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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의 퍼스펙티브] 국회의원 미워도 국회는 살려야 한다

중앙일보 2019.02.21 00:02 종합 26면 지면보기
쏟아지는 의원들 법안 발의 내막
13대 국회는 특별했다. 1988년 처음으로 여소야대(與小野大)를 만들었다. 6월 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이뤘다. 당시 국회를 경험한 사람들은 대화와 타협이 가능했던 국회, 가장 많은 일을 해낸 생산적 국회였다고 인정한다. 광주특위, 5공청산특위, 통일특위….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국회에 불려 나오고, 백담사로 유배됐다. 국정감사도 처음 도입됐다.

법안 제출 폭증해도 절반은 폐기
비서진은 30년 만에 세 배로 늘어
의원 특권 늘어도 국회는 힘 빠져

극단주의·포퓰리즘, 정당 흔들고
국민의 정치 불신만 더욱 심해져
자유민주주의 살리기 힘 실어야

 
국회 노동위원회가 처음 생기고, 평민당의 이해찬·이상수 의원, 민주당의 노무현·이인제 의원 등 눈에 띄는 초선의원들이 배치됐다. 노무현·이해찬·이상수 의원은 당이 다른데도 연대했다. 국정감사는 이 세 의원이 주도했다. 그래서 필자가 ‘노동위 3총사’란 이름을 붙여줬다.
 
이해찬 의원실 유시민 보좌관은 그때 ‘할 일은 많은데, 손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앓는 소리를 했다. 세 의원실 비서진을 모두 모아 조를 짰다. 사실상 공유다. 유시민·이광재·안희정 등이 그들이다.  재야 인력을 동원했다. 대학생 자원봉사자도 모았다. 이해찬 의원은 의원부터 비서까지 월급을 모두 한데 모은 뒤 다시 나누어줬다. 지방 노동청에 국정감사를 가면 며칠 전 현장에 보좌진이 내려갔다. 노동자들과 숙식을 같이 하며 조사했다. 수십 년 만에 뒤진 적폐들을 세 의원에게 나누어줬다.
 
#30년 만에 3배 늘어난 보좌인력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때에 비하면 보좌인력이 무척 많이 늘었다. 4급 보좌관이 두 명, 5급 비서관이 두 명, 6·7·8·9급 비서가 각 한 명씩 네 명, 그리고 인턴이 한 명 있다. 모두 9명이다. 13대 국회 첫해(1988년)엔 비서관과 여비서, 운전기사까지 모두 세 명이었다. 정책 보좌비서는 한 명이란 소리다. 그 해 9월 정기국회가 되어서야 4급 보좌관이 한 명 늘었다. 그러니 현장을 뛰어다니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보좌인력은 국회의 위상을 말해주는 바로미터다. 국회가 비효율의 상징처럼 낙인 찍혔던 유신 시절에는 비서를 없앴다. 유신이 출범한 1973년 2월 국회의원의 ‘별정직 공무원인 비서관’을 없애버렸다. 74년이 되어서야 서기관(3갑)급 비서관 한 명을 허용했다. 오죽하면 국회의원의 3분의 1을 대통령이 지명하게 했을까. ‘10월 유신’ 국민투표를 하면서 이런 제도를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선전했다.
 
5공화국이 출범한 뒤 81년 비서와 보조원, 운전원 3명으로 늘린 이후 계속 늘려왔다. 사정은 다르지만, 요즘 정치 혐오가 점점 팽배한 것을 보면 그때가 생각난다. 이러다 자유민주주의가 질식하지나 않을런지.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 시대는 국회가 질식한 시절이다. 국회는 민주주의를 한다는 명분을 위한 장식품에 불과했다. 뒤이은 5공화국 정부는 국회를 직접 구성했다. 1중대, 2중대, 3중대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여기서 빠져나온 것이 87년 체제다. 그 직후 구성된 13대 국회다.
 
