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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줌업] 세계 뒤흔든 혁명의 나라…이상은 달콤했으나 현실은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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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세계 뒤흔든 혁명의 나라…이상은 달콤했으나 현실은 썼다

중앙일보 2019.02.20 00:04 종합 20면 지면보기
혁명은 달콤했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지난 1월 1일 60주년을 맞은 쿠바 공산혁명, 2월 2일 20주년을 맞은 베네수엘라 차베스모(차베스주의) 혁명, 2월 12일 40주년을 맞은 이란 이슬람 혁명이 보여준 공통점이다.
 
1959년 미국에서 164㎞ 떨어진 카리브 해의 섬나라 쿠바에선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 등이 게릴라전을 통해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혁명정부를 수립했다. 79년 중동 산유국 이란에선 민중봉기로 샤(이란 군주) 군주체제를 전복시키고 종교 지도자 루홀라 호메이니를 앞세운 이슬람 공화국을 세웠다. 20년 전인 99년 2월 2일 남미 산유국 베네수엘라에선 우고 차베스가 선거로 당선해 대통령에 첫 취임했다. 차베스는 석유산업을 국영화해 얻은 재원으로 국내에선 경제적 평등을, 국제적으론 반미연대를 추구하는 차베스모를 추구하며 세계를 뒤흔들었다.
 
혁명은 희망과 기대 속에서 시작됐으며 국제적인 관심도 컸다. 카스트로와 게바라, 호메이니, 차베스는 세계적인 주목 인물이 됐다. 하지만 현재 이 세 나라는 엄청난 자원과 지정학적인 장점에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명목금액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 통계를 보면 인구 1122만의 쿠바가 8433달러(2017년)이다. 2019년 예상치로 이란이 4006달러, 베네수엘라가 3100달러에 불과하다. 쿠바는 미국과 가장 가까운 카리브해 연안국이라는 지정학적인 이점이 있고, 이란과 베네수엘라는 세계적인 산유국이라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도대체 혁명 뒤 어떤 과정을 걸었기에 경제적으로 이토록 혹독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살펴본다.
 
20세기 하반기 혁명으로 체제 바꾼 세 나라

20세기 하반기 혁명으로 체제 바꾼 세 나라

◆ 쿠바=59년 공산당 일당독재 체제로 집권한 뒤 토지·기업 등 사유재산을 압류해 국가·공공 소유로 바꿨다. 이를 바탕으로 식료품과 생필품 배급제, 무상교육·무상의료 제도를 실시하며 국가주도 경제체제를 유지했다. 하지만 91년 소련이 무너지고 수출품인 설탕 국제가격이 하락하면서 경제난이 발생하고 식량난마저 겪게 됐다.
 
외화와 실업자 증가로 더는 국가주도 경제체제를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한 쿠바 공산당은 2008년부터 민박집·택시·렌터카·민영식당·이발소·수리·집수리·청소 등 관광업 관련 180여 소규모 업종을 민영화했다. 2011년엔 제6차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경제사회개혁방안’을 의결해 부분 개혁을 당 정책으로 공식화했다. 그 결과 친지 창업을 돕는 해외거주 쿠바인들의 국내 송금이 매년 30억 달러 이상으로 늘었다. 외국 관광객도 증가해 매년 25억 달러 이상의 외화를 뿌리고 간다. 관광 대국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체제다. 현재도 국가가 교육·의료를 제공하고 쌀·콩·식용유·담배 등 기본 식료품과 생필품을 염가로 공급하고 대신 공무원 15달러, 의사 25달러의 비현실적인 월급만 지급한다. 쿠바 현지를 방문했을 때 현지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이 ‘정부는 월급을 주는 척만 하고, 국민은 일하는 척만 한다’이었다. 쿠바 경제개혁을 주목하는 이유다.
 
◆ 이란=이란은 78년부터 계속된 민중 시위로 79년 2월 이슬람 공화국을 세웠다. 서구식 민주화를 요구한 시민 시력과 종교적 권위를 바탕으로 이들에게 힘을 보탠 이슬람 세력이 정치적으로 타협해 권력을 나눠 가졌다. 그 결과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국민이 직접 선출해 행정부와 입법부를 운영하고, 시아파 최고 종교지도자가 선출직 공무원의 임면권을 행사하고 군과 사법부를 장악하는 독특한 체제의 이슬람 공화국이 들어섰다.
 
이란 국민은 정의·평화·번영을 기대했지만 79년 11월 4일부터 81년 1월 20일까지 1년 2개월 이상 진행된 테헤란 미국대사관 점거·인질 사태로 서방과의 관계가 틀어졌다. 이란-이라크 전쟁(80년 9월~88년 8월)까지 겹쳐 8년간 최다 50만이 전사하고 40만이 부상했으며 10만 이상의 민간인이 숨졌다. 경제손실은 최고 5610억 달러로 추산된다.
 
핵무기 개발을 위해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추진하다 2006년부터 유엔 경제제재를 받았다. 2016년 ‘이란 핵 합의’로 제재가 완화됐지만, 미국이 반발하면서 다시 어려움에 겪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란 군부가 시리아 내전, 예멘 내전 등에 군사적으로 개입하면서 연간 수십억 달러를 쓴다는 점이다. 젊은층은 이런 현실에 불만을 표시하면서 2009년 대선 직후 ‘부정선거’에 항의한 데 이어 2017년 12월엔 전국적인 시위를 벌였다. ‘혁명과 종교 낙하산’들은 사회적 기득권자가 돼 각종 일자리와 이권에서 특혜를 누리는 점도 젊은 층을 자극했다. 이란은 폭풍 전야다.
 
◆ 베네수엘라=차베스는 세계 1위의 원유 매장량을 자랑하는 석유 산업을 국영화하고 얻은 자금으로 교육·의료를 무상 제공하고 기초 식료품과 생필품을 무상이나 원가 이하의 가격으로 공급했다. 그 결과 99년 50%이던 빈곤율을 2011년 27%까지 떨어뜨렸다. 사회적 투자도 늘려 빈민에게 깨끗한 상수도와 화장실을 보급했다. 국제 연대를 강화한다며 영국 런던과 미국 뉴욕의 빈민에게 난방을 지원했다. 차비스타(차베스 지지자들)는 이런 차비스모를 ‘21세기 사회주의의 모범사례’로 불렀다.
 
차비스모는 오일달러를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대신 지지층인 빈민에게 분배하는 데 집중하면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2014년 이후 국제적으로 저유가가 지속하면서 차비스모는 재원 부족에 시달렸다. 수요공급 법칙을 무시한 식품·생필품의 염가 제공은 시장 질서를 교란하고 암시장을 키워 물자 부족 사태로 이어졌다. 옛 소련에서 흔히 보이던 모습이다. 3선 금지를 규정한 헌법을 개헌해 3선에 성공한 차베스가 2013년 취임 직후 서거하면서 뒤를 이은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무능과 지나친 권력욕도 작용했다.
 
현재 국내에선 심각한 생필품 부족 사태가 이어지고 국민은 줄이어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IMF가 올해 베네수엘라 인플레율을 1000만%로 예상할 정도다. 한마디로 ‘21세기 정부 실패의 반면교사 사례’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런 가운데 1월 23일엔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이 스스로 임시 대통령임을 선포하고, 미국과 유럽 등 서방이 이를 지지하면서 ‘한 나라 두 대통령’의 혼란 시대를 맞고 있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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