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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배틀그라운드] "지금까지 이런 탄약수 없었다" 극한직업 '황색 마후라' 전차병

중앙일보 2019.02.17 06:00
13일 제3기갑여단 혹한기 훈련에서 K1E1 전차가 전차탄을 쏘고 있다. [영상캡처=왕준열 기자]

13일 제3기갑여단 혹한기 훈련에서 K1E1 전차가 전차탄을 쏘고 있다. [영상캡처=왕준열 기자]

 
전차 수십 대가 질주하고 연이어 전차포탄을 쐈다. 심장을 울리는 폭음과 진동이 동시에 전달됐고, 전차 내부엔 화약 냄새가 순식간에 퍼졌다. 지난 13일 경기도와 강원도 경계에 위치한 비승훈련장에서 이뤄진 83전차대대 혹한기 기동 및 실사격 훈련이다. 기자가 직접 전차를 조종하고 전차 포탄을 장전했다. 그 과정에서 장병들이 흘리는 뜨거운 땀방울에 담긴 의미를 느꼈다.
 
'적토마 대대'로 불리는 83전차대대는 강원도 홍천군에 주둔하는 ‘번개 부대’ (육군 3기갑여단) 소속이다. 이 여단에는 불곰사업 목적으로 러시아에서 들여온 T-80U 전차와 BMP-3 장갑차를 운영하는 불곰대대도 속해 있다. 불곰사업은 러시아에 빌려준 차관 원리금 대신 무기를 받았던 사업이다. 번개부대는 지난해 기계화보병대대는 해체하고 전차를 추가해 전투력을 강화했다.
 
지난 13일 양평 비승훈련장에서 이뤄진 혹한기 훈련에 나선 제3기갑여단 제83전차대대 장병들이 출동에 앞서 장비를 정비하고 있다. [박용한]

지난 13일 양평 비승훈련장에서 이뤄진 혹한기 훈련에 나선 제3기갑여단 제83전차대대 장병들이 출동에 앞서 장비를 정비하고 있다. [박용한]

 
313호 전차 출동 
 
이날 기자가 탑승한 장비는 K1 전차 개량형인 K1E1인데 다양한 무장을 달았다. 주포는 105㎜ 강선포, 부무장으로 12.7㎜ 기관총 1정과 7.62㎜ 기관총 2정을 장착했다. 승무원은 총 4명으로 지휘를 맡는 전차장, 표적을 찾아 사격하는 포수와 탄약수 등이 탑승했다. 이날 기자는 탄약수를 맡아 전차포탄을 장전했고, 전차 조종도 해봤다.  
 
훈련 참여는 시험을 통과해야 가능했다. 기자가 탑승한 313호 전차장 심경남 중사가 임무를 설명했다. 심 중사는 2006년부터 전차병으로 근무한 경력 때문인지 이해하기 쉽게 지도해 줬다. 그러나 직접 나서보니 난감했다. ‘105㎜ 대전차 다목적 고폭탄(HEAT)’이 꿈적하지 않는다. 전차포탄 무게는 28.8㎏인데 비좁은 전차 안에서 어깨높이로 들어 올려 장전하기가 쉽지 않았다. 떨어뜨릴 경우 부상 위험도 컸다.
 
13일 혹한기 훈련에 참여한 제3기갑여단 소속 K1E1 전차 주요제원 [박용한]

13일 혹한기 훈련에 참여한 제3기갑여단 소속 K1E1 전차 주요제원 [박용한]

 
일단 시험은 통과했다. 작은 자만심도 생겨났다. 탄약수는 다른 보직보다는 알아야 할 지식이 적어 신규 전차병이나 전시에 충원된 병사가 배치되기도 한다. 그러나 본격적인 훈련을 시작하자 체력과 용기, 그리고 상황 판단 능력이 필요한 보직이라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전차는 훈련장 한가운데로 질주했다. 전차를 조종하는 조종수 경력 7년 차인 김형민 중사는 탁월한 조종술을 보여줬다. 별다른 흔들림 없이 목표지점으로 전차를 조종했다. 이때 다른 전차 사격이 몸으로 느껴졌다. 엄청난 소음은 고막을 때렸다. 본능적으로 헤드셋이 달린 전차병 헬멧 턱 끈을 꽉 조였다.  
  
