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의도 인싸]"지만원 정신이상자" 발언 철회 왜…정치권도 PC논쟁

중앙일보 2019.02.15 01:30
‘여의도 인싸’는 국회 안(inside)에서 발생한 각종 이슈와 쏟아지는 법안들을 중앙일보 정치팀 2030 기자들의 시각으로 정리합니다. ‘여의도 인싸’와 함께 ‘정치 아싸’에서 탈출하세요.
 
“정신이상자 지만원을 정신병원에 수감해야 한다.”

지난 12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초선 윤준호 의원은 이런 말을 했다가 즉각 철회했습니다. 지만원씨는 지난 8일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주최한 ‘5ㆍ18 진상규명 공청회’에서 북한군의 개입설을 주장해 파장을 일으켰죠. 윤 의원은 5ㆍ18 폄훼에 대한 유공자들과 시민의 분노를 당 차원에서 표명하다가 ‘정신병원’을 언급했습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혐오와 차별 문제 해소를 위한 토론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뉴스1]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혐오와 차별 문제 해소를 위한 토론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뉴스1]

 
하지만 윤 의원은 “정신병원, 정신이상자 표현은 철회하겠다. 과하게 표현했다”며 즉각 주워 담았습니다. 장애인 비하로 비화할 수 있다는 점을 순간적으로 의식한 겁니다. 옆에 있던 이철희 의원은 “오해하지 말아달라”는 당부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신동근 의원은 토론회를 공동 주최한 자유한국당 김진태ㆍ이종명ㆍ김순례 의원을 향해 “퇴행적 정신 지체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비판했습니다. ‘정신 지체’ 표현은 철회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과한 윤 의원의 발언만 지적을 받았습니다.
 
민주당에서 벌어진 다소 혼란스러운 해프닝은 일종의 ‘이해찬 학습효과’이기도 합니다. 이 대표는 지난달 28일 일부 국회의원을 ‘정신 장애인’에 비유했다가 장애인 단체의 반발을 불렀습니다. 지난해 12월 민주당 전국장애인위원회 발대식에서 “신체장애인보다 더 한심한 사람들은…”이라고 말했다가 바로 철회했고 대신 “정치권에는 저게 정상인가 싶을 정도로 정신장애인들이 많이 있다”고 말한 겁니다. 논란이 확산되자 이 대표는 “장애인 여러분을 깎아내릴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공식 사과했습니다.
바른미래당 전국장애인위원회, 사)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회원들이 지난해 12월 30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당 전국장애인위원회 발대식 축사에서 장애인을 비하, 모독하는 발언을 했다"며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바른미래당 전국장애인위원회, 사)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회원들이 지난해 12월 30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당 전국장애인위원회 발대식 축사에서 장애인을 비하, 모독하는 발언을 했다"며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민주당 민병두 의원은 자유한국당을 향해 ‘시대의 지진아’라는 표현을 했다가 “한국당과 장애인을 비하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학습이나 지능의 발달이 더딘 아이를 의미하는 지진아(遲進兒)라는 단어가 장애인의 결함을 부정적으로 나타내 부적절한 표현이라고 지적합니다.
 
사회적 약자와 관련된 정치인의 발언은 아슬아슬합니다. 여전히 ‘뭐가 문제라는 거야’라는 식으로 학습효과도, 인식도 부족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정치권에서 ‘PC(Political Correctnessㆍ정치적 올바름)’ 운동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PC 운동은 모든 종류의 편견이 섞인 표현을 쓰지 말자는 정치ㆍ사회 캠페인입니다. 1980년대 미국 대학가를 중심으로 퍼졌습니다.
지난해 10월 13일 부산 해운대구 구남로 인근에서 열린 '제2회 부산퀴어문화축제' 행사장 반대편에서 동성애를 반대하는 종교단체인 '제2회 레알러브시민축제' 회원들이 동성애 반대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10월 13일 부산 해운대구 구남로 인근에서 열린 '제2회 부산퀴어문화축제' 행사장 반대편에서 동성애를 반대하는 종교단체인 '제2회 레알러브시민축제' 회원들이 동성애 반대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뉴스1]

 
특히 최근 우리나라 대학가에서 PC 운동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여성·장애인뿐 아니라 동성애자, 채식주의자, 이주민 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배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예전엔 대충 넘어갔을 표현을 놓고 찬반 논쟁이 벌어지곤 합니다.
 
젊은 층이 주로 쓰는 신조어를 놓고도 “‘병먹금(병신에게 먹이 금지)’은 장애인 비하다” “‘암 걸릴 것 같다’는 말은 암 환자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식입니다. 이에 “왜 소수를 위해 다수가 피해를 봐야 하느냐”는 반감을 가진 이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PC 충(蟲)’이라는 신조어를 써가며 PC 운동을 배격합니다.
 
지난해 11월 서울대 일부 기숙사에서는 비공식적으로 ‘남녀’ 미팅 행사를 기획했다가 “성 소수자 배려가 부족하다”는 비판에 부닥쳐 취소한 일이 있습니다. 행사 안내문에서 “성별을 제발 정확하게 해달라”는 표현이 문제가 됐습니다. ‘서울대 대나무숲’에서 이 사건이 화제가 되자 ‘PC 충은 다 죽어야 한다’며 소수자 배려를 못마땅해하는 댓글도 달렸습니다. 이런 논쟁 자체가 너무 피곤하고 지나치다는 불만도 적지 않은 겁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 교수는 “페미니즘을 중심으로 시작된 PC 운동이 동성애, 생태주의로까지 확대되면서 ‘도덕적 사상 전체주의’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지적합니다. 그는 “우리 사회에 PC 운동이 전파되는 과정에서 토론이 충분히 되지 않아 다소 극단적인 성향을 띠게 된 것 같지만, 서서히 중간점을 찾기 바란다”고 했습니다.
 
『말이 칼이 될 때』라는 책을 쓴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 교수는 “말 한마디 가지고 감옥을 보내자는 게 아니다. 실수니까 아무 문제가 없다거나 의도가 착하니까 괜찮다고 발뺌하는 태도가 문제라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홍 교수는 “배우 정우성씨가 염정아씨를 ‘꽃’에 비유했다가 논란이 되자 사과하지 않았느냐.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이를 교정하면서 사회가 발전해 간다”며 PC 운동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배우 정우성이 지난해 6월 26일 오후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13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에서 난민 문제와 관련해 소신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배우 정우성이 지난해 6월 26일 오후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13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에서 난민 문제와 관련해 소신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앞서 거론한 이해찬 대표나 윤준호 의원은 실언을 인정하고 사과한 경우지만, 정치권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홍 교수는 “정치인이나 유력 인사들이 혐오 표현에 단호한 태도를 취하고 정확한 메시지를 전하는 분위기면 혐오 표현이 발화되더라도 휘발성을 가져 날아가게 된다”며 정치인의 역할을 강조합니다. 그나마 우리 정치권에도 언행에 대한 자정 노력이 나타나고 있어 다행스럽긴 합니다. 하지만 갈 길은 멉니다. 차별의 기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지고 배려의 태도가 자리 잡을 때까지 정치인이 보여줘야 할 것과 보여주지 말아야 할 게 아직도 많아 보입니다.
 
김경희ㆍ백희연 기자 am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먼지알지 런칭 이벤트
공유하기
광고 닫기

미세먼지 심한 날엔? 먼지알지