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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 김영옥 대령

중앙일보 2019.02.26 00:36 종합 27면 지면보기
이철재 국제외교안보팀 차장

이철재 국제외교안보팀 차장

1999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일본계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일본 정부의 위안부 문제 사과와 배상을 촉구하는 결의안이 주 의회에 올라오면서다. 그런데 이 결의안은 일본계 3세였던 마이크 혼다 주 하원의원이 발의했다. 혼다는 나중에 연방 하원의원으로 2007년 일본 정부에 일본군 위안부 존재를 인정하고 책임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통과한 주역이다.
 
99년 당시 혼다가 일본계의 반발로 구석에 몰리자 그를 도운 이가 고 김영옥 대령(1919~2005)이다. 그는 일본계 사회의 큰 어른이었던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들을 설득했다. 일본계 참전자들은 사실 그의 옛 부하들이었다.
 
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미국이 전쟁에 뛰어든 뒤 미국의 일본계들은 강제수용소로 끌려갔다. 일본계 청년들은 조국 미국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주기 위해 참전해야만 했다. 김영옥 대령은 일본계로 이뤄진 미 육군 제100 보병대대의 소대장으로 부임했다. 김영옥 대령에겐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는 이승만·안창호와 함께 미주 지역의 독립운동을 이끈 항일지사 김순권의 아들이다. 어렸을 때부터 ‘일본인 근처도 가지 말라’고 배웠다. 그러나 그는 유럽 전선에서 일본계와 생사고락을 같이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수훈십자 훈장, 프랑스의 레지옹 도뇌르 훈장, 이탈리아의 동성 무공훈장을 받았다.
 
99년 김영옥 대령은 일본계 참전자들을 찾아 “우리가 전쟁에서 힘을 합쳐 싸운 이유는 자유와 평화를 위해서다. 위안부는 한·일의 문제가 아니라 반인륜적 전쟁 범죄”라고 설득했다. 그러자 일본계 참전자들은 앞다퉈 위안부 결의안을 지지했고, 결의안은 채택됐다. 그가 일본계 참전자들을 움직일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옛 상관이었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는 미국 정부가 일본계를 강제수용소에 집어넣은 데 대해 사과와 배상을 받도록 앞장섰다. 인권과 민권은 그의 신념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또 전쟁 때 입은 부상으로 괴로워하면서도 한인 이민자와 사회적 약자를 위해 봉사했다.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의 주요 비영리 단체들은 그가 직접 만들었거나 다른 사람들과 공동으로 설립한 것들이다. 그의 별명이 ‘아름다운 영웅(Beautiful Hero)’인 이유다.
 
올해는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해다. 많은 사람이 무심코 지나쳤지만 지난 1월 29일은 김영옥 대령 탄생 100주년이었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늘 앞세웠던 그의 유산이 모국인 한국에서 잊히는 것 같아 아쉽다.
 
이철재 국제외교안보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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