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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운동기구 다 치워라” 공원 땅주인들 뿔난 이유는

중앙일보 2019.02.26 00:04 종합 18면 지면보기
대구 수성구 범어공원 지주 비상대책위원회가 범어공원 입구에 걸어 놓은 현수막. 1965년 범어공원이 도시계획상 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지주들은 50년 넘게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백경서 기자]

대구 수성구 범어공원 지주 비상대책위원회가 범어공원 입구에 걸어 놓은 현수막. 1965년 범어공원이 도시계획상 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지주들은 50년 넘게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백경서 기자]

대구의 대표적 시민공원인 범어공원을 둘러싼 지주와 대구시 사이의 갈등이 공원일몰제 시행을 앞두고 깊어지고 있다.
 

대구 범어공원 공원일몰제 앞두고
시 예산 탓에 진입로 토지만 매입
지주 “50년 참았는데 맹지 만드나”
전국 대상토지 매입 비용만 40조원

범어공원 지주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는 지난 22일 대구시와 수성구청에 땅 주인의 동의 없이 설치한 벤치·가로등·운동기구·산책로 조경물 등 공원에 설치된 시설물을 치우라고 공식 요구했다. 1965년 범어공원이 생긴 뒤 지금까지 설치한 시설물 전체다.
 
비대위 측은 만약 대구시에서 시설물을 철거하지 않을 경우 직접 시설물을 철거하고 대구시를 상대로 구상권을 청구할 방침이다. 범어공원 비대위 관계자는 “동의 없이 시설물을 설치한 혐의로 관련 공무원들을 형사고발하고 민사상 책임도 묻겠다”며 “시에서 공원을 만들겠다고 해놓고 50년이 넘게 땅을 사들이지 않고 있기에 어쩔 도리가 없다”고 했다.
 
대구시는 지난 65년 2월 범어동·황금동 일대 113만㎡, 축구장 150여 개 면적에 범어공원을 짓겠다는 도시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2019년 현재까지 공원 땅 중 개인 사유지 전체를 매입하지 않고 있다. 현재 범어공원 부지 가운데 63%는 일반지주 200여 명이 가지고 있는 사유지, 37%는 국립박물관·어린이회관 등이 포함된 국·공유지다. 지주들은 50년이 넘게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공원 등 도시계획이 수립되면 해당 토지에 건축 등 행위가 제한되기 때문이다.
 
지주들은 앞서 2017년에도 동의 없이 설치한 시설물 철거를 요구했다. 대나무와 공원 진입로에 설치한 조경석 100여 개를 철거해 달라는 요구였다. 대나무가 높이 자라 산소를 가리고 관리가 어려워진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수성구청은 관련 법을 검토 후 요구를 수용해줄 수밖에 없어 비대위가 언급한 시설물을 모두 철거했다.
 
수십년간 이어진 대구시와 지주 사이의 갈등은 공원일몰제 시행이 가까워지며 극대화되는 양상이다. 대구시가 공원 일몰제 시행 전까지 공원 용지를 매입하지 않으면 지주가 마음껏 땅을 사고팔 수 있게 된다.
 
범어공원 부지가 대구 수성구의 노른자 땅인 만큼 난개발이 우려되지만, 시에서는 예산 부족으로 공원 입구 등 195억원을 들여 7%(7만9000㎡) 정도만 매입하겠다는 방침이다. 지주들은 “나머지 땅을 맹지로 만들기 위해 시에서 진입로 주변 땅만 산다”고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올해 설을 앞두고는 “사유지 출입을 막기 위해 철조망을 설치하겠다”는 현수막도 내걸었다.
 
대구시는 지주들을 설득하는 것 외에는 해결책이 없어 고심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대구시가 추산한 사유지 땅값만 987억원인데 예산 부족으로 당장 매입이 어렵다”며 "지주들을 최대한 설득해 시민들이 공원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정부에 지원도 요청했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지난 1월 제주도에서 열린 시·도지사협의회에서 "공원일몰제에 들어가는 예산 부족은 대구시만의 문제가 아니다”며 "정부가 용지 보상비의 50%를 국비로 지원하는 등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전국에 공원일몰제에 해당하는 땅이 많아 특정한 곳만 지원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전국 공원일몰제 해당하는 땅 매입 비용만 총 40조원(전국 397㎢ 규모)으로 추산된다. 국토부 관계자는 "지자체가 공원 관리 산하에 있기에 지원이 어렵다”며 "범정부 차원에서 지원책을 고심 중”이라고 했다.
 
◆공원일몰제
공원을 만들겠다며 도시 계획을 수립해놓고 20년간 해당 땅을 사지 않으면서 임의로 공원으로 이용하는 경우 공원 수립 계획이 자동으로 해제되는 제도다. 1999년 지주들의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져 2020년 7월부터 본격 시행된다.

 
대구=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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