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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객 구하다 숨졌는데 “위험직무 순직 아니다”

중앙일보 2019.02.20 00:04 종합 18면 지면보기
취객을 구하다 숨진 여성 구급대원에 대해 정부가 “위험직무 순직이 아니다”는 결론을 냈다. 유족과 동료 소방관들은 “이게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직무를 수행하다가 사망한 공무원에 대한 예우냐”며 반발하고 있다.
 
인사혁신처는 19일 “강연희(사망 당시 51세) 소방경의 사망은 공무원 재해보상법에서 정한 순직에는 해당되나 같은 법 3조 1항 4호 및 5조 2호에서 정한 ‘위험직무순직’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 공무원재해보상심의회 의견이므로 부득이 위험직무순직 유족급여 청구에 대해 부지급을 (지난 13일) 결정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일반 순직은 인정됐지만 ‘위험직무순직’은 아니라는 것이다. 위험직무순직이 인정되면 강 소방경은 국립묘지에 안장되고, 국가 유공자 예우를 받는다. 유족에겐 일반순직보다 더 많은 보상금과 연금이 지급된다.
 
강 소방경은 지난해 4월 2일 익산역 앞 도로에서 술에 취해 쓰러진 윤모(48)씨를 119구급차에 태워 병원으로 옮기다가 봉변을 당했다. 윤씨는 강 소방경의 머리를 주먹으로 대여섯 차례 때리고 “○○년, XX를 찢어버린다” 등 모욕적인 말을 퍼부었다. 윤씨는 폭력 전과자였다. 강 소방경은 사건 이후 불면증·어지럼증 등에 시달리다 5월 1일 뇌출혈로 숨졌다.
 
신혜라 인사혁신처 재해보상심사담당관은 “위험직무순직이 (현장에서) 거의 즉사하거나 어떤 경우에도 살아남을 수 없는 위험한 환경에서 일한 분들 중심으로 인정돼 왔던 것에 비하면 (강 소방경은) 현장의 위험한 정도가 위험직무순직에는 이르지 못한 게 아니냐는 위원들 의견이 다수여서 (부결로) 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공무원 재해보상법에 따르면 위험직무순직 공무원은 고도의 위험을 무릅쓰고 직무를 수행하다 재해를 입고 그 재해가 직접적 원인이 돼 사망한 공무원을 말한다. 소방공무원의 위험직무순직 요건에 해당하는 재해는 재난·재해 현장에서의 화재진압, 인명구조·구급작업 또는 이를 위한 지원 활동(그 업무 수행을 위한 긴급한 출동·복귀 및 부수 활동 포함), 위험 제거를 위한 생활 안전 활동 등이다.
 
남편 최태성(53) 소방위(김제소방서)는 “잘될 거라 기대했는데 뜻밖의 소식을 들어 허망하다”며 “두 아들(중 1, 고 2)한테는 차마 이 소식을 못 전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5일 인사혁신처를 찾았지만, 담당 직원은 “‘고도의 위험’이라는 문구를 두고 위원 간 의견이 갈렸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고 한다.
 
전문가 의견은 나뉜다. 한국의사협회는 “폭행 사건 이후 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뇌동맥류 부위에 출혈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감정 결과를 내놨다. 반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은 “외상에 의한 동맥류 파열은 아니고, (폭행·폭언과 사망 간) 직접적 증명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최 소방위는 “소방공무원은 항상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출동하고, 실제 아내는 구급 활동을 하다 숨졌는데 심사 과정에서 위험의 정도를 자의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게 이해가 안 간다”며 재심 청구 의사를 밝혔다. 재심은 국무총리 소속 공무원 재해보상연금위원회에서 한다.
 
동료 소방관들의 반발도 거세다. 소방공무원 4만여 명은 강 소방경의 위험직무순직 여부에 관심이 높다. 트라우마·우울증·불면증 등을 앓아도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무와 무관한 개인 질병으로 치부되는 현실이 바뀌길 원해서다. 정은애 익산소방서 인화119안전센터장은 “주취자 이송이 위험한 업무가 아니라는 인사혁신처 결정은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소방관들은 인사혁신처 앞에서 1인 시위 및 단식 투쟁을 예고했다.
 
익산=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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