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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음악인들은 2월에 러시아 소치로 몰려간다, 왜?

중앙일보 2019.02.21 17:28
16일 러시아 소치시의 겨울극장에서 열린 공연. 피아니스트 김대진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장)이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을 협연하고 있다. [사진 소치겨울예술축제]

16일 러시아 소치시의 겨울극장에서 열린 공연. 피아니스트 김대진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장)이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을 협연하고 있다. [사진 소치겨울예술축제]

소치의 2월은 춥지 않았다. 낮 최고기온이 15도에 이를 정도다. 러시아의 휴양지이자 겨울올림픽 성화가 불타던 이곳 소치는 매년 2월 음악의 도시가 된다. 12년 전 2007년 순회공연을 왔던 유리 바슈메트와 모스크바 솔로이스츠에게 소치 시는 매년 공연을 열어달라고 부탁했다. 처음에 공연으로 시작한 행사는 축제로 커졌다. 세계 각지에서 청중이 몰려들자 중앙정부의 지원이 시작됐다. 페스티벌은 2014 소치 겨울올림픽의 개·폐막식을 잊지 못할 문화적 체험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소치겨울예술축제 현장 리포트

14일 개막해 24일까지 이어지는 소치 겨울예술축제의 주무대인 겨울극장(Zimniy Theatre). 지난 16일 이 무대에 유리 바슈메트가 지휘하는 모스크바 솔로이스츠가 올랐다. 하이든 오페라 ‘무인도’ 서곡으로 시작한 1부에서는 호세 벤센테 카스텔로가 협연한 베버 호른 콘체르티노, 발레리 보드로프의 ‘포스 힐라론(Phos Hilaron, 최초의 찬송가 중 하나)’ 등이 연주됐다.  
 
소치겨울예술축제에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 중인 피아니스트 김대진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장).그 뒤로 지휘자 유리 바슈메트가 보인다. [사진 소치겨울예술축제]

소치겨울예술축제에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 중인 피아니스트 김대진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장).그 뒤로 지휘자 유리 바슈메트가 보인다. [사진 소치겨울예술축제]

연주를 마치고 청중들에게 인사하는 피아니스트 김대진과 연주자들.[사진 소치겨울예술축제]

연주를 마치고 청중들에게 인사하는 피아니스트 김대진과 연주자들.[사진 소치겨울예술축제]

 인터미션 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을 피아니스트 김대진(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장)이 협연했다. 생경한 동시대 음악 뒤에 듣는 익숙한 모차르트의 명곡은 아름다움이 각별했다. 현은 일사불란했고 피아노의 카덴차는 섬세했다. 2악장은 피아노의 가냘픈 전주에 이어 애틋한 오케스트라 총주가 이어졌다. 낮게 깔리는 약음에 러시아 청중들은 더욱 귀를 기울였다. 
 
관과 현, 건반이 국적을 초월해 마음을 나눴다. 러시아 청중은 침묵하며 피아노 독주의 아름다움을 만끽했다. 물 흐르듯 힘찼던 3악장에서 일사불란한 현악군은 철심이 박혀있는 듯 강렬한 소리로 섬세한 피아노와 대조를 이뤘다. 박수는 길게 이어졌다. 김대진은 커튼콜에 답하며 객석으로부터 꽃을 받았다.  
 
 축제 기간에는 각국의 연주자와 작곡가가 참여하는 아카데미 프로그램도 왕성하게 열린다. 러시아 예술에 새로운 요소를 접목시키려는 시도다. 기악 마스터클래스, 청소년 작곡 콩쿠르를 겸한 마스터클래스 외에 올해엔 러시아의 젊은 저널리스트 지망생 100명을 초청한 프로그램이 눈에 띄었다. 예술 전문 저널리스트들에게 이론과 실제를 경험할 기회를 준 것이다.  
 
 복도에 리히테르와 쇼스타코비치의 사진이 전시된 소치 뮤직 칼리지에선 김대진 교수의 마스터클래스도 열렸다. 자국의 피아노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러시아지만 개방을 통해 뻗어나가려는 움직임이 느껴졌다. 이 클래스를 지켜본 벨기에의 루디 탐부이저는 “공연이 인상적이었다"며 "그동안 김대진의 활동을 눈여겨 봐왔다. 그를 인터뷰할 예정”이라고 했다. 일본에서 온 쓰네카와 요코 기자도 “김대진 교수가 학생을 가르치는 모습이 궁금해 클래스를 찾았다”고 말했다. 
재즈 보컬리스트 다이앤 슈어의 공연 모습. [사진 소치겨울예술축제]

재즈 보컬리스트 다이앤 슈어의 공연 모습. [사진 소치겨울예술축제]

 
 클래식 음악 공연 외에도 재즈 공연도 열렸다. 17일 열린 시각장애인이자 재즈 보컬의 명인 다이앤 슈어의 공연도 그중 하나다. ‘모스크바의 밤’, ‘어 내츄럴 우먼(A Natural Woman)’에 이어 그가 비틀스의 ‘렛잇비(Let it be)’를 부를 때 한 러시안 여성 청중은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쳤다. 한러수교 30주년을 맞이하는 2020년, 소치에는 우리나라 재즈 보컬 나윤선이 선다.
 
