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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 "고은 성추행 의혹 제기한 최영미, 배상 책임 없다"

중앙일보 2019.02.15 16:50
고은(86) 시인이 자신의 성추행 의혹을 제기한 최영미 시인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했다. 고 시인은 박진성 시인과 언론사를 상대로도 함께 소송을 냈으나 재판부는 박 시인에 대해서만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부장 이상윤)는 15일 고 시인이 최 시인과 박 시인, 언론사 등을 상대로 낸 10억7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 선고공판에서 최 시인과 언론사에 대한 청구를 기각했다. 다만 “박 시인은 고 시인에게 1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고은 시인. [연합뉴스]

고은 시인. [연합뉴스]

 
"94년 탑골공원 음란행위는 허위로 보기 어려워"  
재판에선 고 시인이 1994년 봄 서울 종로 탑골공원 인근 술집 의자에 누워 음란행위를 했는지, 2008년 강연회 뒤풀이에서 여성을 성추행하고 성기를 노출했는지가 쟁점이 됐다. 최 시인과 박 시인이 이를 각각 목격했다고 폭로했고, 언론사는 이들의 주장을 보도했다.
 
재판부는 탑골공원 사건에 대해 “최 시인이 (현장을) 직접 목격했다고 진술했고 이를 뒷받침할 일기장 등 자료가 있다”며 “진술이 매우 구체적이고 일관돼 허위로 의심할 만한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고 시인 측은 일기장이 조작됐을 가능성을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만 재판부는 2008년 강연회 사건은 ‘허위’로 판단했다. 당시 현장에 있었다는 다른 동석자들이 법정에 나와 “고 시인의 성추행을 본 적이 없다”고 증언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또 “다른 증인들의 진술 등을 종합해보면 이 부분에 대해 고 시인 측 입장이 수긍할 만하다”고 했다. 반면 박 시인이 건강상 문제로 재판에 나오지 않아 진술의 신빙성을 검증하기 어렵다고 봤다.
 
박 시인의 말을 보도한 언론사에 대해선 “문화예술계에서 고 시인이 가지는 영향력과 이 사건의 파장 등을 고려하면 공익성이 인정된다”며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노벨상 후보 오른 거장의 '미투'…문학계 파장
최영미 시인이 1심에서 승소한 뒤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최영미 시인이 1심에서 승소한 뒤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고 시인의 성추행 의혹은 2017년 9월 최영미 시인이 한 계간지에 원로문인의 성추행 행적을 언급하는 ‘괴물’이라는 제목의 시를 실으며 시작됐다.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이란 내용으로, 노벨상 후보로 매년 거론되던 고 시인을 암시하는 글이었다. 이후 최 시인은 고 시인이 상습적으로 성추행을 벌여왔다고 언론 등에 폭로했다.
 
고 시인의 성추행 의혹은 ‘미투’ 운동 확산과 함께 문화예술계에 큰 파장을 몰고 왔다. 고 시인은 성추행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지만 이후 박진성 시인의 추가 폭로가 이어졌다. 박 시인은 블로그를 통해 “저는 추악한 성범죄 현장의 목격자입니다. 그리고 방관자입니다. 지난날의 저 자신을 반성하고 증언합니다”며 최 시인의 말이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폭로가 계속되자 고 시인은 한국작가회의 상임고문, 카이스트 석좌교수 등 모든 직을 내려놓았다. 서울시는 고 시인의 삶과 문학을 조명한 서울도서관 전시공간을 철거했고, 고은 문학관 건립 계획도 무산됐다.
 
최영미 "가해자가 고소하는 뻔뻔함 용인되면 안 돼"
이날 재판에 원고 측인 고은 시인은 참석하지 않았다. 최영미 시인은 선고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이 땅에 정의가 살아있다는 걸 보여준 재판부에 경의를 표현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어 “진실을 말한 대가로 소송에 휘말린 저와 같은 피해자가 다시는 안 나왔으면 좋겠다”며 “가해자가 피해자를 상대로 뻔뻔스레 고소하는 사회 분위기가 용인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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