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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김영희 대기자의 ‘한반도 워치’ | 2차 북·미 정상회담 특별기획] 한반도 평화 오디세이 대장정의 끝

중앙일보 2019.02.20 18:57
향후 100년의 남·북·미 관계에 지각변동 일어날 희망적 조짐
트럼프의 불가예측성과 대담성, 전통적인 외교에 대한 반감이 변수
 
2월 27~28일 베트남에서는 제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예정이다. / 사진:연합뉴스

2월 27~28일 베트남에서는 제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예정이다. / 사진:연합뉴스

핵무기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북한이 강력한 열증 폭탄을 포함한 실전단계의 핵탄두와 미국 본토 동부지역까지 사정권에 둔 핵탄두 운반수단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와 화성-14를 보유하지 않았다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8개월의 짧은 기간에 지구상의 최빈국 중 하나인 북한 지도자 김정은을 두 번이나 만나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2017년 11월 북한이 화성-15 발사에 성공하기 전에는 트럼프는 김정은을 ‘꼬마 로켓맨’이라고 조롱하고 유엔 무대에서는 공개적으로 북한을 위협했다. 북한이 핵전쟁을 도발해도 전장은 한국과 일본이고 죽는 것도 한국인과 일본인이라고 여유를 부렸다.
 
화성-15가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2018년 2월 평창 겨울올림픽 때는 북한에서 김영남·김여정·김영철 같은 실세 거물들이 대거 개·폐회식에 참석하는 줄 알면서도 보수파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대통령 딸이자 백악관의 실세인 이방카 트럼프가 평창에 얼굴을 내밀었다. 평창에서 구르기 시작한 새로운 역사의 수레바퀴는 한국 특사단의 평양 파견으로 이어졌다. 이후 김정은은 트럼프에 방북 초청을 보냈고 트럼프가 이를 수락한 결과, 6월 12일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이뤄졌다. 올해 2월 27~28일에는 하노이 북·미 2차 정상회담까지 앞두고 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전임자들이 실패한 북한 비핵화를 성사시키는 역사적인 업적을 쌓고 부산물로 노벨 평화상을 타기 위해 북한과 협상에 열을 올린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두 번의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고위급과 실무급의 입장 조율이 일진일퇴를 거듭하면서 자주 교착상태에 빠진 걸 보면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북한 핵무기가 아니었으면 트럼프는 벌써 북한 피로증에 빠졌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트럼프가 선택했을 최우선의 옵션은 북한 핵·미사일 기지와 시설에 대한 선제공격이었을 것이다.
 
북한 핵의 위력, 위협이 얼마나 심각하기에 급하고 거친 성격의 트럼프가 인내를 갖고 김정은과의 협상에 매달리는 것인가. 트럼프와 미국이 북한 핵에 느끼는 실존적 위기를 정확히 평가하지 않고는 핵협상의 본질을 제대로 판단할 수가 없다. 여기 좋은 길잡이가 돼 주는 책 한 권이 있다. 미국의 군축·비확산 전문가 제프리 루이스가 2018년에 쓴 가상 핵전쟁 소설이다. 소설 제목은 [북한에 의한 미국 핵공격에 관한 2020 위원회 보고서]다. 2020년 핵전쟁을 가정하고 보고서 형식으로 엮어진 것이다.
 
핵협상의 본질, 북한 핵이 주는 위협감과 연결
미국의 제프리 루이스 박사가 펴낸 북·미 핵전쟁 가상 소설 [북한에 의한 미국 핵공격에 관한 2020 위원회 보고서].

미국의 제프리 루이스 박사가 펴낸 북·미 핵전쟁 가상 소설 [북한에 의한 미국 핵공격에 관한 2020 위원회 보고서].

줄거리는 이렇다. 2018년까지 활발하던 북·미 핵협상이 2019년 후반에 완전히 결렬돼 미국의 대북 정책은 최대한 군사적 압박으로 돌아갔다. 미국은 휴전선 턱밑까지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전략자산 B-1B·B-2·B-52를 계속 전개한다. 한·미 연합 훈련 독수리(foal eagle)와 키리졸브(key resolve)의 양과 질도 최대한으로 강화된다.
 