13일 제3기갑여단 혹한기 훈련 중 313호 K1E1 전차 내부에서 전차탄을 장전하고 있다. [영상캡처=공성룡 기자]

13일 제3기갑여단 혹한기 훈련 중 313호 K1E1 전차 내부에서 전차탄을 장전하고 있다. [영상캡처=공성룡 기자]

 
포수 대탄 전방 적 전차!!
 
“포수 대탄 전방 적 전차!!” 전차장이 공격명령을 내렸다. 전차장은 폭발력이 뛰어난 대전차 고폭탄(HEAT) ‘대탄’을 선택했다. 최대 사거리는 약 8㎞인데 탄속은 초속 1100m 수준이라 이날 표적을 약 1초 만에 명중하게 된다. K1E1 전차는 ‘날탄’인 날개안정철갑분리탄(APFSDS)도 탑재한다. 장갑이 두꺼운 표적은 관통 효과가 높은 날탄으로 제압한다.
 
첫 번째 장전에 실패했다. 주먹으로 전차포탄을 밀었는데 포탄 장입구에 들어가다 멈췄다. 전차포탄을 여러 번 들면서 벌써 힘이 빠졌다. 긴장감도 작용했다. 전차포탄이 장입구에 들어가면 포신 뒤에 달린 폐쇄기가 자동으로 닫힌다. 그때 폐쇄기 부근에 손이 있으면 상상하기 끔찍한 부상이 생길 수 있어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군인에게 주어진 모든 임무는 용기가 없다면 나설 수 없다는 점을 다시금 확인했다.  
  
13일 제3기갑여단 혹한기 훈련에 참여한 전차가 기동하고 있다. [영상캡처=공성룡 기자]

13일 제3기갑여단 혹한기 훈련에 참여한 전차가 기동하고 있다. [영상캡처=공성룡 기자]

 
“장전 완료, 주퇴거리 확보!!” 전차포탄을 꺼낸 뒤 다시 주먹으로 힘차게 밀어 넣었다. 이번엔 성공했다. 포탄이 장입구에 쑥 들어갔다. 뒤로 물러나 양손을 머리 뒤로 올린 뒤 장전 보고를 마쳤다. 전차포탄을 발사할 때 ‘주퇴복좌기’는 30㎝ 뒤로 밀려나 탄피를 쏟고 다시 앞으로 이동한다. 이때도 부상 위험이 큰 순간이다. 안전거리 확보가 필요한데 전차 내부는 비좁아 뒤로 물러날 공간이 거의 없다.
 
“쏴!!” 전차장 명령 외침과 동시에 폭음과 진동이 가슴에 전달됐다. 육중한 주퇴복좌기가 움직였다. 순간 전차 무게 중심도 뒤로 쏠렸다가 앞으로 이동했다. 포탑 내부는 화약 냄새가 진동했다. 전투화로 70℃ 이상 온도가 올라간 탄피를 눌러 고정했다. 탄피가 움직여 몸에 닿으면 화상을 입을 수 있어서다.
 
지난 13일 양평 비승훈련장에서 이뤄진 혹한기 훈련에 나선 제3기갑여단 제83전차대대 장병들이 사격 훈련 뒤 포신을 창소하고 있다. 이물질이 남아 있으면 사격할 때 포신 안에서 포탄이 폭발할 수 있다. 포신 청소 역시 매우 중요한 전투준비 임무다. [박용한]

지난 13일 양평 비승훈련장에서 이뤄진 혹한기 훈련에 나선 제3기갑여단 제83전차대대 장병들이 사격 훈련 뒤 포신을 창소하고 있다. 이물질이 남아 있으면 사격할 때 포신 안에서 포탄이 폭발할 수 있다. 포신 청소 역시 매우 중요한 전투준비 임무다. [박용한]

 
지금까지 이런 탄약수는 없었다 
 
"지금까지 이런 탄약수는 없었다" 전차부대 교범은 명령하달 후 수 초 이내 사격하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기자는 10초를 넘겼으니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 숙련된 탄약수는 1분에 최대 12발까지도 장전한다.
 
