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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위치 교육’하는 울산대, 938개 기업이 가족이다

중앙선데이 2019.02.16 00:37 623호 2면 지면보기
[양영유의 총장 열전] 오연천 울산대 총장
오연천 울산대 총장(가운데)이 지난달 29일 교내 도서관에서 학생들을 만나 ’불확실한 미래를 개척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일은 지성과 젊음의 특권“이라며 ’어떠한 난관도 긍정의 힘과 열정으로 담금질하면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현동 기자]

오연천 울산대 총장(가운데)이 지난달 29일 교내 도서관에서 학생들을 만나 ’불확실한 미래를 개척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일은 지성과 젊음의 특권“이라며 ’어떠한 난관도 긍정의 힘과 열정으로 담금질하면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현동 기자]

오연천(68) 총장은 겸손하다. 자신을 낮추고 타인의 입장에서 경청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겸손하지 않으면 자신의 부족함을 보지 못하고, 남의 부족함만 보게 된다는 소신에서다. 그래서일까. 서울대 총장(2010년 7월~2014년 7월) 시절에도 언론 인터뷰를 거의 안 했다. 서울대 법인화 과정 때도 말을 아꼈다. “총장과 다른 생각을 가진 구성원이 많은데 스타처럼 나서는 게 옳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랬던 그가 사립대인 울산대 총장이 된 지 4년이 흘렀고, 다음 달부터 새로 4년의 임기를 시작한다. 지방대는 서울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환경이 어렵다. 오 총장에게 “말을 아끼지 말고 고등교육의 길을 제시해 달라”고 청한 끝에 인터뷰가 이뤄졌다.

울산대발 열린 교육
중공업·유화·자동차 3대 산업 활용
현장 융합형 실천 교육 국내 첫 도입

지방 대학 살리려면
지역과 상생하는 커리큘럼 개발
유니버설로 가지 말고 특성화 필요

21세기 젊은이들은
장애물은 자신을 훈련시키는 도구
실패 두려워말고 긍정적으로 도전을

 
서울대 총장을 지내고 지방대 총장이 된 전례가 있나요.
“선우중호 총장(1996년 2월~98년 8월) 딱 한 분 있었습니다. 명지대와 광주과학기술원(2008년 6월~2012년 6월) 총장을 지내셨죠. 제가 처음은 아닙니다.”
 
 
총장은 스타 아닌 스타 나오게 격려하는 자리
 
왜 울산대 총장이 되셨습니까.
“서울대 총장은 공직입니다. 4년간 공직 ‘모자’를 썼던 것이지요. 임시직이지요. 모자를 벗으면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최소한 무슨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허상일 뿐입니다. 서울대 총장을 하면서 배우고 경험한 것을 새 가치 창출에 기여하고 싶었어요.”
 
지방대 총장을 해보니 어떻습니까.
“저는 지방대를 지역 대학이라고 부릅니다. 지방대는 지역에서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죠. 가치 평가가 다릅니다. 서울대가 학문 후속세대 양성에 주안점을 둔다면, 지역대는 지역 인재 양성과 공동체 기여가 중요해요. 서울대는 가만있어도 주목받지만, 지역대는 그렇지 못해요. 그게 고등교육의 현실입니다.”
 
총장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스스로 스타플레이어가 되려 하지 말고 교수·학생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줘 스타플레이어가 되도록 격려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제약점을 풀어주고 자유로운 학풍을 만들어줘야 스타가 나옵니다. 스타는 짧은 시간에 탄생하지 않아요. 대학의 가치는 중·장기적 가치 창조에 있습니다. 구성원을 존중하고 격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간관계의 본질이고 리더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오 총장은 서울대 총장 ‘모자’를 벗자 2014년 8월 미국 스탠퍼드대로 떠났다. 석좌교수로 강의와 연구에 몰두하던 중 울산대의 러브콜을 받았다. 울산광역시 남구 대학로에 있는 울산대는 1970년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가 설립했다. 본관 로비에 정주영 회장의 흉상과 친필 휘호가 있는 까닭이다. 공과대학으로 출발해 85년 종합대로 승격했고, 90년 의과대를 신설했다. 현재 9개 단과대, 6개 대학원에 1만6000명이 재학 중이다.
 