이렇게 한반도의 긴장이 최고조에 이른 2020년 3월 21일, 부산을 떠나 몽골의 울란바토르로 비행하던 에어부산 여객기 BX 411이 서해상에서 북한 지대공 미사일을 맞고 바다로 추락해 탑승자 228명 전원이 사망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228명 중 102명이 수학여행 가는 중학생들이었다. 세월호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사고는 여객기 전기 시스템 고장으로 시작됐다. BX 411이 고도 34000ft에서 수평 비행을 할 때 쾅 소리와 함께 여객기는 암흑세계가 됐다. 승무원들이 백업 시스템으로 전기 시스템을 되살리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6분. 그 6분 사이에 비행기는 50마일을 더 날았다. 그 50마일로 에어부산 여객기가 북한 영공을 침범했는지는 2020위원회도 명확히 밝히지 못했다. 그러나 휴전선에 접근하는 여객기는 사리원의 SA-5 지대공 미사일 부대의 톨킹(tall king) 레이더에 포착됐다.
 
여객기의 추적은 영공을 침공하면 격추하라는 지시와 함께 미군이 KN-06라고 부르는 옹진의 번개-5 대공 미사일 기지로 이관됐다. 사리원에서 포착된 에어부산 411은 톨킹 레이더 상에 하나의 점으로 나타난다. 옹진 번개-5 지대공미사일 기지의 레이더는 사리원의 그것보다 성능이 크게 떨어진다. 이런 환경에서 결정적인 작용을 한 것이 북한의 오판이었다. 북한은 에어부산 여객기를 미군의 전략폭격기로 오인하고 미국이 북한을 본격적으로 침공하려는 것이라고 오판했다.
 
박근혜의 탄핵 희비극(tragicomedy)이 세월호에서 시작되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문재인 대통령은 전략사령관에게 보복공격을 지시했다. 문재인은 엄격히 제한 공격을 지시했다. 그러나 북한은 이번에도 이 공격이 한·미 연합군에 의한 북한 침공 작전의 시작이라고 오판했다. 김정은은 통신 시스템의 마비는 미군에 의한 사이버 공격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협상 결렬에 의한 대화 부재는 이런 무서운 겹치기 오판을 가져온다. 3월 22일 02:00시, 김정은은 전략부대에 핵미사일 공격을 명령했다. 30분의 짧은 시간에 54발의 핵탄두가 한국과 일본의 도시 상공에 작열했다.
 
다른 8발이 오키나와와 괌 미군 기지를 공격했다. 성주에 배치된 사드는 전방인 북쪽밖에 못 본다. 북한이 날린 드론들은 동해로 우회해 남한의 도시와 주요 시설들을 파괴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안보 참모들은 청와대 상황실서 긴급회의를 하다 종합청사로 이동 중에 서울 상공 850m에서 폭발한 20t급 핵폭탄에 전원 사망했다. 같은 날 도쿄의 방위성 상공에서는 30㏏급 핵폭탄이 터졌다. 핵폭탄에서 튀어나온 전자 펄스는 도쿄의 모든 교통체계와 전자·통신을 마비시켰다. 도쿄 전역으로 퍼진 불은 도심지로 공기를 끌어들여 시속 700마일의 태풍급 바람(firestorm)을 일으켰다. 공교롭게 3월은 도쿄에 바람이 가장 강하게 부는 시기다.
 
“트럼프와 미국이 북한 핵에 느끼는 실존적 위기를 정확히 평가하지 않고는 핵협상의 본질을 제대로 판단할 수가 없다.”
 
서울과 도쿄 외에도 평택·대구·요코하마가 핵공격을 당했다. 3월 22일 하루 사망자만 140만명, 부상자 500만 명 이상이다. 죽고 다친 사람 600만 명 중 절반은 주한미군과 가족 3만 명이었다. 북한 핵전력은 첫날의 공격으로 대부분 소진되었지만 12개 정도의 고성능 열핵폭탄이 남아있는 것으로 추산됐다.
 
