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외모 규제라니 너무 무지한 발언” 여가부 방송 제작 안내서 연구자 인터뷰

중앙일보 2019.02.19 11:57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왼쪽)과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 [뉴시스]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왼쪽)과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 [뉴시스]

“하태경 의원이 ‘왜 외모를 가지고 여가부 기준으로 단속하느냐’고 언급했는데, 국회의원으로서 너무 무지한 발언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논란이 됐던 여성가족부의 ‘방송 프로그램의 다양한 외모 재현을 위한 가이드라인’의 연구를 담당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이수연 선임연구위원은 19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지난 12일 여가부는 ‘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를 배포했다. 지난 2017년 만든 안내서에 부록으로 가이드라인을 붙여 새로 펴냈다. 가이드라인은 이 위원이 여가부의 의뢰를 받아 연구한 보고서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책자에는 방송에서 외모나 성 역할 등을 불평등하게 표현하지 말 것을 권고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중 일부 대목이 화제가 되면서 “정부가 걸그룹 외모까지 규제하느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은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진선미 장관은 여자 전두환이냐”며 “외모에 객관적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여가부 기준으로 단속하려 하나. 군사독재 시대 때 두발 단속, 스커트 단속과 뭐가 다르냐”고 적었다. 이 박사는 이에 대해 “국내의 외모 지상주의가 심각한데 그런 현실을 외면하고, (가이드라인의)맥락도 다 무시하고 그 부분만 딱 잘라서 그런 이야기를 하다니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문제가 된 부분은 ‘획일적인 외모 기준을 제시하는 연출 및 표현’을 지양하자는 대목이다. 가이드라인은 ‘음악 방송 출연 가수들은 모두 쌍둥이?’라는 소제목 아래 “음악방송 출연자 대부분은 아이돌 그룹으로, 음악적 다양성뿐 아니라 외모 또한 다양하지 못하다. 대부분의 아이돌 그룹은 마른 몸매, 하얀 피부, 비슷한 헤어스타일, 몸매가 드러나는 복장과 비슷한 메이크업을 하고 있다. 외모의 획일성은 남녀 모두 같이 나타난다”고 표현했다.

-

-

 
이 위원은 “이렇게까지 논란이 될줄은 몰랐다. 제가 연구자로서 외모 지상주의의 심각성에 함몰돼 그런지 모르지만 대중에게 ‘외모 할당제’ 논란까지 벌어질 줄은 몰랐다”라고 말했다. 그는 “외모 지상주의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해외에서도 여성은 마른 몸매를 선호하고, 남성은 근육질 몸매를 선호한다. 이런 시각이 미디어에 그대로 담기면서 특히 청소년이 왜곡된 사고와 외모에 대한 압박감을 가지게 돼 문제가 많다는 연구가 상당하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거기서 한발 더 나갔다. 단순히 마른 몸매 정도가 아니라 하얗고, 눈이 크고, 갸름한 얼굴 등으로 미의 기준이 단일화되는 경향이 있다. 외모가 경제적인 자본으로 치환되는데, 그걸 더 부추기는 게 미디어”라고 설명했다.

 
이 위원은 “여가부에서 발주를 받아 실제 미디어의 외모 지상주의를 분석해보니 정말 심각한 결과가 나왔다”라고 말했다. 그는 “방송 자막 하나만 봐도 외모 지상주의를 심하게 부추긴다. 여성 출연자가 나왔다 하면 ‘미모, 동안’ 주입시킨다. 못 생긴 사람을 못생겼다고 지적하고, 자학 개그의 소재로 쓴다”라며 “(이번 가이드라인은)무심히 보고 지나갈 것도 제작할 때 한번 더 확인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담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위원은 20대 일반인 남녀를 출연시켜 실제 커플이 맺어지는 과정을 다룬 한 예능 프로그램을 나쁜 예로 들었다. 그는 “예쁘고, 잘 생긴 사람만 골라 출연시킨데다 그 와중에 더 예쁘고 잘 생긴 사람이 선택받는다. 실제 현실이 그렇다 하더라도 방송의 그런 포맷(형식)이 그런 인식을 더 강화시킨다. 그런 방송이 계속되니 요즘 고등학교 여학생 중에 다이어트 안 하는 학생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런 방송이 청소년들의 과도한 다이어트나 성형을 부추긴다는 얘기다.  
 
이 위원은 “우리가 외모지상주의에 매몰돼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그는 “사람들이 ‘예쁜 걸 예쁘다고 말하는 게 왜 문제냐'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게 당연한 사회가 바로 외모 지상주의 사회다. 남자에게 '어깨가 넓어야지’, 여자에게 ‘날씬해야지’ 하고 강요하는 건 엄연한 성적 대상화이고, 성차별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렇게 강조했다. “방송 제작을 규제할 의도도, 그럴 권한도 없습니다. 가이드라인은 다만 방송 제작자들의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한 겁니다. 외모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서, 자막을 하나 달더라도 달리 생각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만든 교육용 자료입니다. 가이드라인 내용을 놓고 ‘정부가 아이돌 그룹의 외모에 기준을 제시하고 규제한다’고 하는 건 말꼬리를 잡는 데 지나지 않습니다. 별로 합리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은 비판이죠.”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