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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감정노동과 사물 존칭

중앙일보 2019.02.18 00:03 경제 4면 지면보기
“문의하신 상품은 품절되셨어요” “주문하신 음료 나오셨습니다”와 같은 표현은 이제 사라졌을까? 여전히 많이 쓰이지만 이를 바로잡으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고객의 폭언 등을 막는 최소한의 장치인 감정노동자 보호법도 힘을 실어 준다.
 
그동안 모르고도 사용했지만 알고 나서도 사용했다는 것이 고객 응대 노동자들의 속사정이다. 사물에까지 경어를 붙여 말하는 것이 잘못인 줄 알면서도 무례한 고객에게 꼬투리를 안 잡히기 위해서다.
 
‘사물 존칭’이 퍼지게 된 것은 고객을 왕으로 모시는 과정과 무관치 않다. 고객 만족을 서비스의 최고 가치로 삼으면서 마구 쓰인 측면이 있다. 우리말에서 물건은 높임의 대상이 아니다. 선어말어미 ‘-시-’를 붙일 수 없다. “문의하신 상품은 품절되었어요”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처럼 표현하는 게 바르다.
 
말하는 이가 주어를 직접 높이는 게 아니라 주어와 관련된 대상을 통해 높이는 것을 ‘간접 높임’이라고 한다. 높임 대상의 소유물이나 신체 일부분, 관련된 사람을 높이는 방법이다. “선생님은 모자가 많으시다” “할머니는 발이 크시다”와 같은 표현이 해당된다. 이 간접 높임과 사물 높임은 다르다. “선생님은 모자가 많으시다”는 선생님의 소유물인 모자를 통해 주어를 높인 것으로 사용하는 데 문제가 없다. “찾으시는 모자 있으세요”는 ‘모자’ 자체를 높이는 말로 어색하다.
 
직원이 손님에게 어떤 행동을 공손히 요구할 때 “자리에 앉으실게요” 등과 같이 말하는 것도 잘못된 표현이다. ‘-시-’는 ‘앉다’의 주체를 높이는 선어말어미다. ‘-ㄹ게요’는 말하는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할 것이라는 약속이나 의지를 나타낸다. ‘-시-’와 ‘-ㄹ게요’를 어울려 쓰는 것은 어색하다. 자신이 자리에 앉겠다는 것인지, 상대에게 자리에 앉으라는 것인지 모호한 표현이 돼 버린다. “자리에 앉으실게요” 대신 “자리에 앉으세요” “자리에 앉으십시오” “자리에 앉으시기 바랍니다” 등으로 바꿔야 자연스럽다.
 
이은희 기자 lee.eunhee@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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