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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법인세 올린 그때…기재부는 "경기 회복" 오판

중앙일보 2019.02.25 14:36
지난 2017년 2~3분기 이후 경기가 내리막인데도, 정부가 경기 흐름과는 동떨어지는 진단과 정책을 내놓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실물경기 흐름을 잘못 읽고 법인세율 인상, 최저임금 인상 등 허약해진 경제에 부담을 주는 정책을 펼쳤다는 것이다.
 
25일 통계청에 따르면 통계청은 경기 전환점을 판단할 때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의 추세를 주요 기준으로 삼는다. 현재의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이 수치는 2017년 3월 100.7을 기록한 뒤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2017년 12월부터는 기준선인 100 아래로 내려갔고, 지난해 3월 이후 9개월째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가 지난해 12월 현재 98.1까지 내려갔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5월(97.9) 이후 가장 낮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경기 사이클의 정점ㆍ저점을 판단하는 통계청을 이끄는 강신욱 통계청장은 최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경기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를 보면 2017년 2분기, 국내총생산(GDP)으로는 3분기가 정점으로 나타난다”며 한국 경제가 하강국면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했다. 그는 “두 수치가 정점을 찍은 위치가 달라서 기술적으로 분석을 진행하고 있다”며 “3~4월에 2017년 몇월에 정점을 찍었는지 잠정안을 내고, 전문가 자문회의를 거쳐 이르면 6월에 공식적인 정점 판단을 내릴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중앙일보 2월25일자 8면>
 
2017년 2~3분기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소득주도성장을 본격적으로 밀어붙인 시기다. 그러나 이 때문에 경기 하강이 시작됐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공교롭게도 한국의 경기 사이클상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시기에 문 정부가 출범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렇다 해도 현 정부의 책임이 가벼워지진 않는다. 경기가 하강기에 접어들었는데도 엉뚱한 진단과 정책을 내놓은 셈이기 때문이다. 
 
우선 판단이 틀렸다. 기획재정부가 매달 발간하는 ‘최근경제동향(그린북)’을 보면 2017년 4월에는 ‘회복 조짐이 나타나는 모습’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해 11월에는 ‘회복세가 견고하지 않다’라는 말이 사라지고 ‘회복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는 표현이 나왔다. 그리고 2017년 12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10개월 연속 ‘경기가 회복하고 있다’는 표현을 빠트리지 않았다. 당시 2017년 5월쯤을 정점을 찍고 경기 하강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하던 민간 연구기관의 판단과는 다른 해석을 내놓은 것이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실 진단이 제대로 안 되면 정책의 방향이 수정될 리 없다”며 “성장 엔진이 식어가고 있는데도 정책 입안자들은 이런 상황을 바람직한 경제 발전 체제로 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시적 어려움으로 치부하고 있는 것 같다”라고 밝혔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러다 보니 정책 방향도 경기 흐름과는 거꾸로 갔다. 실제 정부가 출범 이후 내놓은 것은 법인세ㆍ소득세 최고 세율 인상, 최저임금 1만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주 52시간제 시행 등 시장 활력을 떨어뜨리는 정책들이 많다.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취지도 좋고 필요하지만, 경기가 상승 국면일 때 써야 할 정책들을 하강 국면 때 썼다는 게 문제”라며 “특히 최저임금 인상률 등을 보면 정책의 추진 강도가 센데, 한국의 경제 체력이 약해진 상황에서 그만큼 경착륙 위험을 높이는 요인이 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해 받아들인 정부의 경제 성적표는 우울하다. 연간 취업자 수 증가 폭은 9만7000명으로 2017년(31만6000명)의 3분의 1 이하로 쪼그라들었다. 빈부 격차 정도를 보여주는 지표인 5분위 배율이 15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는 등 소득 양극화는 심화하고 있다. 설비투자는 감소세로 돌아섰고, 광공업 생산은 전년 대비 증가 폭이 급감했다.  
 
현재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지표인 ‘동행지수 순환변동치’와 앞으로의 경기를 예측하는 지표인 ‘선행지수 순환변동치’가 동시에 7개월 연속 ‘마이너스’ 행보를 기록한 것은 1차 오일쇼크 영향을 받았던 1971년 7월~1972년 2월 이후 처음이다.  
그래픽=박경민·김현서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김현서 기자 minn@joongang.co.kr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에 집중하다 보니 고용 부진, 소비 위축, 경기 침체에 대응하는 타이밍을 놓쳤다”며 “지금에라도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정책 기조와 궤도를 수정하는 게 필요하다”라고 조언했다.  
 
전직 고위 경제관료들의 쓴소리도 나온다. 노무현ㆍ이명박 정부에서 차관ㆍ장관을 지낸 한 전직 경제 관료는 중앙일보와 만난 자리에서 “환자가 멀쩡한 줄 알고 수술을 하려고 덤벼들었지만, 뒤늦게 CT를 찍고 보니 이미 골병이 든 상황”이라며 “신성장 동력 발굴, 산업 구조조정 같은 체질 개선 처방을 내려야 하는데, 세금과 재정을 쓰는 투약 요법을 고집하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김대중 정부 첫 경제수장이었던 이규성 전 재정경제부 장관도 지난달 열린 ‘니어시사포럼 신년 경제세미나’에서 “이념이나 사상에 사로잡혀 이를 경직적으로 적용해 나가지 말고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며 “경기 하강 국면에서 지금과 같은 고임금 정책, 부동산 보유에 대한 증세 정책 등이 옳은 선택인지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세종=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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