모스크바 솔로이스츠 연주와 어우러진 1인극 '네 별을 떠나지마'. [사진 소치겨울예술축제]

모스크바 솔로이스츠 연주와 어우러진 1인극 '네 별을 떠나지마'. [사진 소치겨울예술축제]

음악극 '네 별을 떠나지마'. [사진 소치겨울예술축제]

음악극 '네 별을 떠나지마'. [사진 소치겨울예술축제]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각색한 음악극 ‘네 별을 떠나지 마’도 눈길을 끌었다. 러시아 국민배우 콘스탄틴 하벤스키의 연기와 바슈메트 지휘 모스크바 솔로이스츠의 연주로 펼쳐졌다. 1인극의 명료함에 오케스트라가 다양한 색채를 투사했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설산 모양을 스크린 삼아 비디오 아트로 물들인 무대도 장관이었다.  
 
 축제 기간, 공연이 없는 낮시간대에는 미디어 컨퍼런스가 열렸다. 15일 리코르디 출판사의 막시밀리안 폰 오로크, 음반 디스트리뷰터인 마리오 모레즈, 런던에 버금가는 문화 거점을 노리는 맨체스터 페스티벌 감독 폴 클레이, 트란스파란트 극장의 후이 콜렌 등 EU 지역 전문가들이 발표자로 나섰다. 소치가 지역 축제를 넘어서 국제 네트워크에 키워나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지역사회에의 기여가 축제 평가의 중요한 지표가 되는 우리나라의 사정이 떠올랐다. 
 
소치겨울예술축제에서 열린 음악 전문가들의 컨퍼런스 . [사진 소치겨울예술축제]

소치겨울예술축제에서 열린 음악 전문가들의 컨퍼런스 . [사진 소치겨울예술축제]

 16일 아시아 지역에서 온 발표자들만의 시간이 마련됐다. 1999년 설립된 상하이 차이나 국제음악제,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지어지고 있는 중국 공연장의 현재, 중국의 공연 매니저, 타이페이의 유 시어터 등 중국 일색의 발표자들 틈에서 자라섬 페스티벌의 인재진 감독의 발표가 눈에 띄었다. 러시아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소치겨울예술축제는 비슷한 시기에 열린 대관령겨울음악제를 떠올리게 했다. 안내 책자만 비교해도 크게 다르다. 책자에 실린 비주얼 이미지의 수려함은 대관령 쪽이 앞서지만 내용을 보면 소치 쪽의 화력이 훨씬 강해 보인다. 소치겨울축제의 안내 책자에는 푸틴 대통령과 바슈메트의 인사말이 맨 앞에 나오고 푸틴과 바슈메트 사이에 빼곡히 적힌 후원 기업들의 이름이 눈에 띈다. 대관령은 인사말이 문화체육관광부장관, 강원도지사, 강원문화재단 이사장, 예술감독 순이다. 책자에서 후원 기업의 이름은 찾기 힘들다. 2020년까지 예산이 확보돼 있는 대관령겨울음악제는 그 이후에 어떻게 될까.  
 
 소치의 관계자들은 클래식 음악이 그동안 고인 물처럼 정체돼 있음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작곡가들의 활발한 신작 창작에서 활로를 찾았다. 연주가뿐 아니라 젊은 작곡가와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저널리스트 및 전문가를 키우겠다는 뜻을 밝혔다.  
 
 컨퍼런스의 좌장 패트릭 드 클럭은 아시아통이었다. 서울시향이 처음으로 유럽에 갔던 클라라 페스티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기도 했다. 그에게 “소치겨울음악축제는 예산 걱정이 없어서 좋겠다”고 했더니 이런 대답을 들려줬다.  
 
“축제의 성공여부가 단순히 예산이 풍족해서일까요? 천만에. 소치의 이 축제는 12년 전 바슈메트 모스크바 솔로이스츠가 함께한 단 세 차례 공연으로 시작됐습니다. 만에 하나 지원이 끊기더라도 바슈메트에겐 다시 시작할 힘이 있습니다. 결국 누가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소치(러시아)=류태형(음악 칼럼니스트) kinsechs0625@gmail.com
Alexey Molchanovsky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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