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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울 것이냐, 편하게 죽을 것이냐…'남한산성' 갇힌 환자들

중앙일보 2019.02.25 09:00
[더,오래] 조용수의 코드 클리어(14)
환자와 의사는 병마와 끝까지 싸울지,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일지 남한산성 앞에 서게 된다. 사진은 영화 '남한산성'의 한 장면. [사진 네이버 영화]

환자와 의사는 병마와 끝까지 싸울지,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일지 남한산성 앞에 서게 된다. 사진은 영화 '남한산성'의 한 장면. [사진 네이버 영화]

 
남한산성이 포위되었다. 청나라의 대군이다. 나라의 명운이 백척간두에 섰다. 이기는 길은 애당초 없었다. 한쪽은 죽더라도 싸우자 한다. 희생을 무릅써야 승리의 길이 하나라도 열린다. 포기하면 약간의 가능성도 사라진다. 먼 훗날 역사 앞에, 비굴한 오점으로 남겨져서는 안 된다. 다른 한쪽은 화친만이 살길이라 한다. 이길 수 없다면 피해라도 줄여야 한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나와 내 가족에 끔찍한 고통을 각인시켜선 안 된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만 미래가 있다. 
 
나는 중환자를 보는 의사다. 남한산성에 갇힌 환자를 무수히 많이 보았다. 누군가는 끝까지 싸우길 원했고, 누군가는 편히 떠나길 원했다. 대부분은 병을 이기지 못하고 죽었다. 기적처럼 살아나는 환자도 있었지만, 그 수는 드물었다. 남한산성은 삶보다 죽음에 가까이 있었다. 병마와 끝까지 싸워야 하는가? 아니면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여야 하는가? 정답은 없다. 판단의 옳고 그름을 논할 수도 없다. 다만 저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다를 뿐이다.
 
나는 의사의 입장이라, 어떤 환자든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다.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걸 펼치고 싶다.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봐야 직성이 풀린다. '어쩌면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미련이 남는 게 싫다. 환자가 바라는 바가 나와 같을 땐 쉽다. 서로 격려하며 끝까지 완주하면 그만이다. 설혹 결과가 아쉬워도 서로 후회는 없으니까.
 
하지만 현실에서 환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죽음과 타협한다. 환자와 보호자가 원하는 삶(죽음)은 따로 있는 경우가 많다. 환자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차마 더 지켜볼 수 없을 때. 남겨질 가족들에게 경제적 부담이 되고 싶지 않을 때. 인간답게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하고 싶을 때. 가족들이 하루빨리 현실로 돌아가길 바랄 때.
 
이런 다양한 이유를 만나게 된다. 의사로서 욕심만을 채우기 위해, 그런 바람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더 나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게 함께 노력해주어야 한다. 사랑하는 가족을 쉽게 떠나보내고 싶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치료를 포기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 그것이 결코 마음이 편해서는 아니다. 남겨진 가족은 평생 그 짐을 안고 살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을 앞두고 서로 다른 의견을 갖기도 한다. 환자는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품위 있게 떠나고 싶어하고, 가족은 끝까지 병마와 투쟁하기를 원하기도 한다. [중앙포토]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을 앞두고 서로 다른 의견을 갖기도 한다. 환자는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품위 있게 떠나고 싶어하고, 가족은 끝까지 병마와 투쟁하기를 원하기도 한다. [중앙포토]

 
끝까지 싸우길 선택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차라리 그때 편히 보내드릴걸’ 하며, 쓸데없이 고통을 주었다며 후회할지도 모른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아픔은 존재한다. 죽음이 주는 숙명이다. 때론 아픔이 곱절이 되는 경우도 있다. 모두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때다. 생전에 망자가 어떤 길을 원했는지 가족들이 모르는 경우다. 이런 경우 자기들끼리도 생각이 달라 충돌하곤 한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후회는 더 커지게 된다.
 
환자와 가족들의 의견이 다른 경우도 생긴다. 환자는 ‘깨끗하게 떠나겠다’며 단호한 뜻을 밝혔다. 앓느니 죽지. 누구에게도 짐이 되긴 싫기 때문이다. 이때 떠나는 이의 본인 의사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남겨질 가족들의 뜻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건 아니다.
 
생각해보자. 나는 깨끗하게 떠나지만, 그 때문에 남겨진 이들은 평생 부채 의식을 느끼며 살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가족을 중간에 포기했다는 한이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떠나는 입장에서 남겨진 이들 걱정까지 해야 하나 싶지만, 그렇다고 사랑하는 가족을 아프게 해서 좋을 건 하나도 없다.
 
방법은 하나다. 평소에 죽음을 미리 이야기해두는 것이다. 가족과 많은 이야기를 나눠두길 바란다. 혹시 모를 죽음의 순간이 찾아온다면, 모두가 가장 행복할 선택이 무엇이겠는지 미리 상의해 두길 바란다. 많은 대화만이 미련이 남지 않게 해준다. 당장에라도 가족과 서로의 생각을 나누자.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미리 대비해서 손해 볼 건 없다. 죽음은 언제나 예고 없이 문득 찾아오는 법이니까.
 
조용수 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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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수 조용수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필진

[조용수의 코드 클리어] 의사는 누구보다 많은 죽음을 지켜본다. 삶과 죽음이 소용돌이치는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는 특히 그렇다. 10년 가까이, 셀 수 없이 많은 환자의 생과 사의 현장을 함께 했다. 각양각색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며, 이제는 죽음이 삶이 완성이란 말을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환자를 통해 세상을 보고, 글을 통해 생의 의미를 함께 고민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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