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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시시각각] 검찰이 “토사구팽이냐” 묻거든

중앙일보 2019.02.26 00:28 종합 30면 지면보기
권석천 논설위원

권석천 논설위원

“대법원은 우리가 지키겠습니다.” 최근 검찰청 주변에 이런 말이 유통되고 있다고 한다. 검찰은 증거로 범죄가 되는지 따지면 되는 거 아닌가. 그것이 무엇이든 “지키겠다”라거나 “바로 세우겠다”고 하는 순간 ‘정치검찰’로 곤두박질치고 만다. ‘법의 지배’가 ‘검찰의 지배’로 변질되는 건 순식간이다.
 

과연 수사는 얼마나 달라졌나
개혁은 더 전면적이어야 한다

“검찰 개혁” 구호가 광장에 울려 퍼진 것은 불과 두 해 전인 2016년 겨울이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한손에 틀어쥔 채 힘 있는 사람 봐주고, 없는 사람 벌주는 검찰 행태에 시민들은 넌더리를 냈다.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검사 앞에서 진술하면 대뜸 ‘진실을 알고 있으니 거짓말 말라’고 합니다. ‘자꾸 이러면 (참고인에서) 피의자로 전환합니다.’ ‘일을 이따위로 해놓고….’ ‘기소할 테니 한번 무죄를 받아보시죠.’ 정신적 압박에 모멸감을 토로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렇다 할 증거가 없어서 기소 안 할 줄 알았는데…하더라고요. 그때 알았죠. 아, 수사검사 선에서 결정된 게 아니구나. 1심, 2심에서 무죄를 받고 마무리됐지만, 당사자는 불면증에 우울증까지….”
 
요즘 법원·검찰청이 있는 서초동 어귀에 들어서면 뒷말이 무성하다. 검찰에 다녀온 전·현직 판사만 100명이 넘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판사들이 직접 검찰 조사를 겪어봤으니 재판이 달라지지 않겠느냐”는 기대와 “판사들 기가 꺾여서 앞으로 무죄 판결하기 힘들 것”이란 우려가 엇갈린다.
 
이런 마당에 검찰은 갈수록 덩치를 키우고 있다. 올해 들어 서울중앙지검 검사 정원은 255명에서 270명으로 늘었다. 단연 “세계 최대의 검찰청”(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대형사건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수사 맡을 기관이 마땅치 않았다지만 검찰 의존이 도를 넘은 건 부인할 수 없다.
 
그 때문일까.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수사농단’은 그늘에 가려져 있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국정원 파견 검사 등 몇몇 말고는 처벌도, 징계도 없었다. 실무자 역할을 유능하게 했던 검사들은 건재하다. 현재 주요 라인에 있는 검사 상당수가 ‘조용히’ 검찰 과거사위원회를 다녀갔다는 풍문에 웃을지, 울지 망설여진다. 바뀐 건 검찰 조직을 대표하는 얼굴들인데 그들도 넓게 봐선 검찰지상주의자일 따름이다.
 
지난주 임은정 검사가 경향신문 칼럼을 통해 ‘검찰 내 성폭력 은폐’를 고발했다. 모든 걸 걸고 공개적으로 발언했지만, 검찰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법무부라도 반응을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침묵은 많은 걸 이야기한다. ‘동업자끼리 총질 금지.’ 교전수칙은 한 글자도 수정되지 않았다.
 
개혁은 하드웨어 갈아 끼우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때론 내부 문화나 관행, 집단의식 같은, 보이지 않는 것들이 더 중요하다. 청와대가 공수처 설치 등 개혁의 깃발을 들었는데도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검찰의 특권적 패밀리 문화와 인권 침해 수사를 뿌리 뽑겠다”며 각을 세우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연장은 고쳐 쓸 수 있지만,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드라마 ‘SKY캐슬’에서 노승혜(윤세아)는 차장검사 출신 남편에게 희망을 걸었던 자신을 책망한다. 노승혜는 틀렸다. 권력에 검찰만큼 좋은 친구는 없다. 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모두 다음 대선에 이겨 ‘승자독식’하기를 꿈꾸고 있는 듯하다. 결국 수단(검찰)만이 영원한 것일까.
 
“검찰의 완벽한 승리”라고들 한다.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끊어야 한다. 개혁은 더 전면적이어야 하고, 내상을 입더라도 할 건 해야 한다. 지금이 그때다. 검찰이 “토사구팽이냐” 묻거든 이렇게 답하라. “우린 빚진 게 없다. 당신들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권석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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