열심히 일하는 의원에게는 지금도 모자랄 수 있다. 일을 안 하면 넘친다. 보좌인력이 3명이던 시절에도 친인척 이름만 올려놓고 월급을 챙기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2017년 ‘배우자 또는 4촌 이내의 혈족·인척’을 보좌직원으로 임용할 수 없도록 법에 명시했다. 지역구 관리에 보좌인력을 쓰는 것은 보편적인 경우다. 민심을 듣는다는 핑계다. 국회의원은 살찌는데, 국회의 힘은 빠질 수 있다.
 
#발의만 하고 팽개치는 법안들
 
법안 처리를 보면 더욱 그렇다. 1월 마지막 한 주 접수된 법안이 150건이다. 정부 제출은 1건이고, 나머지는 모두 국회의원들이 내놓은 것이다. 국회의원 한 명이 보름에 법안 하나를 냈다는 말이다. 의안을 접수하려면 최소 의원 10명의 서명을 받아야 한다. 그렇게 따지면 1인당 최소한 한 달에 20건의 법안을 공동발의한 셈이다.
 
지난해 마지막 한 주 접수된 법안이 211건. 20대 국회가 시작된 2016년 5월 30일부터 지난 주말까지 1만8079건의 법률안이 접수됐다. 19대 국회 전체 접수 건수인 1만7822건을 이미 넘어섰다. 이 가운데 정부가 제출한 것은 881건(4.9%)에 불과하다. 아직 처리되지 않고 쌓여 있는 법률안만 1만2509건(69.2%). 접수한 뒤 소위에서조차 한 번도 논의해보지 못한 법률안이 대부분이다.
 
정작 법안을 제출한 의원도 일단 내놓기만 하고 챙기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19대 국회에 접수된 1만7822건 가운데 폐기된 것이 1만190건(57.2%)이다. 대부분 국회 임기가 만료되면서 자동폐기됐다. 13대 국회에서는 의원들이 제출한 법안이 모두 570건이었다. 여소야대라 법 개정이 활발했다. 그런데도 그 정도다. 고비를 넘긴 14대 국회 때는 다시 줄어 모두 합쳐 321건이다. 요즘 보름 동안 접수한 법안 수와 비슷하다.
 
정세균 전 국회의장은 지난달 대화문화아카데미 토론회에서 “제가 15대 국회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입법 발의하는 의원은 아주 소수였다”고 기억했다. 그는 갑자기 법안 제출 건수가 늘어난 이유를 의원 평가에서 찾았다. 그는 “15대 국회부터 시민단체·정당·국회사무처가 의원 평가를 하면서 제출 법안이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놀고 있던 국회의원들이 갑자기 열심히 일하게 돼 그런 것만은 아니다.
 
#다른 의원 법안 단어 하나 바꿔 다시 제출
 
정 전 의장은 몇 가지 잘못된 관행을 지적했다. 하나는 베끼기다. 법안 제출 건수로 양적 평가를 하다 보니 의원들이 무조건 제출 법안 수 늘리기 경쟁을 벌였다는 것이다. 정 전 의장은 “토씨 하나 바꿔도 1건, 완전히 새로운 법안 하나를 만들어 제정안을 내도 1건이었다”면서 “의원들이 염치도 없이 경쟁적으로 같은 법안을 내는 양상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최근 국회에 제출된 법안을 봐도 단어 하나를 고치는 개정법안들이 무더기로 제출된다. ‘각별’을 ‘각자에게’로 바꾸는 법안, ‘각기’를 ‘각각’으로 바꾸는 법안, ‘가무’를 ‘노래·춤’으로 바꾸는 법안…. 표현을 순우리말로 고치는 노력을 깎아내리려는 건 아니다. 다만 그것이 법률안 제출 건수를 늘리기 위한 방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유인태 국회 사무총장은 심지어 “다른 의원이 내놓은 법안에서 자구 몇 개만 바꿔 다시 제출하는 뻔뻔한 의원도 있다”고 말했다.
 
