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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식 정원에 관심 있다면 꼭 알아야 할 사람

중앙일보 2019.02.17 12:12
"중국에 이 사람이 없었다면 강남* 미경(美景)의 절반은 사라졌을 것이다."
*강남(江南)=양쯔강(长江) 이남 지역

중국 고전 정원건축 대가 천총저우
북방엔 량쓰청, 남방엔 천총저우
역사·미술·교육·생물 등에 두루 능통

[사진 펑파이신원]

[사진 펑파이신원]

 
위의 사진은 상하이에 있는 명청시대 양식의 정원 예원(豫园)이다. 강남 정원의 정수 중 하나로 꼽히는 곳으로, 한국 관광객이 상하이에 가면 반드시 방문하는 인기 명소다.  
 
그런데 어쩌면 예원은 지금의 아름다움을 간직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중국 고전원림의 대가 천총저우(陈从周, 진종주) 선생이 없었다면 말이다.
[사진 펑파이신원]

[사진 펑파이신원]

[사진 펑파이신원]

[사진 펑파이신원]

 
상하이 예원부터 쑤저우의 졸정원(拙政园), 망사원(网师园), 유원(留园), 환수산장(环秀山庄), 호구탑(虎丘塔), 양저우의 하원(何园), 편석산방(片石山房), 루가오(如皋)의 수회원(水绘园), 자딩(嘉定)의 공자묘(孔庙), 추하포(秋霞圃), 자싱(嘉兴)의 남북호(南北湖), 그리고 항저우의 서호곽장(西湖郭庄)까지.
 
중국의 내로라하는 고원림들을 천총저우 선생이 지켰다고 한다.
[사진 펑파이신원]

[사진 펑파이신원]

 
중국 건축계에는 북량남천(北梁南陈)이라는 말이 있다. 북방엔 저명한 건축사학자 량쓰청(梁思成, 양사성)이, 남방엔 고원림 학자 천총저우가 있다는 의미다.  
 
중국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정 받는 전문가다. 일본에선 "중국 원림 1인자", 미국에선 "현대 중국 원림의 아버지"로 추앙받는다고.
 
천총저우 선생의 업적
 

용화탑(龙华塔), 상하이

[사진 펑파이신원]

[사진 펑파이신원]

 
1954년 상하이 용화탑 보수 프로젝트를 이끌며 송나라 때의 모습을 복원시켰다.
 

예원, 상하이

[사진 펑파이신원]

[사진 펑파이신원]

 
1986년부터 예원 동쪽 구역 복원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편석산방, 양저우

[사진 펑파이신원]

[사진 펑파이신원]

 
1961년 명말 청초 시기의 화승 석도(石涛)가 유일하게 남긴 석가산(假山) 작품 편석산방을 발견하고 고증했다.
 

호구, 쑤저우

[사진 펑파이신원]

[사진 펑파이신원]

 
1954년 호구(虎丘)를 탐사했는데, 태평천국 이후 아무도 오르지 않았던 탑에 올랐다.
 

광교사 쌍탑, 안후이성 쉬안청 징팅산

[사진 펑파이신원]

[사진 펑파이신원]

 
1974년 광교사 쌍탑(广教寺双塔)을 둘러보고는 보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남원, 윈난성 쿤밍 안닝

[사진 펑파이신원]

[사진 펑파이신원]

 
1991년 직접 설계한 남원(楠园)의 공사를 마쳤다.
 

수회원, 장쑤성 루가오

[사진 펑파이신원]

[사진 펑파이신원]

 
1994년 재건 설계를 맡은 수회원(水绘园) 공사를 마무리했다.
 
천총저우 선생은 건축, 원림 분야에서 가장 유명하지만 시, 그림, 산문, 곤곡(昆曲) 등에도 조예가 깊다. 그래서 혹자는 그를 두고 '잡학가'라고 칭하기도.
 
1918년 항저우 칭샤진에서 태어난 천총저우 선생은 유복한 상인 집안 막내로 태어났다. 저택이 경항대운하(京杭大运河)와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미관적으로 상당히 아름다웠으며 산(!), 바위, 꽃, 나무가 있는 소박한(?) 정원도 딸려있었다. 이런 집안에서 자랐으니 감정이 풍부하고 심미안이 뛰어날 수 밖에.
 
10살 때는 미국인이 세운 교회에서 공부를 했고, 이와 함께 그 지역의 현자에게서 매일 옛 시문과 서예를 배웠다. 동양과 서양의 학문을 두루 익힌 셈이다. 이러한 교육 방식은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천총저우가 특히 좋아한 사인(詞人)은 북송의 문인 이청조(李清照)였는데,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이청조의 아버지인 이격비(李格非)가 지은 <낙양명원기(洛阳名园记)>도 독파했다. 낙양명원기는 천총저우에게 원림(정원)에 대한 흥미를 더욱 일깨워준 중요한 문헌이다.
[사진 펑파이신원]

[사진 펑파이신원]

 
1938년엔 항저우 즈장대학(之江大学)에 입학해 중국 문학과 역사를 전공했다. 이때 좋은 스승들을 많이 만났다. 철학가이자 대서예가인 왕취창(王蘧常), 문장 대가 샤청다오(夏承焘), 철학자이자 서예가이자 정치학자 마쉬룬(马叙伦) 등이 그의 스승이다. 이들의 가르침 덕에 원림, 고건축, 서화를 더욱 심도있게 연구할 수 있었다.
 
이후 상하이 퉁지대학에서 10년 간 건축을 가르쳤고 다른 학교에서도 중국어, 역사, 그림, 생물, 미술사, 교육사 등을 두루 가르쳤다. 1946년에는 흠모하던 화가 장대천(张大千)의 눈에 들어 정식 제자가 되기도 했다.
[사진 펑파이신원]

[사진 펑파이신원]

[사진 펑파이신원]

[사진 펑파이신원]

 
1980년에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명헌(明轩)이라는 명나라 시대 정원을 조성하기도 했다. 명나라 시대 가구서부터 꽃밭, 석가산, 정자 등의 설계, 배치를 모두 지휘했다.  
 
원림의 성 쑤저우의 정원 건축을 깊게 알고 싶다면 천총저우 선생이 1956년 출간한 <쑤저우원림(苏州园林)>을 참고하면 좋을 듯 하다. 근대 들어 최초로 쑤저우 원림을 다각도로 연구한 서적으로, 정원의 사진과 함께 어울리는 송사(宋词)도 감상할 수 있다. 기타 저서로는 <양저우 원림(1983)>, <설원(说园, 1984)> 등이 있다.
 
천총저우 선생은 지난 2000년 별세했다.
 
차이나랩 이지연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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