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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트라우마?…위축된 민주당 소신파 "야당 때가 좋았다"

중앙일보 2019.02.21 05:00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오른쪽)와 홍영표 원내대표 등 의원들이 20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정책의원총회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오른쪽)와 홍영표 원내대표 등 의원들이 20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정책의원총회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야당일 때가 차라리 좋았다” “요즘 의원총회는 재미가 없다”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하소연들이다. 올해 들어 세 번의 의원총회가 열렸지만 비공개회의에서 현안을 놓고 갑론을박을 벌인 적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 말이다. 야당 시절에 비해 다들 숨죽어 지내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푸념도 나온다. 지난해 인터넷전문은행법 처리 과정에서 일부 의원이 소신 발언을 내놓기도 했지만 ‘찻잔 속 태풍’이었을 뿐이다. 한 민주당 초선 의원은 “야당 시절에는 의총 한 번 열리면 반박에 재반박이 끝없이 이어졌는데 요즘은 발언자가 별로 없다. 당 지도부한테 전달사항만 전해 듣고 마는 편”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소속 의원 128명이 함께 있는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도 대체로 조용한 편이라고 한다. 서영교 의원의 ‘재판 개입’ 의혹, 손혜원 의원의 ‘이해 충돌’ 논란, 최근 김경수 경남지사 재판에 대한 대응 방식 등 민감한 현안을 놓고 토론이 이뤄지는 분위기는 아니라는 얘기다. 한 재선 의원은 “5ㆍ18 망언 등 우리 당 입장이 분명한 사안일 때는 너도나도 한마디씩 하는데, 평소에는 자신이 발의한 법안 동의해달라는 정도의 내용이 주가 된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열린우리당 트라우마’라는 해석도 나온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이라크 추가 파병,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에서 당·청이 엇박자를 내면서 진보층이 등을 돌리고 결국 정권을 빼앗겼다고 보는 시각이다. 9년 만에 정권을 되찾았기 때문에 “지금은 단합이 최우선”이라는 기치 아래 똘똘 뭉쳐야 한다는 정서가 강하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지난 1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5·18 망언, 역사 부정 자유한국당은 사죄하라' 현수막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지난 1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5·18 망언, 역사 부정 자유한국당은 사죄하라' 현수막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연합뉴스]

최근 당 중진인 송영길 의원이 ‘신한울 원전 3ㆍ4호기 건설 재개’ 입장을 밝히자 우원식ㆍ김성환 의원 등이 공개 반박에 나섰고, 청와대 특별감찰반 비위 사건 당시 조응천 의원이 조국 민정수석 책임론을 제기했을 땐 박광온ㆍ안민석 의원 등이 ‘조국 사퇴 반대’ 주장으로 맞불을 놨다. 소신 발언이나 소수 의견이 나오면 서둘러 ‘진압’하는 듯한 현상이 반복되는 것이다.
 
최근 김경수 지사 재판에 대해 당 지도부가 일사불란하게 비판하는 대응에 대해서는 다소 과하다는 당내 여론도 있다. 한 초선 의원은 “한국당이 우경화되면서 민주당은 ‘집토끼’ 잡기에 혈안이 되어가는 듯하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 강성 지지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사법부 비판 수위를 높이는 것은 결과적으로 2심에서 감경될 경우엔 역풍의 빌미가 된다. 그건 또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중진 의원은 “김 지사 판결이 다소 잘못됐다고 비판할 수는 있다. 그러나 논리적인 맹점만 지적하고 2심 재판부를 믿겠다고 해야 한다. ‘여론 재판’을 부추기면 안 된다”면서도 “이런 생각하는 의원이 적지 않은데 괜히 소신 발언했다가 ‘문파’들한테 문자 폭탄 받기 싫어서 안 나서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사법농단대위원장과 이재정 의원이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지사 판결문 분석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김경수 경남지사는 댓글 조작 공범 혐의로 지난달 30일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뉴스1]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사법농단대위원장과 이재정 의원이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지사 판결문 분석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김경수 경남지사는 댓글 조작 공범 혐의로 지난달 30일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뉴스1]

‘재판 개입’ 논란에 휩싸인 서영교 의원의 징계 문제에 당 지도부가 소극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내달 7일 열리는 국회 윤리특위에서 ‘5ㆍ18 폄훼’로 제소된 김진태ㆍ이종명ㆍ김순례 의원과 서 의원의 안건을 함께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 지도부는 5ㆍ18 폄훼가 훨씬 심각한 사안이기 때문에 별도로 다뤄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소속 윤리특위 관계자는 “국회의원들이 늘 비판받는 게 ‘제 식구 감싸기’인데 우리 당은 여기에서 탈피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5·18 망언 문제에만 머물러 있기엔 국회가 할 일이 너무 많은데 참 답답하다”고 말했다.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의원들도 ‘열린우리당 트라우마’를 의식하는 게 현실이어서 소신 발언이 공개적으로 표출될지는 미지수다. 수도권의 한 의원은 “총선이 다가오면서 의원들의 눈치 보기가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돌출 발언이나 행동을 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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