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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공필의 심모원려] 프라이버시에 관한 사회적 합의

중앙일보 2019.02.25 00:30 종합 27면 지면보기
최공필 금감원 블록체인자문단장

최공필 금감원 블록체인자문단장

미래성장의 금맥으로 부각되고 있는 데이터의 활용은 경쟁력의 핵심요소이다. 당연히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은 새로운 가치 창출의 필수 도구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원조 IT 강국으로서 우리의 모습은 답답하기만 하다. 한쪽에서는 프라이버시를 강조하고 다른 쪽에서는 데이터 활용도를 높일 수 있는 개방 여건을 중시한다. 분명 디지털 혁명이 대세이긴 하지만 정작 데이터의 주인이 불안해한다면 폭넓은 공감대 형성은 힘들다. 따라서 민감 정보와 프라이버시 보호에 대한 일련의 사회적인 합의와 가이드 라인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이를 구현해 가는 과정은 기존의 분열된 규제체계와 맞물려 앞을 가늠하기 어렵다. 축구장을 채울 정도로 복잡한 GDPR(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과 같은 선진 규제체계를 원용해야겠지만 미래를 수용하려는 노력이 기존의 지배구조와 맞물려 매끄럽게 돌아가기가 어렵다. 데이터 관련 프라이버시 수준에 관한 사회구성원들 간의 합의도출을 이끌어 내기도 벅차다.
 
특히 디지털 세상에서 합의 가능한 프라이버시의 수준은 경우에 따라 다르다. 정보가 곧 돈인 세상에서 디지털 현금(digital cash) 관련 이슈의 조명을 통해 프라이버시에 관한 논의를 보다 구체화해 볼 수 있다. 디지털 현금이야말로 암호기술이 적용된 프라이버시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구체화한 산물이다. 그동안 중앙은행의 현금은 모두에게 기본적 프라이버시를 제공해왔다. 지하경제의 자금세탁, 조세회피용으로 악용되는 측면이 있었지만, 그래도 간섭받지 않는 자율 거래 및 가치저장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심모원려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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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디지털 세상에서도 개인은 자유롭게 현금을 사용할 권리가 있다. 즉 신뢰의 토대가 다양화되더라도 익명성이 보장된 현금은 단순한 편리함을 넘어 세상의 주인들이 누려야 할 기본적 권리다. 정작 문제는 디지털 현금에 반영되는 프라이버시의 수준이다. 프라이버시가 지나치면 공동체 차원의 사회적 가치 토대를 다져가기 어렵지만, 과도하게 억압되면 통제사회로 전락하게 된다. 결국 데이터 위주로 돌아가는 미래에 대한 합의 도출은 여러 형태의 개인 프라이버시 수준과 직결되어 있다.
 
따라서 프라이버시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통해 미래생태계 준비에 나서야 한다. 우선 법적 신뢰 주체에 전적으로 의존했던 과거와는 달리 프라이버시가 더욱 중시되는 디지털 환경에서는 민간 중심의 새로운 신뢰 토대를 구축해야 한다. 불확실하다고 개인 간 거래의 익명성을 일률적으로 규제해서는 위험 집중이 불가피하다. 오히려 전향적인 기술개발과 접근으로 개인 프라이버시와 다수 보안간의 상충 관계를 민간 스스로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당연히 프라이버시에 관한 규제의 정도는 영역과 수준에 따라 차별화되어야 한다. 시스템 위험 분야 이거나 보다 강력한 프라이버시를 원하는 주체들은 추가적 부담을 받아들여야 한다. 또한, 개인정보의 선택권이 주인에게 귀속되는 구도 아래서는 전자상거래에 있어 필수적인 정보만 제공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더불어 가상공간에서 통용되는 신원(virtual identity)에 관한 허용 폭도 확대되어야 한다. 수집·활용된 정보는 일정 시간 이후 폐기되거나, 저장·가공·판매에 관한 적절한 건전성 규제가 적용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당국은 일정 수준의 프라이버시 선택권을 소득과 배경과 관계없이 모두에게 보장하면서 디지털 약자들의 권리 보호를 위한 포용적이고 개방적인 생태계 조성에 나서야 한다.
 
최공필 금감원 블록체인자문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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