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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 벗는 일제 침략 과정과 파리의 독립운동

중앙선데이 2019.02.23 00:20 624호 20면 지면보기
정탐: 제국일본, 조선을 엿보다

정탐: 제국일본, 조선을 엿보다

정탐: 제국일본,
조선을 엿보다

3·1 운동 100년 주목할 책 두 권
『정탐: 제국일본 … 』
무력침략 전초전 문화침략
일본 상인·기자까지 정탐 나서

『어느 한국인의 삶』
외교관·작가였던 서영해
불어로 쓴 독립운동 소설

최혜주 지음
한양대학교 출판부
 
어느 한국인의 삶
서영해 지음,
김성혜 번역
역사공간
 
어느 한국인의 삶

어느 한국인의 삶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출간된 책 중에 이 두 종을 주목할 만한 책으로 꼽고 싶다. 일제가 어떻게 우리나라를 침범했고, 우리는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정탐』과 『어느 한국인의 삶』을 통해 새롭게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정탐』의 관점으로 『어느 한국인의 삶』을 보면 한국 근대사의 ‘슬픈 뒷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정탐』은 일제가 한국을 침략하기 위해 어떻게 음모를 꾸미고 준비해왔는지를 보여준다. 무력침략에 앞서 ‘문화 침략’부터 시작했다. 문화 침략은 역사 왜곡과 영토 조사로 나타났다. 심증은 가지만 물증을 잘 찾지 못한 분야였는데 최혜주 한양대 교수의 20여 년 공력이 빛을 발했다.
 
최 교수는 동경대에서 1995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해외 학위자의 경우 대개 그 나라의 이데올로기에 ‘동화’되곤 하는데, 저자는 그런 통설에 역행하는 모습을 보인다. 박사학위 이후 줄곧 식민사관 문제를 짚어내기 위한 자료를 수집해왔다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일본에서 ‘정한론(한국침략론)’이 비등하던 19세기 중반부터 이미 ‘한국 정탐’이 시작됐다. 군인·외교관·상인·기자 등이 앞장섰다. 그 결과물로 1880년대부터 침략의 정당성을 제공하는 다양한 ‘안내서’가 간행됐다. 중국·러시아의 남침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만들어진 한국 지도와 지리서 등은 ‘한국침략 지침서’ 역할을 했다. ‘동경지학협회(東京地學協會)’ ‘동방협회’ ‘식민협회’ ‘동양협회’ 등 멀쩡한 이름의 단체들이 정탐의 첨병 역할을 했다.
 
이들 단체에선 『동경지학협회보고』(1891.5~1894.7), 『지학잡지』(1893~1910), 『동방협회보고』(1891.5~1894.7), 『동방협회회보』(1894.8~1914.7), 『식민회보고』(1893.4~1899.6), 『식민시보』(1899.8~1902.11) 등 기관지를 펴냈다. 시라토리 구라키치, 이나바 이와키치, 쓰다 소키치 등 식민사학자들이 한국사의 주체성을 부정하고 타율성을 강조하는 역사상을 꾸며낸 것도 이런 단체를 통해서였다.
 
『어느 한국인의 삶』은 1929년 프랑스에서 한국인이 펴낸 소설이다. ‘한국역사소설’이란 부제가 붙었다. 90년 만에 처음 한국어로 번역돼 나왔다. 유럽에서 독립운동을 한 한국인의 흔치 않은 기록이다.
 
서영해의 1948년 사진.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이 서울 경교장을 방문했을 때다. 뒷줄 오른쪽 첫째가 서영해, 앞줄 가운데가 김구. [사진 역사공간]

서영해의 1948년 사진.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이 서울 경교장을 방문했을 때다. 뒷줄 오른쪽 첫째가 서영해, 앞줄 가운데가 김구. [사진 역사공간]

저자 서영해는 1902년 부산에서 태어나 18세 때 3·1운동에 참여했다가 중국 상해로 망명한 뒤 1920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고 한다.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기자, 작가, 대한민국임시정부 주불특파위원 등으로 활약하며 한국 독립의 정당성을 세계에 알렸다. ‘미국에 이승만이 있다면 유럽에는 서영해가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독립운동을 활발하게 했음에도 우리에게 서영해라는 이름은 낯설다.
 
서영해가 이 책을 쓴 이유는 한국이 오랜 역사를 지닌 문명국가임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일제가 한국을 강제 병합한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3·1운동의 평화적 시위에 이어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사실 등을 서술했다. 일제의 폭력 진압도 빼놓지 않았다. 책의 말미에 ‘기미독립선언문’까지 프랑스어로 번역해 실어 한국의 독립 의지와 평화 정신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그런데 소설의 주인공인 가상인물 박선초는 김옥균·박영효·서광범·서재필 등 갑신정변의 주역들과 ‘혁명 동지’로 묘사된다. 동학은 지나치게 보수적이어서 혁명적 개혁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그려진다. 이토 히로부미가 침략을 정당화하는 주장을 여과 없이 많이 실으면서, 조선의 ‘무능’과 ‘부정부패’를 과도하게 부각시켰다.
 
갑신정변의 배후세력이 일제란 사실은 지적되지 않는다. 이런 부류의 책을 볼 땐 이제 『정탐』에서 갈파한 일제의 문화 침략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1902년생인 저자가 1929년 이 소설을 쓸 때 참고한 한국사는 무엇이었을까. 불행히도 한국사의 근대적 서술은 우리 손으로 시작되지 않았다. 19세기 후반부터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쓴 ‘조선사’가 우리의 역사로 둔갑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의 독립운동이 폄하되어선 안 될 것이다. 그만큼 어려운 시기였다. 독립운동가의 구국 열정을 존중하면서도 일제의 문화 침략 요소는 가려서 보는 지혜가 필요해 보인다.
 
배영대 근현대사연구소장·철학박사 balanc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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