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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프리즘] 추사와 두 군수

중앙일보 2019.02.22 00:19 종합 28면 지면보기
김호 광주총국 기자

김호 광주총국 기자

전남 함평군립미술관 수장고에는 추사 김정희 관련 작품 80점이 보관돼 있다. 전임 군수 시절인 2016년 3월 함평군이 지역 출신 고미술품 수집가 A씨(87)에게 35억원을 주고 매입(30점)하거나 기증(50점)받은 것들이다. 함평군은 새 관광자원이 될 것이라며 ‘추사 김정희 박물관’을 세우려 작품을 사들이거나 기증받았다. ‘함평과 추사 사이에 특별한 연결고리가 없다’는 우려는 무시됐다.
 
군수가 바뀐 뒤 작품들은 골칫거리가 됐다. 지난해 말 군청의 의뢰로 전문 감정기관 감정 결과 80점 중 32점이 위작이라는 판단이 나오면서다. 위작 논란의 최종 결론이 난 것은 아니다. 감정 전문성에 대해 A씨 측이 문제를 제기하자 감정기관이 ‘재감정 필요성이 있다’며 한발 물러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함평군은 재감정 대신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초강수를 뒀다. A씨와 과거 감정을 맡은 자문위원 6명, 당시 업무를 담당한 전직 공무원 2명 등을 수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사기와 업무상 배임, 허위 감정 등 구체적인 혐의도 적시했다. 그러면서도 정작 돈을 되돌려달라는 요구는 하지 않았다. 작품 매매·기증계약서에 환불 근거도 있지만 군 행정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갈 수 있는 수사 의뢰부터 했다. A씨 측은 “전임 군수 시절 사업에 대한 흠집 내기가 진짜 목적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함평군은 “경찰 수사로 논란을 끝내려고 한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전임 안병호 군수 시절 이뤄진 작품 매매·기증 과정에 석연치 않은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당초 35억원을 기증사례비 형식으로 주려다가 조례상 어려워지자 무리하게 개정을 추진하다가 결국 매매 대금 형식으로 지불한 대목이 대표적이다. 현 이윤행 군수도 완전히 자유롭진 않다. 추사 작품 매매·기증은 현 군수가 집행부를 견제·감시하는 자리인 함평군의원 시절 이뤄졌다. 이 군수는 과거 “추사 작품 전시는 우리 지역을 문화와 예술이 숨 쉬는 고장으로 거듭 태어나게 할 것”이라고 말했었다.
 
함평은 재정자립도가 13.14%로 전국 최하위 수준이다. 어려운 재정 여건 속에서 당위성이 뚜렷하지 않은 추사 김정희 사업이 이뤄진 책임은 두 군수 모두 피할 수 없다. “추사 작품이 전·현직 군수간 정쟁의 도구가 된 것 같다”는 시선도 있다. 논란을 끝내기 위해 사업 과정을 투명하게 밝히고 잘못이나 미흡한 점이 있다면 각자 그것부터 인정해야 한다. 그게 함평군과 군민을 위하는 길이다.
 
김호 광주총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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