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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석에선 욕설, 단상에선 막말…지지율 스스로 깎아먹는 한국당 연설회

중앙일보 2019.02.19 15:54
 
“김병준 나가라” “빨갱이” “탄핵 부역자”
18일 대구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대표ㆍ최고위원 후보 합동연설회에 인사말을 하기 위해 단상에 선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쏟아진 구호다. 김 위원장은 “조용히 해주세요. 여러분들이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알고 있다”고 진화하려 했지만 야유와 고성은 잦아들지 않았다. 결국 김 위원장은 굳은 표정으로 1분여간 마이크를 쥔 채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생중계되고 있던 한국당 유튜브 채널 ‘오른소리’를 통해 전국에 실시간으로 전달됐다.
 
김 위원장이 그나마 위로받은 대목은 이날 야유의 대상이 본인만이 아니었다는 점이었을 것이다. 오세훈 대표 후보나 조대원 최고위원 후보 등이 단상 오를 때도 김 위원장의 경우와 비슷한 광경이 벌어졌다. 유튜브에도 욕설이 쉴새없이 화면을 채웠다.
 
이날 이들에게 비난과 욕설이 날아든건 5·18 폄훼논란 때문이었다. 김병준 위원장은 논란을 야기한 김진태ㆍ김순례ㆍ이종명 의원 등을 당 윤리위에 회부했다. 오 후보는 ‘박근혜 극복론’을 내걸었고, 조 후보는 5·18 폄훼발언에 대한 사과를 주장했다. 다수의 여론과 부합되는 언행이지만 정작 전당대회에서 ‘배신자’라는 공격을 받았다.
 
이런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은 ‘태극기 부대’로 불리는 그룹이다. 한국당에 따르면 최근 입당한 태극기 부대는 약 8000명 가량으로, 이중 전당대회 행사마다 약 2000~3000명 가량이 집결하고 있다. 이들은 전체 선거인단(37만8000여명)의 2%에 불과하지만 조직력과 전투력으로 시종일관 현장 분위기를 뒤흔들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도취된 탓인지 과거 같으면 조심스러워 했을 주장들이 여과없이 행사장에서 터져나온다. 김준교 최고위원 후보는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저딴 게 무슨 대통령인가” “나라를 팔아먹고 있다” “제게 90% 이상의 표를 몰아주면 반드시 탄핵될 것”이란 등의 원색적 발언으로 환호를 받았다.
 
 이때문에 당 일각에선 “간신히 추스른 당 분위기가 탄핵 이전으로 돌아가는 거냐”, “민자당 때보다 당이 더 우경화했다. 민정당 수준까지 내려온 것 같다”는 등의 우려가 나온다. 중진인 김무성 의원은 19일 “우리 당이 그런 과격분자들의 놀이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고, 이완구 전 국무총리도 “‘저딴게 대통령’과 같은 막말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렇지만 상당수 중진들은 공개적으로 비판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자신이 태극기 부대의 공격표적이 되는 걸 꺼리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속에서 태극기 부대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기세도 올라가고 있다.
 
정치에서 극단적 소수의 목소리가 온건한 다수를 압도하는 현상은 비단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의 역사학자 티머시 슈나이더는 저서『폭정』에서 소수였던 파시즘과 나치즘이 어떻게 유럽 사회를 뒤흔들었는지를 분석하면서 “민주주의 제도는 실제론 대단히 취약하며 계속해서 보호하려 노력하지 않으면 소수의 선동가와 조직력에 의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당 전당대회가 태극기 부대의 아우성을 극복하고 보수의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는 계기가 될지, 아니면 태극기 부대의 목소리에 매몰돼 당의 우경화를 가속화하는 상황을 만들지 많은 국민들이 예의주시하고 있다.
유성운 정치팀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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