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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베스트] 인어공주·좀비도 토종이 있었네

중앙선데이 2019.02.16 00:20 623호 21면 지면보기
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최근 출간된 신간 중 여섯 권의 책을 ‘마이 베스트’로 선정했습니다. 콘텐트 완성도와 사회적 영향력, 판매 부수 등을 두루 고려해 뽑은 ‘이달의 추천 도서’입니다. 중앙일보 출판팀과 교보문고 북마스터·MD 23명이 선정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사슴다리, 12개 젖꼭지 ‘녹족부인’
인어공주 뺨치는 ‘비유설백’
SF작가 곽재식씨 282종 소개

한국 괴물 백과

한국 괴물 백과

한국 괴물 백과
곽재식 지음
이강훈 그림
워크룸프레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인반수의 목신(牧神) ‘판’, 안데르센 동화 속의 인어공주, 할리우드를 넘어 이제 국내영화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하는 좀비… 사실은 이들이 서양에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존재했었다.
 
서양의 판은 남자지만, 우리의 반인반수는 여자로 ‘녹족부인(鹿足夫人)’이라 불린다. 문자 그대로 사슴 다리를 가진 여인이다. 게다가 판은 호색한(好色漢)이지만, 녹족부인은 산속에 살면서도 고귀한 사람과 교유하는 정숙한 여인이다. 젖꼭지가 열두 개여서 한번에 열두 명에게까지 젖을 먹일 수 있다. 황해도와 평안도 지역의 전설이라고 한다.
 
인어의 전설은 세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도 거의 비슷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머리칼을 풀어헤친 사람 모습을 한 물고기로 피부가 무척 희어서 ‘비유설백(肥腴雪白)’이라 불린다. 바닷가에 있는 호수 깊은 곳에 산다. 유몽인의 설화집 『어우야담』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조선시대 김회천이라는 사람이 전남 영광에서 보았다고 한다. 회천이 물고기를 잡으려고 물에 독을 풀었다가 비유설백의 시체를 발견했는데, 갑자기 호수 위로 구름이 일고 비바람과 번개가 몰아치더니 수십 일 동안 어둠이 걷히지 않았고 회천은 곧 죽었다고 한다.
 
토종 좀비 ‘재차의’(왼쪽)와 서양의 반인반수 괴물 ‘판’에 해당되는 한국형 ‘녹족부인’. 곽재식 SF작가가 『한국 괴물 백과』에서 취합 정리했다. [사진 워크룸프레스]

토종 좀비 ‘재차의’(왼쪽)와 서양의 반인반수 괴물 ‘판’에 해당되는 한국형 ‘녹족부인’. 곽재식 SF작가가 『한국 괴물 백과』에서 취합 정리했다. [사진 워크룸프레스]

이름 그대로 ‘인어(人魚)’도 있는데, 물고기가 아닌 거북을 닮았다. 앉아있는 모습은 사람과 같고 무척 아름답다. 사람에게 잡히면 흰 눈물을 흘리며 애절하게 울어 놓아주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조선시대 강원도 통천에서 한 어부에 잡혔는데 김담령이라는 사람이 빼앗아 놓아줬다고 『어우야담』은 전한다.
 
국산 좀비의 이름은 ‘재차의(在此矣)’다. 되살아난 시체로, 손발이 썩은 것처럼 검다. ‘재차의’란 ‘여기 있다’는 뜻인데, 무당이 의식을 치르며 불러내면 시체가 되살아나 “여기 있다”며 손을 내밀기도 하고 사람의 말에 대답도 한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고려 후기의 문신 한종유가 무당이 제사에서 죽은 사람을 불러내는 곡을 할 때 장난 삼아 이를 흉내 내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제사 음식을 쓸어갔다는 얘기가 성현의 『용재총화』에 전한다.
 
SF작가 곽재식이 11년 동안 한국의 괴물 282종을 모아 책으로 냈다. 그는 2007년부터 ‘게렉터(gerecter)’라는 필명으로 한국의 괴물을 채집해 블로그(https://oldstory.postype.com)에 공개해왔다. 역사 소설을 쓰기 위한 자료조사 차원에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하다 보니 널리 알려진 괴물들조차 출처가 불분명한 채 정형화돼 있음을 알게 됐다. 도깨비 하면 정수리에 뿔이 있고 거적 같은 것을 몸에 둘렀으며 울퉁불퉁한 방망이를 들고 있는 모습인 것처럼 말이다.
 
이에 저자는 진짜 괴물들을 찾아보기로 마음 먹었다. 이를 위해 18세기 이전의 기록에 남아있는 괴물만을 모았다. 이후에 기록됐거나 기록 없이 구전만 된 것, 작가가 불분명한 기록이나 소설 속에만 등장하는 괴물들은 배제했다. 괴물의 이름이 불분명할 경우 기록된 문헌의 특징적 묘사를 이름으로 삼았다.  
 
이강훈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 역시 최대한 문헌의 설명에 바탕을 뒀다. 그야말로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이 땅에서 잊힐 뻔했던 토속 괴물들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어준 것이다. 그의 한국 괴물 채집은 끝나지 않았으며, 이 책 또한 계속 업데이트될 것이다.
 
이훈범 대기자 / 중앙콘텐트랩 cielble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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