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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의 시선] 최고권력 주변 ‘특별한 사람들’을 수사하려면

중앙일보 2019.02.22 00:20 종합 28면 지면보기
박재현 논설위원

박재현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의 말처럼 ‘현직 대통령도, 대통령의 아들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성역없이 수사할 수 있는 사정기관’은 존재할 수 있을까. 문 대통령은 권력기관의 개혁을 주문하면서 고위공직자비리(범죄)수사처의 필요성을 또 얘기했다. 공수처야말로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최고 고위층 권력자들에 대한 특별사정기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대통령과 대통령 친인척 등 특수관계자-청와대 등에 근무하는 권력자-국회의원-판·검사 등이 주요 조사 대상이라는 구체적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했다. 현실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현직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중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다”는 헌법상 특권을 고려하면 일부 발언은 정치적 수사(修辭)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현직 대통령은 아니더라도 대통령 주변의 ‘특별한 사람들’에 대한 수사는 어떻게 이뤄져야 할까.
 

특별검사와 특별감찰관 제도 활용 방안 찾아야
통치권자 결단없이는 공수처도 제역할 못할 것

#언감생심(焉敢生心)
 
감히 청하지는 못하지만 바라던 바 일 때 권력자에 대한 수사가 그나마 이뤄진다. 대통령과 집권당의 실정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커질 때다. 문 대통령 설명 처럼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 사건이 그렇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도 검찰의 입장에선 울고 싶을 때 뺨 맞은 격으로 이뤄졌다. 여론에 떠밀린 정치적 희생양의 의미도 있었다.
 
하지만 살아있는 권력을 치기 전엔 ‘어떻게 감히…’라는 생각 때문에 망설일 수 밖에 없다. 권력자와 그 측근들은 물론이고 수사기관도 마찬가지다. 문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경수 경남도지사 사건을 보자. 지난해 허익범 특검이 출범했을 때 전직 검찰총장의 반응은 ‘언감생심’이었다. “대통령 지지율이 80%대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김 지사를 구속한다고?”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수사 초기부터 특검에 파견나왔던 수사 검사와 수사관들 사이에선 파열음이 났다. “열심히 수사한들 무슨 이득이 있냐”는 속내였다. 드루킹을 김 지사에게 소개해 준 특별한 사람들에 대한 수사는 어떤 진척도 보지 못했다. 수사의 칼날은 권력을 향할 때 빛이 나지만 이는 교과서에나 나오는 얘기다. 김 지사 판결을 둘러싼 작금의 정치적 상황은 또 어떤가. 1심 재판부를 향한 집권당의 공격은 거의 필사적이다. 탄핵소추까지 운운하는 상황에서 공수처라고 별 수 있을까.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바라던 결과에 도달할 수 없다. 노무현 정부 때 대통령의 턱밑까지 수사망을 좁혔던 대선자금 사건은 검찰 역사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국민적 지지를 받았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불쾌하지만 참을 수 밖에 없다”고 반응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서의 검찰은 거의 죽은 권력에만 불을 켜고 있다. 대통령의 입김이 작용하는 공수처가 나선다고 권력자에 대한 수사가 가능할까. 이번 국회들어 5개의 공수처 관련 법안이 계류 중이지만 모두 대통령이 임명하는 구조다. 수사기관이 딴눈 팔지 않고 수사에만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고 있는 손혜원 의원 사건은 수사의 강도나 속도가 뜨뜻미지근하기 짝이 없다. 손 의원은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 정부에선 ‘특수한 사람’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 공짜 외유 파문을 일으켰던 김기식 전 금감원장의 사건은 또 어떠했던가. 김태우 전 수사관과 신재민 전 사무관의 폭로가 비리 감추기와 속좁은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규정되는 상황에서 수사기관의 선택은 그만큼 쪼그라들 수 밖에 없다.
 
#결자해지(結者解之)
 
지금 우리는 사법적 정의를 세울 수 있는 충분한 법과 제도를 갖추고 있다. 이미 5년 전부터 특정사건에 독립적 지위를 갖는 특별검사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때 민정수석과 논쟁을 벌였던 특별감찰관제도도 법적 지원을 받고 있다. 대통령 친인척과 대통령과 특수한 관계에 있는 사람의 비위행위에 대한 조사를 하는 기관이 있는데 공수처를 찾는 것은 너무 멀리 돌아간 것이다. 문 대통령 딸 부부의 갑작스런 태국행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의구심은 사그라 들지 않았다. 노자에 나오는 말처럼 ‘천망회회 소이불실(天網恢恢 疎而不失)’이라고 했던가. 하늘이 친 그물은 성긴 것 같지만 그래도 굉장히 넓어서 악인에게 벌을 주는 일을 빠뜨리지 않는다. 특별한 사람들의 스캔들은 제도와 법의 미비 때문이 아니다. 환경부의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해 체크리스트라는 청와대의 주장이 강변과 궤변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이 정부의 권력자들이야말로 눈을 부라리고 있는 일제의 칼 찬 순사의 모습이 아닐까. 권력기관 개혁 원년을 촉구했던 문 대통령의 바람이 이들 때문에 희석되고 있다. 대통령의 결자해지가 없이는 공수처는 한낱 옥상옥의 기구에 불과할 뿐이다.  
 
박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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