울산대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인가요.
“‘샌드위치 교육시스템’이라 불리는 영국형 산학협력교육입니다. 영국 정부는 울산대 설립 초기부터 기술전문가를 파견해주고 실험·실습기기를 지원했습니다. 1972년 국내 대학 최초로 산학협력교육을 도입한 배경입니다.”
 
샌드위치 교육시스템이란 현장 융합형 실천 교육을 말한다. 1906년 미국 신시내티대학 슈나이더 교수가 창안했다. 영국은 1956년 학교 2년→현장 2년→학교 1년의 프로그램을 도입해 정착시켰다. 이론과 실습, 실습과 이론을 반복하는 교육이다.
 
샌드위치 교육시스템이 특이합니다.
“울산에는 중공업·석유화학·자동차 등 3대 산업이 있어요. 전국에서 유일해요. 장점을 살려 현장에 즉각 투입 가능한 인재를 키워 이론과 현장의 격차를 줄이는 커리큘럼을 만든 거죠. 대학 따로, 현장 따로가 아닌 함께 가르치는 열린 교육입니다. 우리 대학은 ‘가족’ 관계를 맺은 기업이 938개나 됩니다.”
 
가족 기업이 938개나 된다니 놀랍습니다.
“현대중공업·현대자동차·SK에너지·S-오일 등 유력기업이 망라돼 있습니다. 기계자동차공학부의 실제 산학협력교육을 소개하죠. 3학년은 여름과 겨울에 1개월씩 2학점짜리 단기 현장실습을 합니다. 장기 실습은 3·4학년 대상으로 14학점짜리입니다. 상·하반기 각각 24주간 합니다. 4학년 1학기 때는 매주 월·금요일 현대자동차에서 3학점짜리 실습도 해요.”
 
4차 산업혁명에 어떻게 대비하고 있나요.
“산업현장 노하우를 가진 기업체 임직원을 산학협력 교수로 임용하고 커리큘럼을 첨단화하고 있어요. 국내 최초로 현대중공업과 함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고급 인력 양성프로그램(Digital Transformation)을 도입한 게 대표적입니다. 빅데이터와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컴퓨팅,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을 집중적으로 교육합니다. 조선 분야뿐만 아니라 자동차와 석유화학 등 전 산업에 배치됩니다. 이공계·비이공계 융합 종합설계 교육과정인 ‘다학제 융합 캡스톤 디자인(Cap-stone Design)’ 프로그램도 운영합니다.”
 
울산대의 산학협력교육은 정부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교육부의 ▶사회맞춤형 산학협력 선도대학(LINC+) ▶대학 특성화(CK) ▶창업선도대학 ▶대학일자리센터 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협력병원인 서울아산병원과 함께 바이오 융합연구를 진행하는 것도 특징이다.
 
2년 전에 제2 캠퍼스도 만들었지요.
“남구 두왕동 울산 산학융합지구에 있어요. 도약의 상징입니다. 기업체·국가 연구기관과 교육·연구·취업을 연계해 시너지 효과를 낼 겁니다. 첨단소재공학부와 화학과가 옮겨 갔어요. 첨단 강의실과 실습실에서 이론과 실습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재정관리 권위자인 오 총장은 대학 행정에 정통하다. 2011년 서울대 총장 시절 학생들이 법인화에 반대하며 학교본부를 점거하자 현장을 찾아가 대화하고 공개토론을 통해 해결한 소통의 리더십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등록금 동결과 강사법, 입시 규제 등 고등교육 상황은 어떻게 볼까.
 
정부의 교육정책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입시·등록금·강사법을 표준화하고 획일화하는 것은 다양성 시대에 부작용이 많아요. 자율성을 보장해야 합니다. 구더기 무서워 장 담그지 못하면 안 되듯, 자율성 부여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정책을 수정해야 합니다. 정책 일관성을 위해 교육부 장관을 자주 교체하는 것도 지양해야 합니다.”
 