북·미 간 핵전쟁 발생하면 이틀 만에 전세계 초토화
제 1차 북·미 정상회담은 북미 수뇌들이 처음으로 만난다는 상징성은 갖고 있었지만 구체적인 합의를 도출하진 못했다.

제 1차 북·미 정상회담은 북미 수뇌들이 처음으로 만난다는 상징성은 갖고 있었지만 구체적인 합의를 도출하진 못했다.

미군도 21일부터 함정과 전폭격기에서 순항미사일로 북한의 핵·미사일 기지를 공격했다. 미군은 이른바 “발사의 왼편(left of launch)”에 초점을 맞췄다. 발사 준비단계의 북한 미사일을 공격, 파괴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북한 미사일은 터널에 숨어있다. 발사 때 위치를 들키지만 15분 이내에 다른 터널이나 지하로 숨어버려 미군의 공격은 예상한 전과를 내지 못했다. 김정은은 지하궁전이라고 불리는 묘향산 지하 벙커에 숨었다. 특수부대의 벙커 공격으로 전기가 끊겨 공기가 점점 희박해지고, 음식은 부패하고 밤의 기온은 영하로 떨어졌다. 그의 지하궁전이 지하묘지로 변하고 있는데도 김정은은 외교적 수단으로 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환상을 버리지 않았다.
 
3월 22일 북한 로켓사령부는 김정은과의 통신이 두절되기 전에 받은 지시대로 핵탄두를 탑재한 ICBM 화성-15와 화성-14 14발을 발사했다. 공격 대상은 미국에 위치한 몇몇 공군기지들, 하와이 진주만, 워싱턴 DC, 트럼프의 별장이 있는 플로리다의 마라라고, 그리고 뉴욕 맨해튼이었다. 뉴욕과 워싱턴을 타깃으로 한 핵폭탄은 강력한 열증폭탄이었다. 미국의 위성들은 3초 안에 이 14개의 ICBM을 발사단계에서 포착해 북미방공사령부(NORAD)와 국방부 작전센터, 요코스카의 7함대사령부에 이미지를 전송했다.
 
알라스카 그릴리 기지에 배치된 40기의 GBI(지상배치 요격미사일)는 음속의 20배로 지구궤도로 진입하는 북한 미사일들을 요격하는 데 실패했다. 장거리 미사일은 엔진이 연소 중일 때는 요격이 불가능하다. 요격할 기회의 창은 핵탄두가 엔진에서 분리돼 초저온(freezing cold)의 외계를 관성비행(coasting)하는 짧은 시간의 중간단계(midcourse)다.
 
플로리다의 마라라고 인근 주피터 상공에 200㏏의 열핵 폭탄이 터졌다. 트럼프가 핵폭탄이 폭발하면서 내뿜는 빛에 실명하지 않고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 원도 무사한 것은 천운이었다. 6시간 사이에 북한이 발사한 핵미사일 13개 중 7개가 미국 본토 상공에서 폭발했다. 백악관을 노린 200㏏의 핵탄두는 표적을 많이 빗나가 북부 버지니아 상공 1830m에서 폭발했다. 샌디에이고의 표적 2개도 벗어났다. 그러나 뉴욕 상공 1830m에서 작열한 200㏏의 핵탄두는 한 순간에 뉴욕을 폐허로 만들었다. 트럼프 타워가 무너지면서 퍼스트레이디 멜라니아가 이날의 가장 유명한 핵 피폭의 피해자가 됐다. 퍼스트 패밀리의 다른 사람들은 그 순간 뉴욕에 없었다.
 
48시간 안에 희생자 수는 한국과 일본서 140만 사망, 500만 이상 중상자를 냈고, 미국에서도 140만 사망, 280만 중상을 기록했다. 미국 언론들은 이날을 미국 최악의 날이라고 불렀다. 한·미 연합군은 육해공 3차원의 작전으로 북한 전역을 초토화했다. 김정은은 전술적 승리를 자축할 시간도 없이 자신의 죽음과 할아버지 김일성이 세우고 아버지 김정일이 키워놓은 세습 김씨왕조 체제의 붕괴라는 전략적 패배를 맞았다. 김정은은 한·미군 특수부대원들이 지하궁전 포위를 좁혀들어 오는 것을 알아채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가족들은 최룡해를 따라 삼지연으로 피신한 뒤였다.
 
