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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살려달라는 시장의 절규

중앙일보 2019.02.19 00:19 종합 27면 지면보기
이상렬 경제 에디터

이상렬 경제 에디터

지난해 9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아연실색했다. 일시적인 줄 알았던 고용 부진이 전달에 이어 계속됐기 때문이었다. 8월 취업자 증가규모는 3000명. 7월(5000명 증가)보다 더 나빠졌다. 고용 참사였다. “7월 취업자 증가가 극도로 부진했지만 일시적 현상일 수 있다고 봤다. 다음달에는 반등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명확한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한은 관계자)
 

외환위기 이후 최악 고용참사에도 정부대책 실효성 없어
최저임금 동결, 규제 혁파 등 시장 호소에 귀 기울여야

평소 20만개 이상 거뜬히 생겨나던 일자리가 갑자기 1만개 안팎으로 떨어진 것은 한국 경제의 미스터리다. 다만 무리한 최저임금 인상을 주축으로 하는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소주성)이 문제를 일으켰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많은 주류 경제학자들이 소주성이 시장을 왜곡하고 고용 상황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비판에 가세한 것도 이런 인식 때문이라고 볼수 있다.
 
물론 소주성에 대한 질타가 과도하다는 반론도 있다. 그 중 하나는 역대 정권에서 여러 위기를 다뤄본 전직 장관의 분석이다. “세계 11번째 규모의 경제가 정부 정책 몇개로 성장률이 떨어지고 기업 의욕이 꺾였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거의 제갈공명이 와도 못할 일이다. 지금의 비판은 내리막길에서 넘어지기 직전인데 뒤에서 손을 잘못 댔다고 ‘네가 넘어뜨렸지!’라고 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단단히 붙잡아도 시원찮을 내리막길에 어설프게 손을 댄 것은 잘못이다. 더구나 최저임금 과속 인상에 대한 시장의 경고를 무시하고 내달린 책임은 가볍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청와대를 찾은 자영업자들에게 “최저임금이 먼저 인상되고 보완조치들은 국회 입법사항이기 때문에 같은 속도로 맞춰지지 않고 있다”면서 “소상공인·자영업자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라고 사과했다. 문 대통령이 말한 보완조치는 카드수수료 인하, 일자리안정자금 지원, 4대 보험료 지원, 상가임대차 보호 등이다. 준비안된 최저임금 인상이 현장에서 어떤 파행을 낳았는지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은 타당하다. 소주성이 절대 불가침의 성역 같았던 정부 출범초와 비교하면 상당한 변화다. 그의 사과도 진심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보완책 없이 소주성을 밀어붙였음 역시 시인하는 것이어서 듣는 이의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나라 경제와 민생이 신종정책의 실험 대상이어선 안된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외환위기 이후 최악을 기록한 1월 고용동향을 보면 정부의 고용 대책은 아직 번지수를 제대로 찾지 못한 것 같다. 우리 경제의 주축인 30대와 40대에선 지난해보다 취업자가 29만 2000명 줄었다. 한 가정의 가장인 이들의 취업난은 가계에 짙은 먹구름을 드리울 것이다. 업종별로는 제조업 취업자가 17만명 줄었고, 도·소매업과 숙박·음식점업이 각각 6만7000명, 4만명 감소했다. 건설업도 1만9000명 줄어들었다.
 
우려스러운 것은 이 마이너스 행진이 단기간에 반전될 분위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제조업 부진은 쉽사리 회복될 것 같지 않고, 내수는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다. 건설업은 부동산 시장 냉각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시장이 얼어붙어 거래가 안되니 집을 짓겠다는 움직임이 위축되고 있다. 올해 일자리 15만개를 늘리겠다는 정부 목표는 물 건너간 듯 보인다. 정부가 재정을 풀어 일자리를 늘린 보건·사회복지서비스업 외에  취업자가 눈에 띄게 늘어난 분야는 정보통신업(9만4000명)이다. 4차 산업혁명이 왕성하게 진행되는 분야다. 수 억원대의 빚을 안고 파산한 40~50대 자영업자들은 도대체 어느 분야에서 새 일자리를 찾을 것인가. 그들의 재기를 도울 수 있는 맞춤형 일자리 대책이 시급하기만 하다.
 
최근 문 대통령의 왕성한 경제 행보 보도에서 주목할만한 것은 참석자들이 대통령에게 쏟아내는 직설적인 얘기들이다. 평소 샌님 같던 벤처기업인들은 문 대통령에게 “국내 벤처가 글로벌 기업에 비해 역차별을 받고 있다”“주 52시간은 또 하나의 규제”“정부가 지원하더라도 시장경제 건강성을 유지시켜 달라”등의 요구를 쏟아냈다. 자영업자들은 “내년도 최저임금을 동결해달라”고 호소했다. 대통령 앞에서 거침없는 이들 건의의 실상은 ‘살려달라’는 절규나 다름 없다.
 
벤처 1세대로 꼽히는 이재웅 쏘카 대표가 ‘사회적 대타협’을 강조하는 홍남기 경제부총리를 겨냥해 “어느 시대 부총리인지 모르겠다”고 비판한 것도 더 이상 우물쭈물하다간 공유경제 경쟁에서 한순간에 밀려날수 있다는 위기감의 발로로 보인다. 지금의 경제적 난제를 푸는 해법은 어쩌면 단순할지 모른다. 문 대통령이 기업인과 자영업자들에게서 들은 것을 곱씹고 그대로 실행하면 된다. 형편이 어려우니 최저임금 인상을 당분간 보류하자는 것이, 기득권이 걸린 이해관계자가 아니라 혜택을 받게 될 국민을 생각해 규제를 혁파하자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이상렬 경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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