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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존재의 진실 탐구자 다빈치, 비밀 코드는 없다

중앙선데이 2019.02.23 00:20 624호 22면 지면보기
레오나르도 다빈치 타계 500년 <하> 50년간 다빈치 연구한 마틴 켐프
레오나르도 다빈치 작(作).
 
‘작(作)’이란 한 글자가 만들어내는 힘은 상상 이상이다. 미학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말이다. 여기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열망과 욕망도 뒤엉킨다.
 
“50년간 모든 걸 다 봤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다빈치 연구의 세계적 대가인 마틴 켐프 옥스퍼드대 명예교수가 지난해 발간한 회고담(『Living with Leonardo』)에서 한 말이다. 그는 그간 동료 학자들과 컬렉터와 큐레이터, 천문학적 금액이 오가는 미술시장 등을 경험했다. 100년 만에 다빈치의 그림으로 재발견된 ‘살바토르문디(세계의 구원자)’, 재발견됐으나 진위 논란 속에 있는 인물 드로잉 ‘라벨라프린치페사(아름다운 공주)’의 주요 연구자였다. 또 스코틀랜드공작 가에서 도난된 그림(‘막대기를 든 성모’)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법정 진술을 하기도 했다.  
 
다빈치 500주기를 맞아 그에게 다빈치가 오늘날 던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물었다.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여겼다는 게 오늘날 다빈치가 주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다.” 수화기 넘어 그가 답했다.
 
마틴 켐프

마틴 켐프

다빈치가 여전히 울림이 있다.
“그가 남긴 작품의 탁월함, 추구한 한 예술과 과학·공학기술, 그리고 씨름했던 광범위한 주제들이 보여주는 놀라운 시각적 특징 때문이라고 본다. 다빈치 전에도, 또 후에도 누구도 그만큼 자연과 인간에 대해 폭넓고 강렬하게 탐구한 이가 없었다. 그리고 그는 그걸 기록으로 남겼다.”
 
다빈치를 다빈치로 만든 건 무엇이라고 보나.
“모든 걸 이해하고 그걸 다시 만들어내겠다는 거대한 욕구다. 예술작품이든 공학기술이든, 건축이든 말이다. 욕구로 인해 그는 종종 원하는 모든 걸 다 실현할 순 없는 영역에까지 이르곤 했다. 앙기리아 전투에 대한 (다빈치의) 묘사를 들여다보면 TV 영화나 거대한 서사 영화의 스크립트를 보는 것 같다. 한편으로 다빈치는 일을 마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그는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그림(모나리자)을 끝냈고, 아마 두 번째로 유명한 그림인 ‘최후의 만찬’, 그리고 가장 유명한 드로잉인 원과 사각형 안에 있는 남자(비트루비우스 인간)를 끝냈다. 가장 유명한 세 가지를 마무리 지었다는 건 실제론 대단한 성취다.”
 
다빈치로부터 배운다면.
“인간을 복잡하게 얽힌 자연의 일부로 여겼다는 데 큰 메시지가 있다고 본다. 우리가 자연과 별개이거나, 자연 위에 있지 않고 또 자연의 주인이 아니며 우리의 몸과 마음은 거대한 자연적 시스템의 일부란 것이다. 과학기술 시대인 지금, 우리는 왠지 자연보다 우위라고 생각한다.”
 
다빈치의 시대엔 건축가이자 과학자, 화가가 되는 게 가능했다.
“다빈치 시대엔 모든 직업이 상당히 느슨하게 연계돼 있었다. 경계를 넘는 게 비교적 용이했다. 공학자로 교육받아도 의사가 될 수 있었다. 이젠 분야마다 지식이 방대하고 복잡하다. 언젠가 추정해보니, 현대의 다빈치가 되려면 13개에서 18개 분야에서 숙달돼야 한다고 나오더라. 사실 다빈치 자신은 그림을 그릴 때 하는 일, 공학을 할 때 하는 일, 그리고 과학을 할 때 하는 일 사이에 구별이 없었다. 세계를 이해하고, 운영방식을 완벽히 이해한다면 비행기구를 만들 수 있고 모나리자를 그릴 수 있다는 게 그의 신념이었다. 새와 박쥐가 어떻게 나는지 터득해야 (비행기구를) 재현해낼 수 있다고 봤다. 모나리자의 경우 풍경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지질학이나 직물, 머리카락, 광학은 또 어떤 원리인지 이해해야 했다. 그러므로 다빈치의 작품은 과학 작품이거나 예술 작품, 혹 예술과학 작품인 게 아니다. 예술과 과학이 분리되지 않은 채 결합한 것이다.”
 
