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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럽진 않아도 부끄럽지는 않게 살겠다"<어느 여검사의 초심>

중앙일보 2019.02.21 00:03 종합 24면 지면보기
스카이 캐슬 그 이후 … 검사 양성소의 하루
최근 종영한 드라마 '스카이캐슬'에는 서울 법대→사시 최연소 합격→차장검사→명문 사립대 로스쿨 교수로 상승한 세탁소집 아들이 나온다. 그는 자기 가정을 케네디 가문처럼 만들기를 소망한다. 두 자녀에게 계급 피라미드의 정점에 서야 한다며 의대·법대에 가라고 몰아붙인다. 좋은 대학에 간다고 경쟁이 종결되나? 아니다. 또 다른 캐슬이 기다리고 있다. 10개월의 교육을 마치고 다음달 초 전국 일선청에 배치되는 신임 검사 68명도 새 출발선에 섰다. 이중 누군가는 검찰총장이 되고 누군가는 평생 검사로 살것이다. 어떤 이는 괴물이 될지도 모른다. 사법 농단 사건과 법란(法亂), 적폐 수사와 검찰 개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여전히 검사들은 배출된다. 그 원점을 찾아가 검사의 초심을 들여다봤다.  
 
 지난 14일 오후 소병철 법무연수원 석좌교수가 경기도 법무연수원 용인분원에서 신임 검사들을 상대로 검사의 자세와 할 일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주제는 ‘검사는 무엇으로 살고 어디에 서 있는가’이다. [우상조 기자]

지난 14일 오후 소병철 법무연수원 석좌교수가 경기도 법무연수원 용인분원에서 신임 검사들을 상대로 검사의 자세와 할 일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주제는 ‘검사는 무엇으로 살고 어디에 서 있는가’이다. [우상조 기자]

 
 

 
지난 14일 오전 8시께 강남역 5번 출구 앞. 법무연수원 용인분원으로 가는 통근 버스에 몸을 실었다. 옆자리에 카이스트(전기전자과)를 거쳐 고려대 로스쿨을 나온 이영준(31·변호사시험 4회) 신임 검사가 앉았다. 울산이 고향인 그는 "사당역 근처에 살며 자취 생활 8년째로 접어든다"고 말했다. 

-스카이캐슬에 나오는 입시 코디의 도움을 받은 적 있나  
"자라면서 그런 코디 구경도 못했다. 지방은 교육열이 약해서..."
-어떤 검사가 되고 싶은가
"소소한 정의를 실현하고 싶다. 음주운전, 폭행 등 민생 사건의 피해자·가해자에게 적절한 처분을 내리는 것이다. 지난해 3개월간 검찰청 실무 수습을 하며 내 처분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음을 알고 책임감을 절감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교육이 뭐였느냐고 묻자 주저없이 "롤플레잉 조사"라고 말했다.  법무연수원 검사교수에 피의자 역할을 맡긴 뒤 신임 검사가 2시간 내에 신속·정확하게 조사하는 방법을 실습을 통해 익히는 것이다. 일단 6시간 동안 실제 사건 기록 내용을 파악하고 추궁할 핵심 포인트를 메모로 정리하는 게 중요하다. 원래 조사 역량 강화를 위해 도입했는데 신임 검사에게 피의자 역할도 맡겨보니 그 고충을 알게 돼 인권 감수성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됐단다.  
 
나는 직접 피의자 역할을 맡아 조사를 받아보기로 했다. 오후 2시, 임시로 꾸민 검사실. 경찰대를 나와 경찰로 근무하다 로스쿨에 간 강정은(36·여) 신임 검사가 컴퓨터 앞에 앉더니 나를 향한 피의자 신문에 돌입했다. 강 검사는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직업 등을 차례로 묻더니 피의자의 '진술거부권'과 '변호인참여조력권'을 고지했다. 대상 사건은 강남에서 10억원대를 투자해 포장마차를 공동 운영해온 부부간 다툼이었다. 원래 포차는 남편 명의였는데 20대 여성과 외도를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2011년 12월부터 3개월 사이 명의가 세 차례 바뀌었다. 아내 단독 명의→50대 50→아내와 남편 지분 80대 20의 차례로 변경됐다. 남편은 관련 서류에 자필 서명이 있는 50대 50 명의 변경을 제외한 나머지 두 차례 명의 변경은 아내가 임대차 계약서, 동업계약서 등을 위조한 것이라며 2014년 사문서 위조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검찰은 남편이 무고한 혐의가 짙다며 수사에 나섰다.    

