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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외'의 기쁨…느리게 살기로 길어낸 고요한 생각

중앙일보 2019.02.18 15:00
[더,오래] 김성희의 천일서화(24)
'망외'란, '바라던 이상의 것'이라는 의미로 좋은 일에 쓰는 말이다. 책을 만나는데서 '망외의 기쁨'을 얻는 경우가 많고, 서점에서 우연히 괜찮은 책을 집으면 '망외의 소득'을 얻게 된다. [중앙포토]

'망외'란, '바라던 이상의 것'이라는 의미로 좋은 일에 쓰는 말이다. 책을 만나는데서 '망외의 기쁨'을 얻는 경우가 많고, 서점에서 우연히 괜찮은 책을 집으면 '망외의 소득'을 얻게 된다. [중앙포토]

 
누구나 특별히 의미 있는 말이 한두 개쯤 있지 않을까. 반갑거나 추억을 불러일으키거나, 아니면 쓰라린 말들. 내게 ‘망외(望外)’란 말이 그런 각별한 낱말 중 하나다. ‘바라던 이상의 것’을 가리키는 이 말은 ‘뜻 밖’이란 순우리말과 통한다. 하지만 ‘뜻 밖’은 예상하던 것과 달리란 뜻으로 좋은 일, 나쁜 일에 두루 쓰이지만 ‘망외’는 ‘망외의 소득’에서 보듯 ‘희망’ 이상의 좋은 일에 쓰인다. 자연히 ‘망외’는 내가 선호하는 표현이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책을 만나는 데서 ‘망외’의 기쁨을 얻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언론 서평이나 지인 혹은 전문가의 추천이 아니라 서점에서 우연히 집어 든 책이나 읽던 책의 각주에서 언급된 책이 알차거나 흥미롭거나 하면 어째 횡재를 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이게 내게는 ‘망외의 소득’이다.
 
『달팽이... 안단테』, 엘리자베스 토바 베일리, 돌베개. 큰 기대 없이 읽은 이 책이 내게 망외의 소득이었다.

『달팽이... 안단테』, 엘리자베스 토바 베일리, 돌베개. 큰 기대 없이 읽은 이 책이 내게 망외의 소득이었다.

 
몇 년 전 큰 기대 없이 만난 『달팽이… 안단테』(엘리자베스 토바 베일리, 돌베개)가 그런 ‘망외’의 기쁨을 선사해준 책이다. 서른네 살에 후천성 미토콘드리아 병이란 희귀 질환이 발병해 20년 가까이 병상 신세를 져야 했던 미국의 여성 에세이스트가 달팽이를 1년간 관찰한 기록이다.
 
믿음직한 출판사고, 단아한 느낌을 주는 책이지만 큰 기대는 없었다. 달팽이에 관심을 가질 이유도 없고, 별 인연이 없는 클래식 음악에서나 만날 수 있는 ‘안단테’라니…. 한데 한 줄 두 줄 읽어가며 빠져들었다. ‘달팽이 관찰기’이니 기본적으론 과학책이라 할 텐데 문학과 철학에 두루 걸쳐 있는 덕분이었다. 수십 권의 과학책과 논문, 그리고 전문가의 ‘연구’를 소개하는 대목도 제법 흥미롭지만, 우주와 생명에 관한 관찰, 삶에 대한 사유는 자연과학의 범주를 벗어난다.
 
원제는 ‘야생 달팽이의 먹는 소리(The Sound of A Wild Snail Eating)’이지만 그런 의미에서 ‘느리게’란 음악용어를 덧붙인 번역서 제목이 책 내용을 더 잘 보여준다. 시작은 우연이었다. 어느 날 문병 온 친구가 제비꽃 화분을 선물했는데 거기 있던 달팽이-아니 정확히는 달팽이 2대-와 ‘동거’하면서 관찰하고, 명상한 이야기다.
 
미국의 여성 에세이스트가 병상에서 우연히 만난 달팽이를 관찰하며 자연과학적 지식과 철학적 깊이를 함께 담아냈다. 작은 달팽이 하나에서도 자연의 신비와 삶의 숨을 뜻을 찾아낼 수 있다. [사진 pixabay]

미국의 여성 에세이스트가 병상에서 우연히 만난 달팽이를 관찰하며 자연과학적 지식과 철학적 깊이를 함께 담아냈다. 작은 달팽이 하나에서도 자연의 신비와 삶의 숨을 뜻을 찾아낼 수 있다. [사진 pixabay]

 
“저녁이 되면 달팽이는 어김없이 잠에서 깨어 놀라울 정도로 우아하게 화분의 가장자리로 이동해서는 자기 앞에 놓인 낯선 풍경들을 다시 한번 찬찬히 둘러보았다. 마치 고성 안에 우뚝 솟은 작은 탑에서 주위를 살피고 있는 제왕처럼 사려 깊은 모습으로 멀리서 울려오는 선율에 맞춰 춤추는 것처럼 더듬이를 이리저리 물결치듯 흔들었다.”
병상에서 꼼짝 못 하는 지은이가 묘사하는 달팽이는 자못 문학적이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를 깨닫는 부분은 깊이가 있다.
 
“시간이 많으면 많은 대로, 반대로 시간이 적으면 적은 대로 우리는 시간의 인질이다. 사람에 따라 하루에 몇 분, 혹은 몇 시간을 더 살 거나 덜 살 수는 없다. 모두 똑같은 시간을 산다. 하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쓰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이런 구절이 눈에 띈다.
 
“어디에 살든, 그는 홀로 사네. 제 몸을 빼고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어. 자기 자신이 온전히 보물임을 더할 나위 없이 흡족해할 따름이다.” 이런 인용구는 어떤가.
 
1, 2부가 달팽이와의 만남을 통한 성찰에 기울었다면 3~6부는 지은이가 달팽이를 잘 돌보기 위해 관련 서적과 전문가의 도움으로 얻은 생태지식을 담았다. 달팽이가 지능이 있다던가 대화를 한다는 과학적 설명은 자연의 신비를 보여주기에 매혹적이다. 달팽이에게 이빨이 있다는 생각은 해보았는지.
 
민달팽이에게는 “날카롭고, 작고, 섬세한” 이빨이 약 2,640개나 있으며 육식도 한단다. 그런가 하면 달팽이의 일부는 짝짓기를 할 때 탄산칼슘 성분의 침을 상대방의 몸에 찔러 넣는데 이를 ‘사랑의 화살(戀矢)’이라 부른다나. 달팽이 하나에서 이토록 경이로운 자연의 신비와 삶의 숨은 뜻을 길어낸 솜씨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리고 무언가에 쫓기고, 정신없이 헤매고, 목말라 할 때, 지은이가 그랬듯이 고요히 귀 기울여 달팽이가 먹이를 씹는 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바란다.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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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필진

[김성희의 천일서화] 책생책사(冊生冊死). 책을 읽고 기자를 꿈꿨고, 출판팀장으로 기자 생활을 마무리했다. 닥치는 대로 읽었지만 핵심은 ‘재미’였다. 공연히 무게 잡는 책은 싫기도 하고 읽어낼 깜냥도 못 되었으니. 이 경험을 바탕으로 ‘재미있는 책’ 이야기 또는 재미있는 ‘책 이야기’를 쓰려 한다. 실타래가 풀려나가는 듯한 아라비안나이트식 책 이야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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