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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OUT]"규제 샌드박스는 과거 실패 답습 우려, 총리가 직접 운영 책임져야"

중앙일보 2019.02.18 15:47
규제개혁 토론회서 봇물 터진 지적들
정부가 지난달부터 시행하고 있는 '규제 샌드박스 제도'에 대해 국내 규제개혁·정보기술 정책 전문가들이 우려를 표시했다. 규제 샌드박스란 신기술과 신산업을 포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정부가 기업들에 불합리한 규제를 일정 기간 유예해주는 제도다.  
 
한국규제학회·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대한상공회의소 등은 18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4차산업혁명기 혁신성장을 위한 규제개혁'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샌드박스 제도에만 의존하면 규제와 관련한 과거 정책을 답습해 '규제개혁 블랙홀'이 만들어진다"며 "새로운 서비스와 제품을 포용할 수 있게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18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혁신성장과 규제개혁 대토론회' 모습. [사진 벤처기업협회]

18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혁신성장과 규제개혁 대토론회' 모습. [사진 벤처기업협회]

 
곽노성 한양대 특임교수(과학기술정책학)는 "지금과 같은 규제 샌드박스 제도는 과거의 실패를 답습할 가능성이 크다"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산업통상자원부·중소벤처기업부 등이 동일한 제도를 운용하면 부처는 비대해지고 책임 소재만 모호해져 사업자가 자신에게 우호적인 정부 부처를 찾아다녀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규제 샌드 박스 제도는 산업 분야 기술·사업은 산업부에서, 정보통신 분야는 과기부에서 접수를 받고 허용 여부도 부처별로 심사를 따로 하고 있다.
 
"국무총리가 샌드박스 제도 운영하고 책임져야" 
곽 교수는 대신 국무총리가 직접 샌드박스 제도를 운영하고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총리의 부처 감독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해 규제특례심의위원회 등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해야 하고 ▶총리 산하 국무조정실이 신청 창구와 심의 기능을 일원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 교수는 또 정부가 규제 정보 공개를 기피하는 현상을 지적하면서 "공무원조차 규제 내용을 파악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정부의 규제 이력을 모두가 알 수 있게 미국처럼 수요자 중심의 규제 정보 공개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정부에서 국무조정실 규제조정실장을 지낸 강영철 한양대 특임 교수는 "대통령 직속 기구지만 실질 권한이 없는 규제개혁위원회를 공정거래위원회처럼 격상시켜 실질적인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흥법 500개 넘어도 소용없어"
 
정보기술(IT) 분야 전문 변호사인 구태언 테크앤로 변호사는 "수많은 규제가 국내 혁신 스타트업들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며 "디지털 시대에서 외국 기업들로부터 데이터 주권·경제 주권을 지키기 위해서 정부가 국내 플랫폼 기업을 강력히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 변호사는 "금융·운수·의료 산업 등 인허가 제도가 보편화한 산업군에서는 우버·카카오모빌리티 등 O2O(온라인과 오프라인 연결 서비스) 기업들이 전통 산업과 부딪힐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디지털 전환에 대한 철학이 없다 보니, 현재와 같은 상황을 방치하며 수수방관한다"고 비판했다. 

구 변호사는 "진흥·보호·육성·발전·성장 등의 키워드가 들어가 있는 정부 부처발 진흥법이 현재 500건이 넘지만 정작 이런 환경에서 세계적 기업은 성장할 수 없다"며 "디지털 경제를 이끌 주력 산업에 대해서는 샌드박스가 아닌 기존 규제를 전면적으로 혁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태윤 한양대(행정학) 교수도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규제 개혁을 만들기 위해서는 규제 영향 분석을 할 때 객관적·과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중국에서는 이미 수년 전부터 보편화한 차량공유 서비스가 한국에서 연거푸 좌초되는 것은 정부가 객관적인 정책 철학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이은우 한국과총 사무총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과학기술은 혁신 성장과 규제 개혁의 핵심인데, 우리나라만 규제 갈라파고스의 길로 가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이 사무총장은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개인정보보호·드론·GMO(유전자 조작 농산물) 등 규제 이슈가 많은데 여전히 눈에 띄는 진전이 없다"며 "규제 개혁을 위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으면 국가 경제가 질식하고 국민이 불행한 갈라파고스의 길을 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규제 계속되면 청년들 떠날 것"
 
정부의 잘못된 규제 정책이 국가 전체의 활력을 죽이고, 나아가 미래 성장 동력인 청년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송보희 청년정책학회 회장은 "규제를 결정·집행하는 담당자들의 역량·경험·전문성이 너무 부족하고 전문성·과학성도 결여되어 있다"며 "이들이 얼마나 해당 분야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이 있고 현장을 잘 알고 있는지 묻고 싶다"고 물었다.  
 
송 회장은 "청년들에게 규제는 '내 꿈을 펼치기도 전에 삶의 한도를 정하고 안전한 동그라미 안에 청년을 가두고 도전조차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며 "국내에서 혁신의 시곗바늘이 유독 느려 블록체인·카풀 등에 도전하려던 청년들은 결국 한국을 떠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규제 개혁 10대 선언문 발표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이민화 창조경제연구회(KCERN) 이사장 겸 카이스트 교수는 패널들의 의견을 종합해 '혁신 성장을 위한 규제개혁 10대 과제'를 선언했다.
<규제개혁 10대 과제>
-규제개혁위원회를 공정위 수준으로 끌어올리자

-위헌 소지가 큰 고시 등 하위 행정규정을 법령화
-진입장벽 만들고 시장 경제 왜곡하는 진흥법 폐기

-규제 이력 확인 가능한 정보 공개 시스템 구축
-과잉 법률 막기 위해 기업·분야별 규제 총영향평가 제도 도입
-금지 규정의 예외 조항을 전체 법령에서 삭제를

-안전·재난에 대해 과학적 연구해 실효성 있는 규제를

-모든 부문에서 '사전 허용 후 규제 검토' 도입 원칙 적용

-규제 비용·편익 합리적으로 바꿀 인공지능 규제영향평가 도입

-우리 기업만 차별하는 갈라파고스 규제 전면 폐기하자

자료: 한국규제학회 

 
10대 과제에는 ▶규개위를 공정위 수준으로 규개위 위상을 높이고 ▶시장경제를 왜곡하는 각종 진흥법을 폐기하며 ▶'기타, 그 밖의, 등'과 같은 예외조항 문구를 법령에서 삭제하고 ▶모든 부문에서 '사전 허용 후 규제 검토' 도입 원칙 적용하자 ▶우리 기업만 차별하는 갈라파고스 규제를 전면 폐기하자는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있다.  
 
이 교수는 "산업 전반에 걸친 복잡한 규제 환경이 4차산업혁명시대 경쟁력을 저하하고 있다"며 "규제의 근본적인 개혁만이 국가 위기를 돌파하고 혁신 성장을 이끌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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