이렇게 북한은 지도상에서 사라지고 남북한은 남한의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 아래 흡수통일 됐다. 그러나 세계 11위의 한국 경제와 3위의 일본 경제는 복구에 10년 이상의 시간과 30조~40조 달러의 비용이 드는 피해를 입었다. 미국의 경우는 맨해튼 복구에만 10년간 12조~20조 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추산됐다. 이것이 우리가 바란 통일인가.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면 이런 통일을 선택했을 것인가. 대답은 ‘NO!’일 것이고 그래야 한다.
 
비핵화 협상, 상응조치 조율로 꾸려질 ‘두 번째 만남’
베트남은 북한에게 가장 적합한 개혁개방 모델로 여겨진다. 생전의 북한 김일성 주석이 베트남 호찌민 전 주석을 만나는 모습.

베트남은 북한에게 가장 적합한 개혁개방 모델로 여겨진다. 생전의 북한 김일성 주석이 베트남 호찌민 전 주석을 만나는 모습.

북한이 실전 배치된 핵미사일을 보유하는 한, 오판이나 우발에 의한 국지전이나 전면전의 위험은 유령처럼 한반도와 동북아를 배회한다. 무기체계의 첨단화로 국지전과 전면전의 경계선은 겹쳐져 있다. 남북한과 일본같이 전략적 종심(縱深)이 짧은 지리적 조건이 제한전쟁을 전면전으로 확대할 가능성을 더욱 높인다. 이렇게 트럼프와 김정은은 실패할 수 없는, 실패하면 사실상 공멸하는 조건 아래서 27~28일 하노이에서 8개월 만에 다시 만난다.
 
하노이 회담은 싱가포르 회담과 질적으로 다르다. 싱가포르는 70년 적대관계의 북·미 수뇌들이 처음으로 만난다는 상징성만으로도 세계사의 큰 분수령이었다. 김정은과 트럼프는 거기서 핵 없는 한반도 평화를 선언했다.
 
그러나 싱가포르 선언에는 북한 비핵화를 언제까지, 어떤 방식으로 한다가 빠졌다. 북한의 비핵화에 미국이 북한에 어떤 보상을 하는지도 빠졌다. 정상끼리의 합의가 고위급에서 실무급의 구체적인 비핵화와 상응조치 조율로 내려오면서 협상은 번번이 난관에 부딪혔다. 그때마다 문재인 대통령이 다시 브로커로 나서 양쪽의 등을 떠밀어 죽어가는 대화의 불씨를 살려냈다. 
 
하노이는 김정은과 트럼프가 서로가 원하는 것을 주고받는 구체적인 거래의 장마당이다. 미국은 싱가포르 회담 이후 북한에 비핵화의 포괄적인 시간표를 내라고 요구했다. 북한이 개발해 은닉하고 있는 20~30개의 핵탄두와 ICBM을 포함한 단·중·장거리 미사일의 목록을 제시하고 그것들을 국제적인 검증을 통해 폐기할 구체적인 계획을 요구한 것이다. 그러다 미국이 생각을 고쳐먹었다. 여러 비핵화 과정을 한꺼번에 시행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야 말았다.
 
영변 핵시설 하나 폐기 하는데도 완전 폐기까지는 10년 정도, 핵심 부분 폐기에만 2~3년 걸린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반영된 결과다. 그래서 미국은 돌고 돌아서 단계적 핵·미사일 폐기로 물러섰다. 트럼프의 이런 자세조정으로 하노이 정상회담의 전망이 한층 밝아졌다. 트럼프가 북·미 2차 정상회담은 열리지 않는다, 북한은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초’를 치던 비핵화 회의론자들, 트럼프 반대론자들에게 시원한 펀치를 먹인 꼴이다. 회의 결과를 좌우하는 요소 중 중요한 것의 하나가 트럼프의 불가예측성과 대담성, 그리고 전통적인 외교에 대한 반감이다.
 