오늘날에도 의미 있는 접근법이겠다.
“절대적으로 그렇다. 기술이 특화된 정도 그리고 그게 인간의 삶을 압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이 자연의 일부란 그의 본보기가 (오늘날에도) 중요한 메시지다.”
 
다빈치 연구자 중엔 세계적 석학들이 많다. 신진 연구자에겐 레드 오션일 듯한데, 여전히 연구할 만한 주제라고 보나.
“물론이다. 나는 자연과학도로서 다빈치의 해부학 드로잉을 들여다보면서 (다빈치 연구를) 시작했다. 생물학자 전공자로선 해볼 만한 일이었다. 그러다 이젠 일반인의 눈으로부터 다빈치에 대한 책을 쓰는 사람으로 비칠 정도까지 됐다. 대단한 영광이다. 의도를 가지고 선택했던 길은 아니었다. 덕분에 놀라운 곳에 이르렀다.”
 
그는 케임브리지대 다우닝 칼리지에서 자연과학을 공부했다. 점차 시각미술·음악·영화에 빠져들었고 코톨드 인스티튜트의 미술사 과정에 진학했다. 지금은 예술과 과학의 시각화 부문에서도 대가로 불린다.
 
그렇게 다빈치 연구를 한 게 50년이다.
“애초 그럴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1981년 그간 나의 연구를 총정리하는 책을 내는 것으로 마무리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가 계속 나를 찾았다. 다빈치는 문화적으로 대단히 풍부하고 다면적이다. 특히나 유럽에선 그렇다. 셰익스피어나 단테처럼. 늘 뭔가 새로운 것, 이전에 알아채지 못한 것이 있다.”
 
살바토르 문디가 2011년 다빈치의 작품으로 인정되는 과정에 주요한 연구 기여를 했다. 다빈치의 작품이 새로 또 발견될까.
“20세기 초 이래 100년 만에 다빈치 그림이 발견된 게다. 대단히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다시 나올 것 같진 않다. 사실 살바토르 문디 이전에 나는 새로운 게 나올 것 같지 않다고 말하긴 했다. 살바토르 문디는 그러나 특별한 경우다. 대단히 손상됐고 완전히 덧칠돼 있어서 그 아래 뭐가 있는지 전혀 볼 수 없었다.”
 
유리 보안 장치 밖으로 나온 모나리자를 본 게 두 번이라고 들었다.
“처음 방에 들어갔을 때 초조했다. 실망할까 봐, 기대보다 못할까 봐. 너무나도 대단한 명성 때문이었다. 그런데 장치 밖으로 나왔을 때 모나리자는 놀라운 존재감을 보였다. 일부 위대한 화가의 작품은 말 그대로 살아있다. 렘브란트의 자화상이 그랬고, 몇몇 화가의 작품도 그렇다. 불활성 표면에 염료가 있는 것이길 넘어, 어떤 식으로든 의사소통이 가능한 살아있는 것이 된다. 젠체하는 듯 들릴 수 있으나 (모나리자를 볼 때) 실제 일어난 일이다.”
 
회고담에서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을 비판적으로 언급했더라. 실제 다빈치라면 책에서 비밀 종파의 수장으로 그려진 자신의 모습에 대해 뭐라고 할까.
“(『다빈치 코드』는) 대단히 효과적인 스토리텔링이다. 그러나 전혀 다빈치와 연결되진 않는다. 다빈치는 일종의 (스토리텔링) 수단이었다. 다빈치는 이상하고 비밀스럽고 신비주의적 종파, 그리고 댄 브라운이 다빈치와 연관됐다고 묘사한 모든 것들을 싫어했다. 다빈치는 자연의 진실, 그리고 존재의 진실을 알려 했다. 댄 브라운 책은 그저 소설로 여겨야 한다. 허구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이를 예술사적 근거가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게 골칫거리다.”
 
고정애 기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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