법무연수원에 임시로 마련된 검사실에서 조강수 논설위원이 롤플레잉 체험을 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법무연수원에 임시로 마련된 검사실에서 조강수 논설위원이 롤플레잉 체험을 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피의자 조00씨. 80대 20 명의 변경 때 피의자가 다른 용도로 발급받은 인감증명서를 아내가 몰래 가져가 사용했다고 주장했지요. 동사무소에 확인해 보니 이틀 전 직접 인감증명서를 뗀 기록이 있어요. 어찌된 거죠?  
"그럴 리가 없는데요."
-피의자가 아내 지분이 80%로 돼 있는 걸 알고 있었다는 대화 녹취록은 물론, 심지어 지분 90%를 아내에게 준다고 말한 녹취록도 우리가 갖고 있습니다.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완강히 부인하자 강 검사가 인감증명서 발급서류와 녹취록을 슬그머니 내밀었다. 숨이 턱~ 막혔다. 이때 양복 안 주머니에 둔 휴대폰이 울렸다. 받으려 하자 "조사 끝나면 시간 줄 테니 끄세요"라는 낮은 목소리가 귓전을 찔렀다. 얼른 집어넣고 무고를 인정한다고 자복하고 나서야 조사가 끝났다. 실제로 1시간여동안 추궁을 당해보니 '극한 조사'였다. 예리한 다그침에 내가 취재 기자인지, 아내 무고범인지 헛갈렸다. 잠시 후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강 검사는 "1주일에 한건씩, 그간 9~10건의 롤플레잉 사건 조사를 실습했다"고 말했다. 이어 "요즘은 자랑스럽지는 않아도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게 참 어려운데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검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박지영 검사교수(부장검사)는 "어제 신임 검사 2명에게 피의자 조사를 4시간 받았는데 끝나고 나니 속이 메슥메슥했다"며 "검사 책상에 있는 컴퓨터 모니터의 앞과 뒤는 천양지차로, 피의자가 돼 모니터 뒷면을 절박하게 바라보는 심정을 경험해 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조은석 법무연수원장은 "사건이 오래 지속되면 관련자들이 겪는 고통이 심각하다"며 "진정한 인권 보호는 검찰이 사건 관계자를 빨리 소환해 정확하게 조사하고 신속하게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것인데 지난해 롤플레잉 조사를 처음 도입했더니 성과가 좋아 최근 검찰 수사관 교육에도 포함시켰다"고 소개했다.  

법무연수원에서 교육 받고 있는 신임 검사들. 왼쪽부터 문승철, 김시현, 정영지, 최건호 검사. [우상조 기자]

법무연수원에서 교육 받고 있는 신임 검사들. 왼쪽부터 문승철, 김시현, 정영지, 최건호 검사. [우상조 기자]

 
 
 
낮 12시. 출신 고교·대학·로스쿨이 각기 다른 4명의 신임 검사를 만났다. 변시 4회 문승철(31·부산대 로스쿨), 변시 7회 김시현(34·여·서강대 로스쿨), 정영지(30·여·고려대 로스쿨), 최건호(30·서울대 로스쿨)검사였다. 종합일간지 기자를 지낸 김 검사는 "일반인의 법 감정과 법조계의 기준 사이에 괴리감이 큰 것 같다"고 우려했다. 미인대회 입상자(미스 유니버시티 인기상) 인 정 검사는 선교사인 친척을 따라 필리핀으로 유학가는 바람에 검정고시로 로스쿨에 진학했다고 한다. 지난해 11월 안양지청 실무 수습 때 보이스피싱용 대포 통장 유통 조직원 25명을 검거해 이중 22명을 기소하고 3명을 지명수배하는 성과를 올렸다.  

-어떻게 수사했나
"애초엔 대포 통장 하나를 개설한 94년생 피의자를 검거했는데 집요하게 추적, 주거지 압수수색에서 통장 10개를 발견했다. 또 휴대폰 포렌식 등을 통해 유령회사를 40여개 만든 단서도 확보,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사법처리했다."  
-실무 수습 기간중 기억나는 일은  
"일용직 청소부 아주머니가 대포 통장 대여 혐의로 송치된 사건을 검토한 후 선배 검사를 설득해 기소유예 처분했다. 엄벌이 원칙이었지만 딸을 혼자 키우는 미혼모에 수술비 마련을 위해 그랬던 점을 참작했다. '레미제라블'의 자베르 형사처럼 인간적으로 고민한 순간이었다. 아주머니로부터 감사 편지를 받고 검사의 권한과 책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신임 검사들은 이날 이찬희 신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소병철 법무연수원 석좌교수의 강의도 들었다. 이 회장은 "검사에게 중요한 건 수사 능력보다 인권의 수호자라는 원래의 가치"라면서 "범죄와의 전쟁을 치르면서 검사가 마약·조폭 잡범들까지 수사하며 경찰화됐으나 이젠 검사의 존재 이유와 역할을 회복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소 석좌교수는 '검사로서 과연 어디에 서 있는가'라는 화두를 던졌다. 그는 "판·검사는 중립성이 생명이며 항상 어떤 상황에서도 중립을 지켜야 하고 적어도 중립적으로 보여져야 한다"며 "그런 점에서 나하고 같은 편이냐 아니냐가 가장 중요한 잣대인 정치의 세계와는 달라야 한다"고 주문했다.  
취재를 마친 뒤 분당선을 타고 귀경하던 중 박지영 검사교수가 들려준 남편(고범석 전 사법연수원 교수)의 퇴임식 장면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지난 12일 퇴임식에서 남편이 초임 판사 때 퇴임 부장판사가 선물한 '작고 낡은 자'를 부임지마다 갖고 다닌 사연을 얘기하는 데 눈물이 났다. 언제 어디서나 똑같은 눈금과 똑같은 기준을 갖고 있는 자를 보면서 스스로를 담금질했다는 대목에서다. 자는 변하지 않는 원칙과 기준인데 요즘 법조인으로서 더욱 그 의미를 곱씹게 된다."  
 
내가 만난 검사들의 초심은 맑아 보였다. 문제는 사욕과, 불순한 환경을 만나 오염되고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부디 '검사가 된 것 자체가 성공'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소소한 정의와 원칙을 지켜줬으면 한다. '검사캐슬'까지 시청해야 한다면 서글플 것 같아서다.
 
 

조강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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