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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읽기] 봄바람이 불어서

중앙일보 2019.02.27 00:42 종합 28면 지면보기
문태준 시인

문태준 시인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온다. 연일 포근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남쪽 지방에는 매화가 활짝 피었다는 소식이다. 개울가에 버들강아지가 피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바야흐로 얼었던 산과 들의 몸도 해동하는 때이다. 마늘밭과 보리밭은 점점 더 푸릇푸릇해질 것이다.
 

내 마음의 꽃나무는 꽃 필 준비를 하고 있는지 묻게 돼
봄바람처럼 부드럽고 따듯한 마음이 서로에게 불어가길

봄의 전령은 봄바람이 아닐까 한다. 봄바람이 산마루를 넘어오고, 너른 들판에 평평하게 펼쳐진다. 봄바람이 수풀을 헤치고 들어간다. 봄바람은 사람의 마음속으로도 들어온다.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데./ 꽃 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 익는 오월이면 보릿내음새,/ 어느 것 한 가진들 실어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제 나는 좋데나.” 김동환 시인의 시 ‘산 너머 남촌에는’의 일부분이다. 불어오는 봄바람에 의해 개화와 작물의 생장, 평화와 풍요가 온다고 노래했다.
 
정말이지 봄바람은 온기를 실어 나른다. 봄바람은 의욕을 실어 나른다. 봄바람이 불어오면 사람들의 목소리도 커지고, 힘이 생기고, 무엇이든 새로이 시작하려 한다. 온기가 있는 봄바람은 불어와서 또 뿌리를 깨운다. 묵은 순이 있던 곳에 가서 새순이 돋아나게 한다.
 
나는 나의 졸시 ‘봄바람이 불어서’에서 이렇게 썼다. “봄바람이 불어서/ 잔물결이 웃고// 봄바람이 불어서/ 굴에서 뱀 나오고// 봄바람이 불어서/ 밑돌이 헐겁고// 봄바람이 불어서/ 진 빚을 갚고/ 새 빚을 내고// 봄바람이 불어서/ 귀신이 흐늘거리고// 봄바람이 불어서/ 저쪽으로 가는 물빛/ 세계의 푸른 두 눈” 봄바람이 불어서 얼음이 녹고, 아지랑이가 서고, 생명들이 어울려 사는 이 생명 세계는 푸른빛의 또렷한 두 눈을 갖게 된다.
 
[일러스트=박용석 parkys@joongang.co.kr]

[일러스트=박용석 parkys@joongang.co.kr]

그러나 이처럼 봄바람이 불어오고 또 봄이 지척이지만 내 마음에 정작 봄이 왔는지를 스스로 묻게 된다. 두꺼운 이불을 다시 이불장에 넣고, 옷차림을 좀 가볍게 해서 외출을 나서지만 내 마음에 정작 봄바람의 온기가 있는지를 스스로 묻게 된다. 봄바람은 불어와서 싹을 트게 하고 꽃눈을 틔우는데, 내 마음의 꽃나무는 내일에 곧 꽃 필 일을 준비하고 있는지를 묻게 된다.
 
“하루 종일 봄을 찾아 다녀도/ 봄을 찾을 수 없었네./ 신발이 다 닳도록 온 산을 찾아 헤맸네./ 지쳐 돌아와 우연히 뒤뜰을 거닐다 보니/ 매화꽃이 거기 피어 있었네.”
 
이 문장은 송나라 때의 학자인 나대경이 편집한 ‘학림옥로(鶴林玉露)’ 6권에 실려 있는, 한 비구니 스님의 오도송(悟道頌)으로 알려져 있다. 깨달음의 게송(偈頌)이다. 봄을 찾아 여기저기 헤매었지만 눈으로 보지 못했는데, 집 뒤뜰엘 돌아갔더니 뜻하지 아니하게 거기 봄이 와 있더라는 것이다. 봄을 찾아 바깥으로 분주하게 다니지 말고 가까이에 있는 봄을 보라는 말씀이 아닌가 한다. 내 집 뒤뜰 매화나무에 봄이 있다는 뜻은 무엇일까. 그처럼 봄이 내 가까이에 있다는 뜻은 무엇일까. 아마도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여기에서 봄을 보라는 말씀일 것이다. 또한 나의 내면에 있는 봄을 보라는 말씀일 것이다. 나의 내면에 있는 밝고 따뜻한 보배로운 생명의 기운을 스스로 보라는 의미일 것이다.
 
시인 타고르는 “잎은 자신이 사랑할 때 꽃이 됩니다. 꽃은 자신이 섬길 때 열매가 됩니다”라고 멋지게 썼다. 자신의 내면에 봄바람과 같은 온기가 있음을 알아서 사랑하는 마음과 섬기는 마음을 스스로 낼 일이다.
 
우리의 마음에 있어야 할, 봄바람과도 같은 성정을 보다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무한한 사랑의 마음이 아닐까 한다. 다른 생명들을 모시고 받드는 마음이 아닐까 한다. 함께 어울려 살려고 하는, 부족하면 채워주려고 하는 마음이 아닐까 한다. 곳곳에 있는 단단하고 높은 담장을 허무는 일이 아닐까 한다. 차별이라는 담장을 허무는 일이 아닐까 한다. 서로의 생각이 다름을 이해하고, 이기적이고 옹색한 자아를 이타적이고 너그럽게 변화시키는 일이 아닐까 한다. 이렇게 될 때 내 마음에 봄바람의 온기가 살아 있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봄바람이 불어오고 불어가게 되지 않을까 한다.
 
불교의 경전인 ‘숫타니파타’에서는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다 행복하라. 마치 어머니가 외아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무한한 자비심을 가져라”라고 일렀고, ‘채근담’에는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이라는 말씀이 있다. 다른 이를 대할 때에는 봄바람처럼 부드럽고 관대하게 하고, 내가 나를 다스릴 때에는 가을날의 차가운 서리처럼 엄하게 하라는 뜻이다. 봄바람은 참으로 많은 상징을 갖고 우리들을 향해 넘실거리듯 불어온다. 생명의 운동으로, 음악으로 불어온다.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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