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당의 퇴행···개혁보수 설 곳이 없다

중앙일보 2019.02.25 00:11 종합 1면 지면보기
긴급점검 
“이번 한국당 전당대회 캐치프레이즈가 ‘다함께 미래로’인데 실제로는 ‘다함께 과거로’ 가고 말았다.”(김형준 명지대 교수)
 

5·18 망언 이어 태블릿 조작설
“극단층에 휘둘리며 공멸의 길”

전당대회는 보수 부활 기회인데
막말 나와도 위기관리능력 없어

황교안 오락가락 사태 더 키워
페북에 “분열의 시대와 결별”

(왼쪽부터) 김진태, 황교안, 오세훈 당 대표 후보자. [국회사진기자단]

(왼쪽부터) 김진태, 황교안, 오세훈 당 대표 후보자. [국회사진기자단]

보수 부활의 발판을 마련할 것으로 기대되던 자유한국당 2·27 전당대회가 퇴행의 늪에 빠진 채 막을 내리고 있다. 새로운 국가 비전을 제시하기보단 욕설·막말, 5·18 폄훼, 태극기부대, 탄핵 논란 등 부정적 기억만을 국민들에게 각인시켰다. 레이스 막판 유력 주자인 황교안 후보의 “태블릿PC 조작” 발언은 퇴행 논란의 결정판이었다. “탄핵의 악몽에서 2년 만에 간신히 기어나오며 추스르던 한국당이 다시 자기 파멸의 길로 들어가고 있다”란 지적마저 나온다.
 
2· 27 전당대회는 레이스 초반만 해도 역동적이었다. 특히 보수진영 차기 대선주자 1순위로 꼽히던 황교안 전 국무총리의 전격 입당이 활력소가 됐다. 황 후보는 출사표에서 “무덤에 있어야 할 운동권 철학이 국정을 좌우한다”며 문재인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여기에 유튜브 ‘TV 홍카콜라’를 진행하던 홍준표 전 대표가 가세하면서 판이 커졌다. 전대 보이콧을 접고 돌아온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함께 황교안-홍준표-오세훈의 ‘빅 3’가 형성됐다. 레이스가 진행되면서 당 지지율도 상승했다.
 
한국당의 발목을 잡은 건 “5·18은 폭동” “5·18 유공자는 괴물집단” 등의 발언이 여과 없이 나온 ‘2·8 공청회’였다. 김태우·신재민·손혜원 사건 등으로 수세에 몰려 있던 여권은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다. 한국당 지도부는 수수방관하다 제명과 징계유예라는 어정쩡한 봉합으로 사태를 수습하지 못했다.
관련기사
 
외부 변수도 악재였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 2월 27일로 결정되자 전당대회 연기 문제를 놓고 내부 충돌이 벌어졌다.  
 
“한국당 지지율 오르자 기고만장 … 탄핵의 악몽 잊어”
 
자유한국당 당 대표 등 지도부 선출을 위한 현장투표일인 24일 서울 영등포구선관위에서 한 당원이 투표용지를 받고 있다. 오는 27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리는 전당대회에서 지도부가 선출된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 당 대표 등 지도부 선출을 위한 현장투표일인 24일 서울 영등포구선관위에서 한 당원이 투표용지를 받고 있다. 오는 27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리는 전당대회에서 지도부가 선출된다. [연합뉴스]

결국 홍준표 전 대표는 불출마로 돌아섰고, 당초 8명의 대표 후보 중 3명(황교안·오세훈·김진태)만 최종 등록하는 ‘반쪽 전대’로 전락했다.
 
막상 공식 선거운동에 돌입하자 이번엔 ‘태극기부대’가 소동을 일으켰다. 특히 대구 합동연설회에선 김병준 비대위원장을 향해 욕설과 야유를 퍼부었고, 다른 후보가 연설을 할 때도 “김진태”만을 환호했다. 청년최고위원 후보으로 나선 김준교씨는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해 “저딴 게 대통령이냐”는 막말을 던져 논란을 일으켰다. TV토론회에서도 세 후보 간 주요 충돌 지점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인정하느냐” “태블릿PC 조작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등이었다. 여전히 한국당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는 인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보수 성향이 강한 당원을 대상으로 한 전당대회의 특성상 강경한 입장이 나올 수 있지만 메이저 정당이 이처럼 과거형 이슈에만 매몰되고 극단적 지지층에 휘둘리는 건 이례적이다.  
 
이에 대해 김형준 교수는 “좌파가 짜놓은 프레임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우파의 역설적 현주소”라고 지적했다. 박 전 대통령 탄핵의 부당성을 계속 제기한 건 김진태 후보다. 태극기부대 등 강성 당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김 후보의 전략이었지만, 결국 내부 권력다툼을 위해 ‘탄핵 프레임’이라는 외부의 칼을 가져다 마구 휘두르면서 스스로 공멸의 길을 자초했다는 진단이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예상보다 빨리 당 지지율이 30%에 육박하자 한국당 스스로 기고만장하고 말았다”며 “당의 주류는 여전히 박정희 패러다임의 영향력 아래 머물러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황교안 말말말

황교안 말말말

특히 사태를 키운 건 황교안 후보의 오락가락한 태도다. 일찍이 대세론을 형성하며 강경(김진태)과 온건(오세훈)이 맞붙는 상황에서 중심을 잡아야 할 황 후보가 말을 번복하거나 태극기부대의 눈치를 보는 듯한 모양새를 보이곤 했다. “태블릿PC 조작” 발언에 대해선 황 후보 측에서도 “김 후보한테 말려들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황 후보는 박근혜 탄핵을 부정하면 헌정질서를 거부하는 셈이고, 반면 탄핵을 인정하면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는 탄핵 총리의 딜레마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임동욱 한국교통대 교수는 “위기관리 능력 부재라는 측면에서 한국당도 황 후보도 민낯을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이를 의식한 듯 황 후보는 이날 페이스북에 “이번 전당대회 기간 동안 태블릿PC를 포함한 탄핵에 관한 논란과 논쟁이 있었다”며 “과거의 아픔이 분열과 갈등의 대결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갈등과 분열의 시대와 완전히 결별하고, 국민을 향한 통합의 시대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정도로 태블릿PC 발언이 초래한 난국을 수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란 관측이 당내에서도 우세하다.
  
최민우·윤상언 기자 minwoo@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