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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한국 졸업식에 없는 것

중앙일보 2019.02.19 00:05 종합 31면 지면보기
권혁주 논설위원

권혁주 논설위원

배우 로버트 드니로가 단상에 올랐다. 2015년 뉴욕대 티시 예술대학 졸업식장이었다. 감독·배우·프로듀서 등을 꿈꾸는 학생들 앞에서 드니로는 연설을 시작했다. “졸업했군요. 여러분은 망했습니다(You made it, and you are fucked!).” 웃음이 터졌다. 연설이 이어졌다. “간호대·치대·회계학·경영학 모두 직업을 얻습니다. 여러분은? 망했습니다.”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드니로는 “감독·프로듀싱 전공 졸업생들에게 제 이력서를 드리려고 여기 왔다”라고도 했다. 학생들의 성공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의미였다. “여러분은 자신의 재능과 열정을 발견했습니다. 그 길로 나가세요. 실패를 두려워 마세요. 저도 한 오디션에서 대본을 7번이나 읽고도 떨어졌습니다. 여기 모든 분이 예술의 새 지평을 열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미국 대학의 졸업식 초청 연설은 대개 이렇다. 명사들이 삶의 지혜를 유머 속에 녹여 낸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그랬다. 2015년 부인 로라 부시 여사의 모교인 남부감리교대 100주년 졸업 연설이었다. “수상자 여러분, 축하합니다. 그리고 C를 받은 학생들에게는 이런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자신도 C를 받았었다는 고백 속에 격려를 담았다. 부시 전 대통령이 연설한 13분 50초 동안 웃음이 22번, 박수는 12번 터졌다. 웃음은 평균 40초에 한 번, 박수는 70초에 한 번꼴이었다.
 
에릭 슈밋 전 구글 회장은 2012년 보스턴대 졸업식에서 ‘오프라인’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은 대단한 일을 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마음(heart)이 없습니다. 적어도 하루에 한 시간은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끄세요. 화면 대신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세요. ‘좋아요’ 버튼을 누르지 말고 좋아한다고 말하세요.”
 
대학들은 졸업식의 주인공인 졸업생들을 위해 좋은 연사 모시기에 여념이 없다. 수천만원 강연료를 지불하는 일이 다반사다(강연료는 대부분 기부한다). 연설 요청을 받은 명사들은 단어 하나하나에 고심한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는 2007년 하버드대 졸업 연설을 6개월간 준비했다. 워런 버핏에게서 연설 지도까지 받았다. 이런 식이어서 명연설이 넘치고, 언론은 내용을 앞다퉈 보도한다. 한국에선 좀체 보기 힘든 모습이다. 미국을 뻔히 보면서도 흉내 내지 못한다. 어쩌면 한국엔 졸업생들이 귀 기울일 만큼 깊은 삶의 지혜를 간직한 인물이 드문 것 아닐까. 존경심 넘치는 미국의 졸업식이 부럽기만 하다.
 
권혁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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