2차 북·미 회담은 곧 ‘역사적 평화 빅딜’의 장
김정은의 서울 답방은 한반도 평화 오디세이에 한걸음 더 가까워지게 만든다. / 사진:연합뉴스

김정은의 서울 답방은 한반도 평화 오디세이에 한걸음 더 가까워지게 만든다. / 사진:연합뉴스

거기에 김정은의 독단적 스타일, 숨 막히는 경제제재를 벗어나 북한 경제를 일으키고 싶은 초조감, 최고 수준의 북·미 관계 개선으로 트럼프가 약속하는 경제 강국이 되고 싶은 야망이 접목돼 하노이에서는 향후 70년 또는 100년의 북·미 관계, 남북 관계, 동북아시아 정치의 기초가 될 지각변동적인 화학작용이 일어날 희망적인 조짐이 보인다.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올릴 의제는 다음과 같을 것으로 예상된다. 종전선언이나 그것을 건너 뛴 평화협정, 북·미 연락사무소 개소를 시작으로 하는 관계 정상화가 대표적이다. 미국의 전략자산을 필두로 한 한·미 연합군사연습의 중단,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대한 상응조치로서의 대북 경제제재 완화,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미군 유해의 발굴·송환 등도 언급됐다. 비핵화 부분에서는 동창리 미사일 발사·시험장의 사후 폐쇄 검증, 미국이 소재를 파악하고 있는 핵 시설과 미사일 기지의 목록 제시 등 전체 비핵화 프로세스의 구체적인 시간표를 요구할 수 있다.
 
미국은 북한 비핵화의 수준에 맞춰 한·미 연합훈련 중단, 대북 경제재재의 부분적 해제 상응조치 또는 대규모 경제 지원 등을 협상 테이블에 올릴 수 있다. 남·북·미 종전선언 또는 남·북·미·중 평화협정 체결 등 여러 협상카드가 제시된다. 하지만 미국은 ‘영변 플러스알파’를 기대한다. 그것은 영변 넘어(beyond Y)를 의미한다. 그것은 다시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의미한다.
 
트럼프는 북한의 최종적이고 충분히 검증된 비핵화(FFVD)를 유도하기 위해 북한을 경제 강국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말한다.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평양의 여명거리에 스타벅스나 맥도널드 매장 하나만 들어서도, 트럼프가 대동강변이나 원산 리조트에 트럼프 타워를 세우겠다는 계획 하나만 발표해도 외국 기업들의 북한 투자러시가 일어날 것이다. 그만큼 안보 불안이 경감되기 때문이다.
 
“한반도 평화는 한국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된 남·북·미 3각 구도에서만 실현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김정은이 서울을 답방하게 된다면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의 새로운 마침표가 하나 찍히는 것이다.”
 
김정은과 트럼프는 이런 제안과 각자의 요구조건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까지 짝을 맞춰나가는 방식으로 협상을 할 것이다. 하노이서 진전을 보지 못하면 그런 기회가 언제 올지 모른다. 트럼프는 하노이 성과를 2020년 대선의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 그래서 하노이 협상은 세기의 빅딜이 될 수밖에 없다. 나는 많은 회의론자들과는 달리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과 트럼프가 한반도 평화정착뿐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합의가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기대한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베트남에서 열리는 것은 북한에 각별한 의미가 있다. 베트남은 미국 역사상 최초의 패전을 안긴 나라다. 1995년 미국과 베트남은 국교를 정상화했다. 그로부터 베트남은 공산당 일당 독재 아래 경제를 개혁개방 하는 ‘도이모이’ 정책으로 연 평균 8% 경제 성장률을 유지하고 있다. 북한에게 가장 적합한 개혁개방 모델이다. 김정은이 정상회담 전후에 베트남을 국빈 방문하는 이유도 바로 이 성공적인 개혁개방의 현장을 직접 학습시찰하기 위함이다.
 