또 ‘청부 입법’이 있다. 정부에서 입법하려면 법안을 만든 뒤 차관회의를 하고, 입법안 공표, 여론 수렴, 법제처 심의 등을 거쳐 짧아야 한 달 반은 걸린다. 부처 간 이견으로 제동이 걸리는 일도 많다. 의원에게 맡기면 손쉽게 바로 제출할 수 있다. 의원은 실적을 올린다. 해당 의원은 로비스트 역할까지 맡게 된다. 정 전 의장은 “국회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을 하면서 그런 걸 하지 말라고 강조했는데, 그런 말이 지금은 촌스럽다고 느껴질 만큼 청부 입법이 만연하다”고 밝혔다.
 
#정당의 정책 조정 역할 무너져
 
더욱 심각한 문제는 정당의 붕괴다. 서복경 서강대 교수는 지난달 대화문화아카데미에서 발표한 논문에서 정당의 정책 조정 기능이 무너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4년 12월 29일 국회를 통과한 ‘학교안전사고 예방 및 보상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만들기 위해 의원들이 무려 31건의 개정안을 따로 내놨다. 세월호 사건 이후로 민주당 의원들이 제출한 비슷한 법안만 10건이었다. 이 법률보다 조금 먼저 통과한 ‘재난 및 안전 관리 기본법 일부 개정안’도 29건의 개정안이 따로따로 제출된 것을 대안 반영 폐기 방식으로 정리하고 입법했다.
 
‘김용균 법’에서도 같은 현상이 벌어졌다. 의원들이 제각각 무려 27건의 법안을 내놓고, 위원회에서 대안을 만들어 처리했다. 이 가운데 민주당 의원들이 제출한 법안만 18건이다. 서 교수는 “같은 정당 소속 의원들이 대동소이한 개정안을 같은 시기에 쏟아내는 행태만 조정해도 국회는 더 중요한 의안을 심의하는데,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권은 줄이되 국회는 살려야
 
입법뿐 아니다. 대의제도 자체가 흔들린다. 이념이나 정책이 아니라 대통령이 정당의 중심이다. 대통령이 당선되면 정당도 새로 생긴다. 정당의 정책기구가 아니라 선거 캠프가 정책을 결정한다. 정당의 승리가 아니라 사조직 캠프의 승리다. 행정부와 의회가 서로 견제한다는 삼권분립은 교과서에나 나오는 말이다. 국회 내 집권당은 대통령 호위무사다. 공천도 정당이 아니라 계파 중심으로 다툰다. 이념이나 여야를 가리지 않고 벌어지는 현상이다.
 
당론은 희미하다. 소셜미디어의 ‘댓글’, 거리의 군중이 정당을 끌고 다닌다. ‘문빠’와 ‘태극기 부대’가 정당을 쥐고 흔든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뒤 국정원 댓글 사건이 터졌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 뒤 ‘드루킹 사건’으로 발전했다. 극단주의와 소셜미디어와 포퓰리즘이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은 전 세계적 현상이다. 선진국도, 개도국도 모두 몸살을 앓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트위터가 기존 언론이 만든 여론 구도를 뒤집어엎었다. 직접민주주의의 기회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감성의 지배는 위험하다.
 
한국에서 국회는 가장 불신받는다. 의원 수를 절반으로 줄이라느니, 아예 해산하라는 막말도 나온다. 이래서는 어떤 개혁도 불가능하다. 국회의원이 아무리 미워도 국회를 죽이면 자유민주주의가 신음하게 된다. 의원의 특권을 줄이고, 일하도록 채찍질할 여지는 많다. 그렇다고 국회를 혐오하며 한 사람에게 권력을 몰아줘서는 안 된다. 과거 너무나 오랜 세월 우리가 눈물로 경험한 일이다.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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