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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의 옥중 투쟁 1년, 매일 기도하듯 연기했죠

중앙일보 2019.02.27 00:04 종합 23면 지면보기
고아성이 연기한 유관순. 절제된 흑백화면과 함께 인물의 내면에 집중했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고아성이 연기한 유관순. 절제된 흑백화면과 함께 인물의 내면에 집중했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성스럽고 존경스런 마음 외에 감히 어떤 감정을 가질 수 없었어요. 영화를 만들다기보다 그분의 뜻을 ‘전하는’ 개념이었죠. 매일 기도하듯 연기했습니다.”
 

3·1운동 영화 ‘항거’ 주연 고아성
최후 장면 촬영 때 닷새간 금식도

27일 개봉하는 ‘항거:유관순 이야기’에서 유관순을 연기한 주연 배우 고아성(27)의 말이다. 영화는 유관순이 18세에 숨을 거두기까지 감옥에서 보낸 1년여를 담았다. 3·1운동 1주년에 다시 울려 퍼진 만세 외침이 그가 있던 서대문감옥 8호실에서 시작됐단 사료가 바탕이 됐다.
 
극 중 여름이면 뜨겁게 끓고 겨울이면 얼어붙는 세 평 못 되는 비좁은 옥사에서 유관순을 비롯한 스물다섯 명 여성들은 앉을 자리도 없이 빽빽이 서서 한목소리로 만세를 부른다. 유관순은 이화학당 학생 신분으로 1919년 3·1운동에 가담, 같은 해 4월 1일 고향인 충남 천안 아우내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했다가 일제의 총검에 부모를 잃고 그 자신은 감옥에서 고문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런 역사적 사실에 익숙한 관객도 그의 옥중 투혼을 대형 스크린으로 낱낱이 마주하는 경험은 각별한 일이다. 유관순을 다룬 영화는 그간 여러 편이 있었지만, 감옥에서의 1년에 오롯이 초점을 맞춘 작품은 처음이다.
 
개봉 전 만난 고아성은 “예상했던 일대기가 아니라 더 끌렸다”며 “쉽지 않은 역할이란 생각에 겁도 먹었지만, 고민도 하고 눈물 많고 후회도 하는 한 ‘인간’으로서 유관순 열사를 그리려는 감독님의 진정성에 신뢰가 갔다”고 했다. 각본·연출을 겸한 조민호 감독은 “유관순 열사가 만세운동을 어떻게 주동했는지는 사료마다 달랐지만, 여자 옥사에서의 일들은 꽤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었다. 8호실의 삶이 열사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으리라 생각했다. 그가 왜 이렇게까지 했는지 지금의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순제작비 10억원이 안 되는 저예산 영화이다 보니 시대상 구현엔 빈 구석도 보이지만, 첫 단독 주연을 맡은 고아성의 단단한 눈빛은 이를 담대하게 채운다. 혹독한 고문 등을 자극적으로 드러내는 대신 흑백으로 절제한 덕에 이를 뛰어넘은 유관순의 내면에 한층 눈길이 간다. 이 영화는 만세운동을 펼치던 과거 장면은 컬러, 옥중의 현실은 흑백으로 표현했다.
 
고아성은 “유관순의 마지막 모습은 촬영을 앞두고 닷새간 금식하기도 했다”며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는 장면에선 심장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 왼쪽 가슴에 찬 무선마이크를 옮겨야 했다”고 돌이켰다. 힘들 때면 동료 배우들이 힘이 됐다고 말했다.
 
“체포 안 된 독립운동가들이 당시 서대문형무소에서 가까운 인왕산에 올라 감옥을 향해 수감된 동지들 이름을 크게 불러줬대요. 외롭지 않게. 사료로 입증된 건 아니어서 영화에 안 들어갔지만, 배우들과 그런 심정을 나누며 촬영했던 것 같아요.”
 
고아성은 벌써 14년 차 영화배우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을 시작으로 SF ‘설국열차’(2013), 직장 스릴러 ‘오피스’(2014) 등의 영화와 부잣집 작은 마님으로 분한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2015), 80년대 여경을 연기한 ‘라이프 온 마스’(2018) 등 매번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서른 가까운 나이에 만난 이번 영화를 그는 “배우로서 이렇게 의미 있는 작품을 만나기 힘들다. 가장 묵직한, 아니 가장 담백한 작품”이라 했다.  
 
그는 “나중에 나이가 많이 들어 80, 90세가 됐을 때 어떤 게 실제 제가 겪은 일이고, 어떤 게 작품 속에서 연기하며 제가 만들어냈던 감정인지 헷갈렸으면 좋겠다”라고도 했다. “‘나 이상의 실재하는 어떤 것을 추구하기 위해 내 삶을 다 써도 좋다’는 빈센트 반 고흐의 말처럼 저란 사람보다 작품이, 그 속에 담았던 진심이 더 오래 남기를 바랍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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