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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의 평양 오디세이] “단백질 연구 국제경연서 1위”…편식 심한 북 이공계의 명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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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lee.youngjong@joongang.co.kr

“단백질 연구 국제경연서 1위”…편식 심한 북 이공계의 명암

중앙일보 2019.02.22 00:04 종합 26면 지면보기
김정은 체제 과학기술 수준
노동신문 1면은 북한 체제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창 역할을 한다. 김정은 동정이나 발언을 담은 기사는 머릿기사에 오르고, 북측 표현대로 ‘옹근 한 면(전면 기사)’에 걸쳐 편집되기도 한다. 이런 노동신문에 한 연구자의 국제대회 수상 소식이 실려 눈길을 끌었다. 지난 2일자 1면에 ‘나라의 기초과학 발전 면모를 보여주는 성과’라는 제목으로 등장한 기사다. 북한의 기초과학 분야 인재 양성기관인 이과대학 소속 연구자가 제13차 국제 단백질 구조예측 경쟁에서 “최우수 평가를 받았다”는 내용이다.
 
북한이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언급이나 관련 시설 방문 등이 아닌 사안을 1면에 눈에 띄게 싣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이 때문에 북한이 언급한 이 대회의 성격과 북한이 우수한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배경에 관심이 쏠렸다. 무엇보다 단백질 구조 예측(protein structure prediction)이라는, 일반인들에겐 낯선 첨단 분야에서 북한이 국제사회가 주목할 두각을 나타냈다는 점에서다.
 
노동신문에 따르면 이과대학 자연과학연구원 한군섭 연구사는 지난해 5월부터 3개월에 걸쳐 여러 부문으로 나뉘어 진행된 ‘제13차 단백질 구조예측 국제대회’(CASP13)의 단백질 구조모형 정확도 추정 종목에서 이 부문 세계 50여개 참가팀을 누르고 1위에 올랐다. 이 신문은 “지난해 12월 초 멕시코에서 진행된 제13차 국제 단백질 구조예측 경쟁 총화회의에서는 이과대학 연구사가 제출한 우리 식의 단백질 구조모형 정확도 예측방법이 가장 우수한 방법으로 평가되었다”고 소개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통일부와 과학계 인사들에 따르면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행사엔 모두 200개 팀이 참가했고, 북한이 나선 ‘구조평가’ 분야에 50개 팀이 경쟁했다. 해당 세션 심사위원 가운데는 석차옥 서울대 화학부 교수가 포함됐다. 한 관계자는 “석 교수가 올 초 과학 관련 강좌 모임에서 북한의 입상에 대해 ‘주목할만한 의미있는 결과’로 평가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 1994년부터 2년마다 열려온 단백질 구조예측 국제대회는 아직 실험으로 밝혀지지 않은 단백질의 구조를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예측하는 경연장이다. 북한은 이번 대회에 처음 논문을 제출해 수상했는데, 일정상의 이유를 들어 패널 초청에는 응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단백질의 구조를 해석하는 문제는 질병 등 인체의 비밀을 푸는 열쇠 중 하나로 간주된다. 인체에는 10만개 이상의 단백질 종류가 있고 이는 인체 구성이나 기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고유한 모양을 이탈해 구조가 바뀌면 알츠하이머나 광우병, 파킨슨병 같은 난치성 질병에 걸리게 된다. 이런 사정 때문에 단백질 구조예측은 신약개발과 질병 치료에 있어 꼭 필요한 원천기술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북한의 1위 입상은 국제 과학계에서도 화제가 됐다는 후문이다.
 
