지도 쟁점이다. 지난 25일 사건이 발생한 식당을 찾아가 보니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오랫동안 떼지 않은 전단지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피해자 측 지인에 따르면 피해자는 지금도 입원 중이고, 식당은 임시폐업 상태라고 한다. 서울지방변호사 회장을 지낸 김한규 변호사는 “가게 문을 닫아 발생한 피해 비용, 위자료 등에 대해서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다”며 “다만 일용직 노동자인 피의자가 배상금을 지불하지 않을 경우 압류 등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묻지마 범죄인 만큼 가해자의 주취 상태와 상관없이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택시기사 김칠용(64)씨는 “운행 시 주취자들이 시비를 거는 일들이 꽤 있는데, 이유 없는 폭행에 대해서는 더 강하게 처벌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양태정 변호사는 “피해자들에게 씻기 힘든 트라우마를 유발하는 범죄인 만큼 양형상으로 더 엄히 처벌하는 분위기가 법정에서 조성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손국희ㆍ이수정ㆍ임성빈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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