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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호의 법의 길, 사람의 길] 아침을 맞이하며, 햇살의 공명정대함을 꿈꾸며

중앙일보 2019.02.20 00:31 종합 27면 지면보기
문영호 변호사

문영호 변호사

해가 떠오르면 아침이 찾아온다. 어김없이 오는 아침에 익숙해져 그런지 아무 생각 없이 맞는 사람이 많다. 늦은 시간까지 잠들지 못하는 도시인들의 아침은 서두름과 허둥댐으로 덮혀 버리기 쉽다. 하루 일과 시작에 쫓기는 사람에게 아침을 어떻게 맞이하는지 물어봐야 시큰둥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하루가 아침 맞이에서 시작된다는 걸 알고도 어찌 그 소중한 시간을 아무 생각 없이 흘려보낸단 말인가.
 
아침은 동녘 하늘에 어둠이 벗겨지면서 시작된다. 저 멀리 산 능선에 붉은 해가 삐죽 솟아오르며 펼쳐지는 몇 분 동안의 햇살의 향연은, 볼 때마다 벅찬 감동을 준다. 둥근 해가 온전히 솟아올라 거침없이 햇살을 뿜어내면, 대지에는 생명의 기운이 퍼져 나간다. 흡사 의식을 시작하며 제단에 늘어선 촛대에 하나 둘 불을 불이는 것 같다. 살아 있는 것들은 더 생생해지고, 차디찬 돌덩이마저 온기에 녹아내릴 것 같다.
 
햇살이 불어넣는 생명의 마법을 제대로 느끼려면 집 밖으로 나가야 하지만, 가까운 산을 찾는 것도 좋다. 산속에서 해가 뜨는 장면을 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그 감동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줄기 틈새를 헤집고 잎사귀에 꽂히는 햇살은, 시시각각 색깔을 바꾸며 나무를 흔들어 깨운다. 풀잎의 이슬에는 반짝이는 햇살이 등불처럼 매달린다. 새소리 계곡 물소리까지 어우러지면 햇살의 향연은 숨막힐듯 황홀해진다.
 
아침 맞이를 마무(摩撫)한다며 명상 수련을 해본 적도 있지만 10여 년 전부터는 음악 듣기로 돌아섰다. 산행을 마치고 귀갓길 자동차 안에서 듣게 된 바이올린 선율이 몸속 세포 한 톨 한 톨을 깨우는 느낌을 받고 나서부터다. 아침 맞이에 끼어든 음악 듣기는 이제 하루도 빼먹지 않는 취미가 되었다. 아침의 여운을 흩트리지 않으려다 보니 바흐를 자주 듣게 된다. 마음을 가라앉혀 주는 마력에 끌려서 그런 걸까.
 
법의 길 2/20

법의 길 2/20

뭔가 특별한 아침 맞이를 찾던 중에 우연히 만난 사람이 파블로 카잘스다. 96세를 넘겨 타계한 이 거장은, 피아노 앞에 앉는 것으로 아침을 맞았다. 분신처럼 끼고 지내온 첼로를 밀쳐두고 30분가량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을 치는 것을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고 한다. 전기(傳記)를 통해 접한 거장의 경건한 아침 맞이는 두고두고 나에겐 사표(師表)가 되었다.
 
장엄한 아침 맞이를 찾는다면 산사(山寺)에 가보길 권하고 싶다. 꼭두새벽부터 두 시간 가까이 산사에는 소리의 향연이 펼쳐진다. 도량석 목탁 소리에서 시작해, 범종의 긴 울림과 법고의 경쾌한 북소리, 목어(木魚) 두들기는 소리가 차례로 이어진다. 온갖 생명체와 만물을 깨워놓겠다는 결연함이 느껴진다. 스님의 마무리 독경 소리가 끝나면 산사에는 명징(明澄) 함이 가득 해지고, 그 명징함 속으로 살며시 아침 햇살이 밀려온다.
 
돌이켜보니, 지난 날 나의 아침 맞이도 늘 여유로웠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출근 시간에 쫓기는 날에도 업무 스트레스로 밤잠을 설친 날에도 어김없이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아침의 그 무엇이 나를 그렇게 이끌었을까. 그것은 햇살이 보여주는 공명정대(公明正大)함 때문이었던 것 같다. 어느 것 하나도 차등을 두지 아니하고 곧게 그리고 최대한 넓게 비추는 햇살의 공명정대함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닮고 싶었다. 법의 잣대로 이런저런 일을 재단하는 사람이 결코 잃어서는 안되는 그런 공명정대함을, 햇살은 아침마다 실행으로 보여줬다.
 
언젠가부터 아침 맞이에 나서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아내가 동반자로 나서고 부터다. 이제 더 씩씩하게 아침을 맞이하며, 가슴 가득 햇살을 품어야겠다. 경건함과 명징함으로 가다듬고 그러길 거듭하다보면, 공명정대함이 햇살처럼 가득한 세상이 성큼 다가오지 않을까. 
 
문영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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