북한은 지난해 4월 노동당 제7기 3차 전원회의에서 ‘과학교육사업에서 혁명적 전환을 일으킨다’는 전략을 제시하는 등 김정은 집권 이후 과학·기술 중시 정책을 강조하고 있다. 국제무대에서 거둔 성과를 김정은의 과학기술 중시 정책의 결과물로 부각시키려는 의도도 드러난다. 노동신문도 “단백질 구조예측과 관련한 연구 사업을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학자들과 당당히 어깨를 겨루며 확대해나갈 수 있는 좋은 전망이 열리었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기초과학 계열 연구 수준이나 인재 양성 체계가 상당한 정도에 올라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과 몽골 등은 물론 유럽 국가들에서 유학 중인 북한 학생들 가운데 생물학이나 화학, 컴퓨터 공학 등을 전공하는 비중이 많은 점도 눈길을 끈다. 첨단 분야의 과학기술 습득은 물론 기초연구에도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북한 이과대학 생물학부 출신인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는 “김정은 체제들어 과학분야 기초이론과 첨단 기술분야에서는 출신성분이나 토대를 안따지고 능력위주로 발탁하는 경향이 지배적”이라고 말했다. 핵과 미사일 등 분야에 고급인력이 필요하다는 현실적 문제도 반영됐다는 애기다.
 
북한이 일찌감치 체제 유지 차원의 과학인재 양성에 나선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에선 1950년대부터 초보적인 형태의 영재교육이 이뤄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우리와 달리 영재라는 표현보다는 ‘수재’란 용어를 선호하는 북한이 영재교육의 첫발을 뗀 건 1958년 외국어 영재학교인 평양외국어학원이라 할 수 있다. 이어 1960년에는 예체능 분야의 영재학교가 속속 설립됐다. 한국의 경우 1981년 경북 구미고등학교에 영재학생을 위한 특설교실이 만들어지고, 1983년 과학영재교육기관인 경기과학고가 개교했다. 영재교육에 있어서 북한이 출발은 훨씬 빨랐다는 얘기다. 사회주의 이념에 기초해 평등성과 집단주의식 교육을 중시했을 북한에서 엘리트 교육에 일찌감치 눈떴다는 점은 주목된다.
 
2017년 7월 홍콩에서 열린 57회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 참가했다가 한국으로 망명한 이정열 군의 사례는 북한 영재교육의 명암을 드러낸다. 아시아 무대에서 수학천재로 이름을 날렸고,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는 2014년부터 3년 연속 은메달을 땄던 그는 북한 체제에서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탈북 결심을 털어놓자 중학교 수학교사인 그의 부친은 “우리 걱정은 말라”며 200달러를 손에 쥐어 주었다고 한다. 탈북자 가족에게 닥쳐올 참혹한 삶을 알면서도 아들의 미래를 위해 아버지는 눈물의 결단을 내린 것이다.
 
체제 유지를 위해 학문연구 분야까지 철저한 통제를 가하고 있는 북한이지만 특정 분야의 고급인재 양성과 기술 체득에는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도 드러난다. 인터넷이 허용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첨단 정보기술(IT) 전문가를 늘리려 컴퓨터 영재교육에 집중하는 건 대표적인 사례다. 영재교육을 거쳐 김일성대학이나 김책공대 등을 졸업한 북한의 ‘IT 영재’들이 해커로 변신해 한국은 물론 세계 각국의 군사정보와 첩보사항을 수집하며 국제사회의 위협으로 부각됐다. 요즘엔 북한 해커들이 금융망이나 온라인게임 서버에 침투해 외화벌이를 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북한이 핵 물리학과 미사일 로켓 개발 기술, 생물학과 화학 등의 분야에서 국제수준의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데 대해 평가는 엇갈린다. 국가체제가 필요로 하는 특정 분야에 치중해 영재양성과 엘리트 집중교육, 노동당 차원의 투자를 통해 결과물을 내고 있지만 경제나 과학기술 전반에 걸쳐 낙후된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핵과 미사일에 이어 컴퓨터 해킹 등은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다. 대북제재의 해제 상황에 보폭을 맞춰 남북 간 과학기술 분야의 교류와 북한 당국의 과학기술 저변확대 노력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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