10년째 동결된 등록금이 핫 이슈입니다.
“정부 관여를 최소화해야 합니다. 일부 대학에 대한 불신을 일반화하지 말고, 다수의 선량한 대학 입장에서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정부가 교부금 형식으로 지원해주는 게 바람직해요. 특정 사업용이 아닌 대학이 자체적으로 쓸 수 있는 제너럴 펀드(general fund) 말입니다. 사립대도 공적가치에 기여하고 있으므로 그 범위 내에서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방대가 위기인데 살아남으려면.
“20여 년간 많은 기능형 대학을 종합대학화한 게 문제입니다. 다양화·특성화로 가야 하는데 ‘유니버설’로 가는 게 문제죠. 지역 정치 영향과 개별 대학의 확장 지향성 때문에 생긴 현상입니다. 지역 발전과 상생하는 전공, 특화된 커리큘럼이 필요해요. 교수의 책무도 중요해요. 4차 혁명에 맞게 전공영역을 융합하고, 새로운 학과와 전공을 개발해야 합니다. 융합·포괄형 교수가 많아야 대학이 삽니다.”
 
오 총장은 클래식 음악 애호가다. 인터뷰 중 집무실 책상 위에 있는 노트북을 켜더니 모차르트의 바슨 협주곡을 틀었다. 기자가 음악을 들으며 인터뷰를 한 것은 처음이었다.
 
 
융합·포괄형 교수 많아야 대학 활기
 
클래식 음악 다음으로 좋아하는 것은.
“신문 읽기입니다. 하루에 6종을 봅니다. 세상과 세상을 보는 눈이 들어 있거든요. 문화탐방과 야생동물 관찰도 좋아해요. (웃으며) 정치학과에 진학하지 않았으면 생물학자가 됐을지도 모르겠어요.”
 
서울대 교수와 총장, 그리고 울산대 총장으로서 평생을 대학에 몸담고 있는 오 총장은 실패를 모르는 삶을 살았을 것 같았다. 대답은 뜻밖이었다.
 
“여러 번 실패했어요. 중학교 입시에 떨어져 재수했고, 처음엔 행정고시 1차에 낙방했고, 서울대 졸업 학점이 모자라 한 학기를 더 다녔고, 서울대 교수 임용도 두 번 고배를 들었어요. 장애물은  나를 더 훈련시키는 도구라고 생각하고 좌절과 실패, 번민을 겪어도 철저하게 준비해 다시 도전했죠. 부족함을 희망의 출발점으로 삼는 긍정적 사고가 중요해요. 긍정이 난관을 극복할 수 있어요. 실패를 두려워 마세요.”
 
행시 합격 후 공무원…국비유학비 변상하고 학자의 길로
1951년 충남 공주에서 7남매(3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홉 살 때 처음 상경해 서울 구경을 한 뒤 “더 큰 세상에서 공부하고 싶다”며 부모를 설득해 서울 학생이 됐다. 중학교 입시에서 낙방하자 “자신과의 싸움에서 진 것”이라며 재수해 경기중에 들어갔을 정도로 내면적인 승부욕이 강하다. 경기고 3학년 때 3선 개헌 반대 운동을 주도했고, 고교 영자지 편집장과 서울대 학보 기자로 활동하는 등 사회의식이 남달랐다. 대학 1학년(정치학과) 학생회장 때 정몽준(경제학과) 학우의 부친인 정주영 회장을 만나 교양과정부 강당에 필요한 피아노 구입비 25만원을 직접 받아낸 일화는 유명하다.  
 
대학원생이던 75년 행정고시(17회)에 합격했다. 총무처 공무원 시절 국비 유학을 다녀온 뒤 “더 넓은 세계로 나가 학문의 길을 걷겠다”며 유학비 1500만원 전액을 변상하고 인생 항로를 바꿨다. 뉴욕대(NYU)에서 재정관리학 석·박사 학위를 받고 83년 서울대 교수로 부임해 2010~2014년 총장을 지냈다. 2015년 울산대 총장이 된 이후 “대학 살림이 어려운데 전담 운전기사를 둘 이유가 없다”며 직접 운전해 출·퇴근한다. 실패와 좌절은 자신을 담금질하는 멘토라는 긍정적 인생관을 갖고 있다.
 
양영유 교육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yangyy@joongang.co.kr
 
※ 총장 열전은 크로스미디어로 진행합니다. 17일 발행되는 월간중앙 3월호에서 더 자세한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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