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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의 시시각각]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를 수 있나

중앙일보 2019.02.25 00:19 종합 30면 지면보기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민주당 이철희 의원 등이 발의한 ‘5·18비방 처벌법안’은 정부의 견해와 다른 생각을 가진 시민을 붙잡아 감방에 보내겠다는 반민주적 발상이다. 법안엔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 의원들도 가세했다. 이들에게 무슨 근거로 대한민국 시민으로부터 ‘반대할 자유’를 빼앗으려는거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 ‘5·18비방 처벌법안’은 오버
생각 다르다고 체포하면 전체주의

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5·18에 대해 부인·비방·왜곡·날조 또는 허위사실을 유포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이나 7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것이다. 신문,잡지,방송과 그 밖에 출판물 또는 정보통신망, 공연물, 토론회·간담회·기자회견에서 해당 발언을 금지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이렇게 대놓고 특정 이슈에 대해 반대를 못하게 하고 공식적 언론과 사적인 채널, 집단적 표현행사 등 모든 소통 영역에서 전파를 금지시키는 법안은 기자 생활 30여년 동안 처음 봤다.
 
1970년대 박정희 유신독재 시절엔 그런 일이 있었다. 대통령이 긴급조치라는 헌법 조항으로 국민 기본권의 본질적 부분인 언론·출판·집회·결사 등 양심과 표현의 자유를 몰수해 버렸다. 긴급조치들은 “(유신)헌법을 부정·반대·왜곡·비방하거나 유언비어를 날조,유포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고 했다. 신문·방송·통신 등 공중전파 수단이나 문서·도화·음반 등 표현물에 의하여 해당 내용을 타인에게 알리거나 권유·청원·선전하는 일체의 언동을 금지시켰다. 위반자에게 15년 이하의 징역을 때리라는 형량도 있다.
 
헌법이냐 5·18이냐로 대상이 달라 졌을 뿐 비방 금지 행위를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언론 등을 통한 시민적 확산을 차단한 뒤 위반하면 신체형을 부과하는 패턴은 박정희 때나 지금의 문재인 정부 때나 큰 차이가 없다. 긴급조치 시기에 버스 안에서 여고생들한테 정부의 분식 장려 정책을 비판하던 대학생이 헌법 비방, 허위사실 유포자로 몰려 3년 징역을 살았던 일이 벌어졌다. 이철희 의원의 이 처벌법이 통과되면 “광주 사태 때 북한군이 개입했다더라”는 식의 술집 논쟁도 ‘5·18 비방죄’로 감방에 가는 신세가 될 것이다.
 
아무리 5·18 민주화운동이 신성하다 해도 2+2=4라는 산수식 진리가 아니기에 모든 시민이 같은 생각일 수는 없다. 하나의 견해만 통용된다면 전체주의 사회일 것이다. 한국은 그런 나라가 아니다. 정부와 정당, 언론과 시민의 생각들이 다양하게 펼쳐지고 공론장에서 토론을 거쳐 자연스럽게 국민의사가 형성되는 자유민주주의의 나라다. 자유민주주의의 방식으로 집권한 민주당 세력이 요즘 언뜻언뜻 드러내는 전체주의적 태도는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사실 광주 민주화운동 때 북한군 개입 문제는 1년전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된 ‘5·18 진상규명법’에 들어있는 내용이다. 3조 6항에 ‘진상규명의 범위’ 7개항 중 하나로 “북한군 개입 여부및 북한군 침투 조작 사건”이 명시돼 있다. 이 법에 따르면 북한군 개입 여부는 앞으로 진상규명이 필요한 사안이지 현재 사실이 확정된 내용이 아니다. 논리적으로 사실 완성이 안됐다면 비방이나 칭송의 근거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발효중인 진상규명법과 범여권이 추진하는 비방금지법안은 인과 불일치라는 모순에 빠진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5·18 북한군 개입 주장을 반대한다. 하지만 그런 주장을 법으로 금지하고 처벌한다는 발상도 반대한다.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를 수 없다. 어떻게 이룬 자유민주주의인데 다시 표현을 억압하는 시대로 돌아간단 말인가. 한국 헌법에는 “나는 당신의 의견에 반대하지만 당신의 말할 권리를 위해 싸우겠다”는 관용의 정신이 흐르고 있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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