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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뒤 숨졌는데…책임질 사람 없는 영광 여고생 사건

중앙일보 2019.02.23 01:00
영광 여고생 사망 국민청원. [사진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쳐]

영광 여고생 사망 국민청원. [사진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쳐]

여고생에게 술을 먹여 성폭행 후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10대들이 재판에서 사망 책임은 없다는 판단(무죄)을 받자 엄벌 여론이 일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올라오면서 무죄 판단의 배경에도 관심이 쏠린다.
 

1심서 '치사' 혐의는 무죄 성폭행 혐의만 유죄 판단
재판부 "술 먹여 성폭행 했어도 사망 예상 못했을 것"

피해 여고생 친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엄벌 요청
피해자 측 변호인 "항소해달라" 검찰에 의견서 제출

논란이 된 사건은 지난해 전남 영광에서 발생했다. 피해 여고생 A양(당시 16세)이 그해 9월 13일 새벽 시간대 모텔에서 B군(현재 19세)과 C군(현재 18세)에게 차례로 성폭행을 당한 뒤 숨졌다.
 
A양은 B군 등이 범행 후 모텔을 빠져나간 뒤인 오후 4시쯤 모텔 주인이 발견했다. 당시 이미 숨진 상태였다. 부검 결과 사인은 ‘급성 알코올 중독’으로 나타났다. 혈중알코올농도는 0.405%에 달했다.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B군과 C군을 검거했다. 조사 결과 이들은 술을 먹여 성관계할 목적으로 평소 알고 지내던 A양을 불러낸 뒤 술 게임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A양만 계속 벌칙을 받게 서로 짜고 1시간30분간 소주 3병을 마시게 했다. A양이 술에 취해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성폭행을 한 뒤 모텔을 빠져나온 것으로 드러났다.
성범죄 일러스트. [중앙포토]

성범죄 일러스트. [중앙포토]

 
검찰은 이들을 ‘강간치사’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하지만 광주지법 제11형사부(부장 송각엽)는 지난 15일 1심 선고 공판에서 ‘특수강간’ 혐의만 인정했다. 사망 책임은 인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B군에게는 징역 장기 5년에 단기 4년 6개월, C군에게는 징역 장기 4년에 단기 3년 6개월 등의 형을 선고했다.
 
자신을 피해 여고생 A양의 친구라고 밝힌 청와대 청원인은 이번 판결을 두고 “계획적으로 술을 마시게 해 사망까지 이르게 한 건 가해자들이 분명함에도 치사 혐의가 무죄가 나왔다”며 엄벌을 촉구했다. 청원인은 “(치사 혐의가 인정되지 않으면) 가해자들은 형이 끝난 후 또다시 범죄를 저지를 것”이라며 “강력히 처벌해달라”고 했다. 지난 19일 올라온 이 청원에는 나흘째인 22일 오후까지 14만여 명이 동참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치사 혐의에 대한 쟁점은 ‘예견 가능성’이었다. A양에게 B군과 C군이 술을 먹이고 성폭행을 한 것은 인정되지만, 성범죄 후 사망할 것이라는 예견이 가능했냐는 것이다.
 
검찰의 주장과 달리 재판부는 A양이 숨질 것이라고 B군 등이 예견할 수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해자를 방치한 채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방치 장소는) 숙박의 용도로 사용되는 모텔방이었고 즉시 병원으로 옮겨야 할 만큼 특별한 이상징후가 발견되지 않은 이상 피해자를 그대로 두고 나온다고 해서 사망하리라는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없다고 보인다”고 했다.
 
B군과 C군이 먹인 술로 A양이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 재판부는 그렇더라도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B군 등이 A양이 사망할 수도 있다고 예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피해자의 변호인은 이번 판결에 대해 항소해달라는 의견서를 검찰에 제출했다. 변호인은 의견서에서 “강간치사 등 범죄는 사상의 결과는 간음행위 그 자체 때문에 발생하거나 강간의 수단으로 사용한 폭행으로부터 발생한 경우는 물론 강간에 수반하는 행위에서 발생해도 해당한다”고 대법원 판례를 들어 주장했다. 많은 술을 짧은 시간에 마시게 해 사망에 이르게 한 책임이 있다는 의미다.
 
변호인은 또 “통상 치사량에 해당하는 혈중알코올농도는 0.4%이지만, 급성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사망 사례를 분석한 연구 결과에서는 평균 농도가 0.35%였다”며 “실제로는 더 낮은 농도에서도 충분히 사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항소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광주광역시=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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