본격적인 훈련은 이제부터다. 포수 이진무 하사는 재빠르게 다음 표적을 찾았다. 한 번 더 공격 명령이 내려왔고, 다음 전차포탄을 장전했다. 313호 전차는 표적을 완전히 제압한 뒤 즉각 현장을 벗어났다. 이때도 주포는 전방 적 방향을 유지하며 혹시 모를 공격에 대비했다. 포탑은 한 방향으로 고정한 채, 차체를 마음대로 회전하고 자유롭게 이동방향을 바꿀 수 있다.
 
13일 혹한기 훈련에서 83전차대대 K1E1 전차가 전방 표적을 향해기동하고 있다. [영상캡처=공성룡 기자]

13일 혹한기 훈련에서 83전차대대 K1E1 전차가 전방 표적을 향해기동하고 있다. [영상캡처=공성룡 기자]

 
K1E1 전차는 기존 K1 성능을 개량해 뛰어난 전투력을 발휘한다. 여기서 ‘E’는 ‘강화했다’는 뜻인 ‘Enhanced’ 머리글자다. 전후방 감시카메라ㆍ실시간 정보공유ㆍ전투차량 간 통합 운용 등 전투기능을 개선했다. 대대 지휘반장 강인우 중사는 “전장관리체계(BMS) 덕분에 대대장이 지휘소에서 한 눈으로 예하 부대 및 아군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3중대장 장성준 대위는 “컴퓨터 게임 스타크래프트에 나오는 미니 맵(지도)을 생각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전차병은 '극한직업'이다. 첨단 장비도 사람이 움직인다. 장 대위는 “전투준비태세를 갖추기 위해 혹한기 훈련을 하는데 어제는 체감온도가 영하 20도까지 내려갔다”면서 “대규모 훈련장에서 전차병(전차장ㆍ포수ㆍ조종수ㆍ탄약수) 팀워크 능력을 키우는 기회를 가졌다”고 평가했다. 
 
제3기갑여단은 이달 11일부터 15일까지 국지도발ㆍ전투사격ㆍ소부대전투기술 훈련에 병력 1600명과 장비 130대를 동원했다. 여단장 지휘아래 전체 장병들이 야외훈련장에서 숙영해 밤이슬을 맞으며 실전적 대비태세를 키웠다.
 
13일 제3기갑여단 혹한기 훈련 중 전투식량을 먹고 있다. 실제 전술 상환에선 즉각 전투에 돌입할 수 있도록 전차 내부에 앉아 식사한다. [사진캡처=공성룡 기자]

13일 제3기갑여단 혹한기 훈련 중 전투식량을 먹고 있다. 실제 전술 상환에선 즉각 전투에 돌입할 수 있도록 전차 내부에 앉아 식사한다. [사진캡처=공성룡 기자]

 
이번 점심은 '전식'이다 
 
잠시 전차를 세워 두고 ‘전식’(전투식량)으로 끼니를 때웠다. 훈련 뒤 꺼내 먹으니 꿀맛이다. 실전적 상황에서는 언제라도 전투에 복귀할 수 있도록 비좁은 전차 내부에 앉은 자세로 먹는다. 찬바람이 매섭게 불어왔지만 괜찮다고 한다. 장 대위는 “겨울에 춥지만, 시동을 걸면 온도가 올라간다”며 “하지만 여름에는 전차 엔진이 바로 뒤에 있어 전투복이 모두 땀으로 젖는다”고 말했다. K1E1 전차엔 에어컨이 없다.
 
