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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 위임장 확보하라…기업들, 주총 앞두고 대행업체 위탁 성행

중앙일보 2019.02.27 00:03 경제 2면 지면보기
코스닥 상장사 칩스앤미디어는 다음 달 15일 주주총회를 앞두고 비상이 걸렸다. 회사의 감사를 뽑기가 어려워서다. 주주들이 반대해서가 아니다. 의결 정족수를 채울 수 있느냐가 문제다.
 

소액주주 불참, 의결 정족수 비상
전자투표 도입해도 참여율 저조

지난해 이 회사 주총에서 감사 선임의 찬성표는 3.13%에 그쳤다. 감사를 뽑을 때 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3%룰’ 때문이다. 대주주를 제외하면 0.13%만 찬성했다는 계산이다. 대부분의 소액주주는 주총장에 오지도 않았고, 위임장도 보내지 않았다.
 
이 회사는 올해 대행업체를 선정해 의결권 위임 업무를 맡겼다. 주총에 오지 않는 주주들의 위임장을 모으기 위해서다. 하지만 소액주주들(지분율 62%)의 협조가 없으면 올해도 감사 선임이 어려울 수 있다.
 
정기 주총 시즌을 맞아 의결권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상장사가 속출하고 있다. 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올해 주총에서 감사(감사위원 포함) 선임 안건을 통과시키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곳은 154개 사에 이른다. 상장사 12곳 중 약 한 곳꼴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SK텔레콤·기아자동차·아모레퍼시픽 등은 최근 주총 의결권을 위임받기 위한 대리인을 공시했다. 대기업들도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얘기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원활한 주총 진행을 위해 의결 정족수를 확보하려는 목적”이라며 “3%룰이 적용되는 감사위원 선임에는 많은 주주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017년 주총까지는 상장사들이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다. 이른바 ‘섀도보팅(그림자투표)’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섀도보팅은 주총 참석이 어려운 주주들 대신 한국예탁결제원이 의결권을 행사하는 제도다. 주총에 참석한 주주들이 찬성 또는 반대한 비율과 똑같은 비율로 투표한다. 섀도보팅은 1991년 도입 이후 26년 동안 주총을 원활하게 성사시키는 ‘구원투수’ 역할을 했다.
 
섀도보팅은 2017년 말 폐지됐다. 그만큼 상장사들이 주총에서 의결권을 확보하기가 어려워졌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따르면 지난해 정기 주총에서 의결 정족수 부족으로 곤란을 겪은 상장사는 66곳이었다. 이들 기업이 처리하지 못한 주총 안건은 96건에 이른다. 2017년(9건)에 비해 10배가량 급증했다.
 
금융 당국과 한국거래소는 전자투표제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주주들이 주총장에 가지 않아도 PC나 스마트폰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26일까지 전자투표제를 도입한 상장사는 1331곳(전체 상장사의 63%)에 이른다. 2015년(417곳)에 비해 4년 만에 3배 이상으로 늘었다.
 
전자투표제의 실효성에는 의문 부호가 붙는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기준 전자투표를 이용한 주주 수는 전체 대상자의 0.5%에 그쳤다. 전자투표로 의결권을 행사한 비율은 주식 수 기준으로 3.76%(기관투자가 포함)였다. 2017년(2.2%)보다는 약간 높아졌지만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상장사들이 전자투표제를 도입하는 것과 주주들이 실제로 참여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란 얘기다.
 
일부 상장사들은 전자투표제를 도입하면 소액주주들의 ‘반란’이 일어날 가능성을 우려한다. 인터넷 카페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소액주주들이 의견을 모아 집단행동에 나설 수 있어서다. 한진그룹이 전자투표제를 도입하라는 ‘강성부펀드’의 요구에 대해 아직 공식 반응을 내지 않은 것도 비슷한 이유로 관측된다.
 
이명근 예탁결제원 부장은 “주주들이 주총에 참여하는 방법은 전자투표 외에도 직접참여, 서면투표, 위임장 제출 등 다양하다”며 “전자투표를 활성화하려면 회사가 적극적으로 홍보활동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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