역동적 국제정치 속 남북한이 이뤄낼 평화 오디세이
하노이 정상회담으로 한반도 비핵·평화 프로세스가 결정적인 탄력을 받으면 다음 순서는 3~4월 김정은의 서울 답방이다. 남북 관계 개선과 비핵화를 통한 북·미 관계의 개선은 어느 한 쪽이 너무 앞서도 안 되고 너무 뒤쳐져서도 안 된다. 남북 관계 진전이 반걸음 정도 앞서 가면서 북·미 관계를 견인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그러자면 국내 보수진영의 시각조정이 중요하다. 자유한국당의 전당대회 날짜가 북·미 2차 정상회담 날짜와 겹치는 것은 공교로운 일이다. 컨벤션 효과가 상당 부분 날아간다. 자유한국당의 불만을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북한과 미국이 복잡한 고차방정식을 풀어 결정한 회담 날짜를 문재인·김정은·트럼프가 자유한국당의 전당대회를 겨냥해 의도적으로 일으킨 북풍으로 해석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2000년 1차 남북 정상회담 때도 4월 15일의 총선을 사흘 앞둔 4월 12일 남북 정상회담 발표라는 폭탄이 떨어져 북풍 시비가 일었다.
 
그러나 정상회담 발표가 선거 결과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치진 않았다. 북풍이든 남풍이든 중요한 것은 자유한국당의 전당대회가 아닌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다. 자유한국당은 제1야당답게 평창 이후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의 근본적인 변화를 직시하는 큰 정치를 할 줄 알아야 한다. 북·미 관계 개선, 남북 관계 진전을 자유한국당의 당리당략에 맞출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종전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군 철수가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동북아시아의 힘의 구도를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 안목이다. 1953년 한·미 군사동맹 체결 때 미국의 의중에는 주한 미군이 북한의 재남침뿐 아니라 이승만 대통령의 북진통일을 저지하는 목적도 있었다.
 
오늘의 미군은 일차적으로 대북 억지력의 역할을 하지만 더 크게는 군사적으로 급속히 굴기하는 중국에 대한 군사전략상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사드 사태 때 중국이 보인 히스테리도 그런 배경에서 이해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미국은 한국이 주한 미군을 빼라고 요구해도 그럴 수 없는 것이 동북아 정치의 현실이다. 한국과 일본의 전초기지가 없으면 중국이 미국을 태평양의 제2열도선 이동으로 밀어내고 서태평양을 장악하는 100년의 꿈을 실현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4강에 포위돼 그들의 세력 다툼의 희생양이 된 한반도의 지리적 위치는 바꿀 수가 없다. 지리는 불변이다. 그러나 지리가 불변의 운명은 아니다. 그 위에서 전개되는 국제정치는 역동적(dynamic)이기 때문이다. 주변 4강에 대해 남북한이 하나의 목소리를 낼 때 남북한은 각축하는 4강의 힘을 활용해 강소국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가 있다. 평창에서 구르기 시작한 한반도의 새로운 역사의 수레바퀴가 하노이에서 큰 도약을 하고 김정은의 서울 방문으로 흔들림 없는 평화의 궤도를 달리는 것이 꿈은 아니다. 그렇게 되기 위한 국내적 조건이 적어도 남북 관계와 평화의 프로세스에만은 정치권뿐 아니라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수적이다.
 
한반도 평화는 김정은과 트럼프의 합의만으로 오지 않는다. 그렇게 돼서도 안 된다. 평화는 한국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된 남·북·미 3각 구도에서만 실현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김정은의 서울 답방으로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의 마침표가 하나 찍히는 것이다. 어느 단계에서는 중국·일본·러시아의 참여도 필요하다. 그러나 긴 한반도 평화 오디세이가 한국이나 미국의 정치일정에 맞춰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김영희 전 중앙일보 대기자 
 
※ 김영희 - 1958년 22세 나이로 언론계에 첫발을 디딘 필자는 82세가 된 지금까지 현장을 누비는 영원한 기자의 길을 걷고 있다. 중앙일보 편집국장, 임원 등을 거치고 최근까지도 중앙일보 대기자 및 칼럼리스트로 활동했다. 외교·안보·국제 뉴스의 한 우물을 판 역사의 증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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