"네, 전진 갑니다" 전차 조종(운전)에도 나섰다. 자동변속기를 달아 일반 자동차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무한궤도로 움직이는 전차는 좌우 진행 방향을 세심하게 조종해야 한다. 걱정과 달리 이날 조종석에 앉은 미국 출신 말리나 인턴기자는 성공적으로 시험주행에 성공했다. 본격적인 주행에 나서자 속도를 높였다. 자동변속기는 3단까지 올라갔고 속도는 시속 25㎞를 넘어섰다. 철갑을 두른 51t 무게 전차는 이 정도 속도만으로도 주변에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13일 제3기갑여단 혹한기 훈련에 나온 K1E1 전차 조종수 좌석은 좁다. [영상캡처=왕준열 기자]

13일 제3기갑여단 혹한기 훈련에 나온 K1E1 전차 조종수 좌석은 좁다. [영상캡처=왕준열 기자]

  
전문가 평가는 어떠했을까. 전차장을 맡은 강 중사는 “처음 하는 조종이지만 안정감을 느낄 수 있어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했다”며 “코너링 실력도 뛰어났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완벽하게 임무를 수행하려면 상당한 노력이 더 필요하다. 
 
전차 조종수는 기초 군사훈련을 마친 뒤 기갑병과 교육(기계화학교 3주ㆍ부대교육 4주)을 받고, 조종시험에 합격해야 임무를 시작할 수 있다. 물론 숙련된 조종실력을 발휘하려면 더 많은 시간과 숙련이 필요하다. 악조건 속에서도 훈련을 반복하는 이유다. 강 중사는 “황색 마후라를 착용하는 기갑병과 자부심이 있다”며 “적을 만나면 1발로 명중할 수 있다”며 힘주어 말했다. 
 
13일 혹한기 훈련에 참여한 말리나 인턴기자가 조종석에 들어가며 전차병 헬멧 마이크를 전차에 연결하고 있다. [박용한]

13일 혹한기 훈련에 참여한 말리나 인턴기자가 조종석에 들어가며 전차병 헬멧 마이크를 전차에 연결하고 있다. [박용한]

 
‘공사 구분할 줄 아는’ 부대였다. 군 목사가 건넨 캔커피를 받자 환호하며 웃던 젊은 청년들은 출동 태세를 갖추자 곧바로 날카로운 눈빛으로 돌변했다. 장 대위는 “오늘 훈련이 증명한다. 저희는 항상 확고한 대비태세를 유지하기 위해 이 추운 날씨에도 훈련하고 있다”며 강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단장 김영섭 준장(진)은 “항재전장 전투준비태세 완비를 지휘 중점으로 두고 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처럼 얼어붙은 훈련장을 녹이는 열정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었다. 인턴기자 말리나는 “군대 생활이 얼마나 힘든 삶을 사는지, 대단한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장병들은 오히려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군 복무 13년을 맞은 강 중사는 “아이들이 최근 자주 아파 걱정인데 아내에게 육아에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하고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다”며 수줍게 미소 지었다.
 
13일 제3기갑여단 83전차대대 혹한기 훈련을 마치며 이날 참여한 장비 앞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박용한 기자, 3중대장 장성준 대위, 대대지휘반장 강인우 중사, 말리나 인턴기자(왼쪽부터) [영상캡처=왕준열 기자]

13일 제3기갑여단 83전차대대 혹한기 훈련을 마치며 이날 참여한 장비 앞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박용한 기자, 3중대장 장성준 대위, 대대지휘반장 강인우 중사, 말리나 인턴기자(왼쪽부터) [영상캡처=왕준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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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을 마치고 부대를 떠나려니 따듯한 응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격려는 어렵지 않다. 장 대위는 “훈련 마치고 부대로 돌아갈 때 훈련장 주변 주민들이 손을 흔들어 준다”며 “장병들에게 큰 힘이 되고, 군 생활에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최근 급격한 정세 변화로 군 대비태세가 무너진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병사 일과 후 휴대폰 사용 등 군대 문화 변화에 대해서도 일부 부정적인 시각이 있다. 그러나 훈련에 참여해 가까이에서 지켜보니 ‘배틀그라운드’ 현장 분위기는 열정적이었고, 빈틈이 없었다.
 
박용한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park.yonghan@joongang.co.kr
영상 = 공성룡·왕준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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